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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을 기다리는 사람 - 흰 건반 검은 시 ㅣ 활자에 잠긴 시
박시하 지음, 김현정 그림 / 알마 / 2016년 12월
평점 :
오랜만에 나에게 천천히 느리게 느리게 읽고 싶은 책을 만났다.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너무 마음이 따뜻했고, 몽롱했던 것 같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읽는 듯한 기분으로 읽었다. 책을 읽기 전에 작가에 대해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는데, 책을 읽고 있으니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과 시인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작가가 빗방울이라는 음악을 얘기하면서 아빠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데, "아빠"라는 단어에서 왠지 모르게 여자일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글이 매우 섬세하고 몽환적이며 시인답게 서정적인 것 같다. 저자가 언급하는 쇼팽의 음악을 함께 들으며 음악을 음미하였다. 쇼팽의 음악에 대해, 그의 삶에 대해, 그가 사랑했던 조르주 상드를 상상하며 음률에 맞추어 나 역시 마음이 가라앉기도 하고 차분해지기도 하고,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은 만남, 사랑, 이별, 대화로 이루어졌고 쇼팽의 음악과 삶을 다루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는 책을 일부러 한꺼번에 읽지 않고 조금씩 매일 읽었다. 매일 작가와 대화를 하는 듯한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쇼팽의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쇼팽의 천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를 엄청 많이 듣게 되었다.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운 연주이다.
저자 박시하의 일기장을 읽는 듯한 기분으로 조금씩 천천히 음미하면서, 저자와 함께 공감하면서 읽어갔다. 저자와 함께 코코아를 마시며, 때로는 카페라테를 마시며 묘한 기분과 함께 책을 읽은 것 같다. 너무 마음에 와 닿는 문구도 많다.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쇼팽의 음악과 삶, 그리고 박시하 작가와 함께 만난 것 같다.
만남이란 발견이며, 발견은 그 자체가 매 순간 시와 같은 것이다. 당신의 눈 안에서 매 순간 발견하는 나 자신처럼, 우리는 그렇게 삶 속의 시를 만난다. 음악을 만나는 것은 우리의 삶을 확장시킨다. '발견'하는 시 안에서. 삶의 매 순간 속에서. pg17
시간이 음악 속에서 사라진다. 공간은 지워지고 변한다. 음악, 음악은 그런 힘을 가졌다. 무의미를 의미로 전환시키고, 어떤 의미들을 또한 무의미로 만든다. 음악을 듣는 순간에는 그 선율만이, 선율이 만들어내는 감정만이 존재한다. pg21
인생에는 아직 만나지 못한 것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 나 자신조차도 다 만나지 못 했다. 기다림으로 채워진 인생은 고달프고 어려운 것이지만, 또한 한없이 즐거운 것이기도 하다. 아직도 기다릴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에 살아갈 힘을 얻는다. 기다릴 대상이 없다면 인간은 아마도 외로움이나 무기력에 짓눌려 버릴 것이다. pg40
삶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아무리 영광스러운 삶이라 해도 죽음은 필연이니까. 우리에게는 낮 이후의 밤처럼, 빛을 따라오는 그림자처럼 검고 느닷없는 죽음이 찾아온다. pg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