하우스프라우
질 알렉산더 에스바움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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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그리고 가독성이 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내용 때문에 책 읽는 행위 자체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서평을 작성하는 것에 대해 올해 들어 가장 고민을 많이 하게 한 책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무척 소중하게 다가온 책이다.

책 제목인 『하우스프라우』는 (Hausfrau)는 독일어로 가정주부나 기혼 여성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나 역시 하우스프라우인 샘이다. 미국인인 안나는 스위스인 남자와 결혼을 해서 기본적으로 언어소통에 어려움이 있다. 낯선 외국에서 살고 있으며 슬하에 3명의 아이가 있다. 지극히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고 있는 그녀가 독일어 수업을 들으며 위험한 불륜관계가 시작된다. 그리고 나중에 점점 그녀가 남편 외의 남자들을 만나며 그녀 스스로는 더욱더 스스로 친 덫에 빠지고 만다.

왜 안나는 우울증과 고독으로 인해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게 되었는가?

이 책으로 인해 나는 일상생활을 하는 중 문득문득 '안나'라는 인물과 대화를 나눈다. 어느 시점에는 안쓰러운 안나를 토닥여주다가, 어느 시점에는 안나에게 화를 내다가, 또 어쩔 때는 남편 브루노과 그의 가족들에게 다 털고 싶은 충동도 생기고 말이다. 이 책은 마치 안나라는 인물이 실존이라도 한 듯, 나의 심기를 많이 불편하게 하는,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가도 이해할 수 없다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어쩌면 깊은 나의 내면 어느 구석에 안나와 동일하게 생각하는 나를 만나서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유년기를 보내지 않은 나에게도 한국이란 나라는 모국의 나라지만 타지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초등교육까지밖에 받지 않아서 구사하고 이해하는 언어 수준도 현저히 낮았고 아는 이도 없고,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유대감을 형성하거나 공감대를 찾기가 어려운 적이 있었다. 미국과 한국에서 어설프게 살았던 나이기에 어디에도 속할 수 있지만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붕 뜬 기분을 이 책을 통해 방임했던 나의 고독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었다. 진정한 친구가 나에게도 있는가? 같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소통하며 지내는 것인가? 나는 제대로 정착해 잘 살고 있는가? 책을 읽는 내내 불안불안하다. 그녀가 점점 더 처절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니 마음마저 아프다.

한 사람의 기분이 균형을 잃는다면, 정신은 항상 그걸 평형 상태로 되돌리려고 노력하죠. 무의식적인 반대편이 나타나요. 긴장은 느슨해지는 것을 추구하죠. 슬픔은 찾을 수 있는 환희의 상태에 매달립니다. 지루함은 활동을 찾아요. 한 사람의 극심한 기분 변화와 자기 인식의 부족은 상호 관계가 있어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서 불안이라고 의학적 진단을 내릴 수도 있죠. Pg59

한 사람의 꿈과 한 사람의 상처 사이에는 언제나 연관이 있죠. pg74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 독일어 수업을 들으며 문법과 자신의 처한 상황과 연관시키는 것도 작가의 재치가 넘치고, 안나의 생각과 상황들을 점점 더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안나와 함께 슬픔의 도가니 속에 빠져든다.

안나와 브르노가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가 너무 궁금했는데 책 중간쯤에 소개가 된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즉흥적이고 무미건조하고 사랑인 줄 알아서, 어떤 형태의 사랑에 빠졌노라 생각했기 때문에 동거와 결혼을 했다.

당신은 내게 어울리는 좋은 아내가 될 것 같아, 브루노는 그렇게 말했었다. pg178

결혼을 할 때 부디 이런 마음으로 시작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어느 커플이 되든 간에 끝이 너무 불행할 것 같다.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즉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같다. 물론 상대방 역시 나를 사랑해야하겠지만.

이야기는 줄곳 안나의 입장에서만 전개되어 브루노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 뿐 아니라 안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생각은 전혀 알수 없다. 추측만 할 수 있을뿐. 이야기가 끝나면서까지 안나와 브루노은 제대로 된 대화 하나 없이 관계가 종결된다. 브루노의 입장, 그의 생각을 알 수 없는 것이 좀 답답하기까지 했다. 끝내 해피엔딩일 수 없는 이야기의 끝이 끝이 아닌 것 같은, 읽고 나서도 여운이 많이 남고 마음이 더 공허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껴줄 수 있는, 자존감을 높이는 연습을 누구나 해야할 것 같다. 그 뿐 아니라 소통하고 서로 아껴주고 누군가와의 진실되고 건강한 관계가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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