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치하야 아카네 지음, 박귀영 옮김 / 콤마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우선 이 책은 매우 미스터리 하다. 책을 읽으며 계속 생각하는 것은 '이런 스타일의 책은 처음이네..'하고, 손을 못 놓게 하는 매력에 휩싸였다. 이야기 자체가 미스터리 한 것이 아니고 소설의 흐름이 매우 신비롭다고 해야 하나.

이 책은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소설이 아니라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흔적, 손자국, 반지, 화상, 비늘, 음악.

처음에 책을 읽을 때에는 어떤 이야기인지에 궁금함에 포커스를 맞추었는데 읽다 보니 등장인물들을 파악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나를 발견했다.
그들의 이름 역시 말이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속 시원하게 처음부터 말해주지 않고, 타인의 입을 통해 각 장의 주인공 이름을 나중에 알게 해준다. 몰랐는데 이것이 은근 신경 쓰이고, 그래서 일부러 종이에 등장인물 이름이 드디어 등장할 때마다 기재를 해놓기까지 했다. 이 등장인물들은 모두 얽히고설켜있어 정신을 차리고 읽어야 한다. 그러면서 이 인물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때로는 안타깝게 동정의 마음도 생기고, 때로는 뜻밖의 행동에 비난을 주고 싶지만 또 그러기엔 이 세상이 어지럽다.

흔적이라는 글과 손자국이라는 글을 읽을 때는 그냥 평이한 소설이라 생각하며 읽었나 가는데 반지를 읽으면서부터 마음이 쫄깃해지고 다양한 생각들이 엄습해왔다.

 

"당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멍을 발견했을 때 기뻤습니다. 당신이 나하네 집착한다는 표시 같아서." pg33

 

옥상에서 뛰어내릴 정도로 삶이 어둠 속에 있었을 구로사키 차장, 자살을 할 당시에 두려움이나 흔들림이 아닌, '자 그럼~ 요이땅' 하고 뛰어내린 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를 제대로 기억해주는 이 없이 허망하게 세상을 등진 제멋대로인 그 남자를 시작으로 이해하기엔 선을 넘어도 너무 많이 넘으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조그마한 공감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자꾸 몸을 섞는 남녀들이 등장한다. 이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한지.... 좀 난감한 부분이다.

요헤이, 아케미, 고이치 가족 역시 처음에는 아케미를 엄청 이해하다가도 불륜의 냄새를 맡으면서 엥? 하는 느낌이 들다가 일종의 일탈을 생각하는 이들을 대변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문득 고이치 낳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세상이 온통 내 몸과 고이치의 일만으로 가득 찼다. 수유할 때도 그랬던 듯하다. 몸을 써야 하는 일이란 어째서 이렇게도 밀도가 높을까? 하지만 아무리 밀도가 높은 일이라도 언젠가는 끝이 나고, 상대는 떠나간다. pg81
피를 나눈 가족이라도 다른 개체다. 뭘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두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서로 사랑한다고 해도 타인인 이상 얼마든지 상처를 줄 수 있다. pg101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상황이 먼저 소개가 되고 나중이 되어서야 그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한가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나는 그들의 이름이 왜 이렇게 궁금해지는지.... 나만 그런 것인지... 그들의 인생을 내가 엿보는 느낌인데 이름조차 모른다는 것에 다소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남자, 그 여자...식으로 소개가 되는데, 그냥 불특정 다수 중에 아무나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되더라도 그들의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그들은 그냥 아무개가 아니고 특별한 존재로 재발견이 된다. 후지모리, 지카게, 사키, 마쓰모토, 데쓰야, 요헤이, 아케미, 고이치, 다치카와... 각자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면서 살아간다. 인간은 역시 불안전한 존재임을 계속 확인하게 해주며 결국 사람들 속에서 얽히고설키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또한 반영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을 덮고 나서도 뭔가 여운이 남는, 마음에 흔적을 남기는 책인 듯하다.

이 책은 가볍다기보단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읽는 내내 흥미로운 전개로 즐거움을 준다. 궁금증이 또 다른 궁금증을 낫게 하는 책이랄까. 왜 저자 치하야 아카네의 <흔적>이 수상을 했는지 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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