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나에게 처음으로 만나보는 벽돌책이었다. 신기해서 책의 두께를 사진으로 남길 정도로. 장작 5cm였다. 나에게
벽돌책이 준 생각은 정말 길어서 읽기 힘들면 어쩌나 하는 것과 엄청난 이야기를 시리즈물이 아니라 한 권으로 끝낼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소문에 엄청 재밌다란 말에 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최근 읽은 책 중에 엄청난 가속력을 느낄 수 있는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다. 저자 박지리 (나이가 어려서 깜짝
놀랐다)의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문장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술술 잘 읽혔고, 스토리 진행 방식이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한 챕터가 끝날 때쯤이면 뭔가 다른 암시를 던지기 때문에 추리에 추리를 몰고 간다. 그래서인지 몇 백 페이지의 분량을 읽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단 2일 만에 다 읽었다. 밤에도 잠을 자야 하는데 계속 읽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책 제목에서 보이는 것처럼
주인공의 이름은 다윈 영이다. 아버지 니스 영은 문교부 차관이며 현재 3학년으로 제학 중인 프라임스쿨의 위임장이기도 하다. 장차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인물이며 다윈과 아버지는 믿기 힘들 정도로 다정하고 화목한 최고의 부자 사이로 그려진다. 모든 아버지가 바라는 아들과의 관계, 로망이
아닐까 싶다.
다윈이 사는 세계에는 1지구부터 9지구까지 나누어져 있다. 1지구는 모두가 가고
싶은 선망의 지역인 반면, 9지구는 거의 버림받은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소문에는 낮에도 살인이 일어날 정도로 험한 곳이라고 하지만, 실제
가보면 그냥 목적지조차 없는 희망이 없는 지역이다. 60년 전 '12월의 폭동'이 있었다. 4지구~9지구까지 모두
합류해서 폭동이 일어났는데, 실패로 끝났고 처벌의 순간이 오자 오로지 9지구만 죄의 땅으로
전락하였다.
이야기는 다윈의 아버지 니스와 함께 제이 헌터의 30년 추도식을 참석하면서
시작된다. 초반에 다윈이 제이 헌터의 조카, 동갑 여학생 루미 헌터와 만나고 싶어 하는 16살 아이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순수함에 미소짓게
한다. 니스 영은 16살 죽마고우인 제이 헌터의 추도식을 30년 동안 주도해서 열어주며, 그의 가족에 엄청난 호의를 베풀지만 개인적인 왕래는
없다. 12월 폭동 이후 9지구 후디 출신에서 1지구에 정착한 할아버지 러너 영, 항상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부자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니스와 불안한 관계로 묘사된다. 이런 작은 의심스러운 설정들, 이해 안 가는 등장인물들의 감정 변화에 숨죽이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1지구에 사는 니스 영과 버즈의 친구 제이 헌터는 16살에 살인이 되었다. 사건의 수사 결론은 9지구 후디에게 살해됐고,
끝내 범인은 잡지 못한 것으로 종결됐다. 제이 헌터의 죽음으로 인해 친구들은 변했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그러던 중 제이의 조카인 루미
헌터가 제이 헌터의 죽음에 의심을 가지고 사건의 진실과 진범을 찾으려 한다. 진범이 누구인지를 의심하며 읽는 것도 재밌지만 알콩달콩 추리를 하고
있는 16세 친구들을 보며 나도 함께 16세가 된 듯 이야기에 푹 빠지게 된다.
"너무 애써 공부할 필요는 없어. 아이들은 책을 내려다보기보단 하늘을
올려다보고 상상해야지."라고 말할 정도로 다정한 다윈의 아빠의 뒷면엔 냉철하고 날카로움이 있다. 천진난만하고 배려심도 있고 범생이 다윈이 무엇을
알아가게 될지, 이로 인해 다윈은 어떻게 변하게 될지란 생각에 마음이
쫄깃해진다.
산책을 통해 얻은 또 다른 의미 있는 발견은 인류가 얻은
모든 진리가 결국엔 자연에서 온 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어느 오후, 산책을 하던 다윈은 문득 과학과 수학, 철학, 문학, 종교, 예술에서
이루어진 근본적인 성취가 모두 이렇게 하늘과 땅과 나무를 바라보는 행위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학자도 화가도 어느 날 이렇게
똑같이 자연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각자 자신이 바라본 자연을 전혀 다른 기호로 역사에 남겼다. 그 간결한 진리를 체득하고 난 뒤로는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 역시 자연에서 얻은 결과물을 해석하는 과정으로 느껴져 공부에 더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 Pg87~88
루미 헌터는 프리메라에 재학 중인 것을 살면서 무기로 활용하는
부분에서 씁쓰름함을 준다. 사람들은 1지구에 살고, 프라임스쿨이나 프리메라를 다닌다고 하면 인정과 호의의 감정을 보이는 것에 익숙해져있다. 마치
특목고를 다니는 학생들을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처럼 이랄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도 보이지 않는 암묵적으로 신분제도에 대해 생각을 하게
했다. 지역을 나누고 학교의 등급을 매겨서 그 지역이나 학교를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자괴감과 열등감으로 살아가는 건 과연 책 안에 있는
사람들만일까.
인간은 법 아래 모두 평등하지만, 실제 법이 자유와 안전을 보장해
주어야 할 특정 대상을 외면하는 것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레오 마샬의 캐릭터도 매우 매력적이다. 실제라면 아마 난 레오와 친해지고 싶어했거나
열띤 토론을 하고 싶어했을 것 같다.
책 겉표지가 검은색이고 그림 역시 너무 어두운
기운을 주어서 무서운 범죄소설이기만 할 줄 알았는데, 그렇다기보단 다윈 영이 진화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살면서 생각하고 느끼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프리마라 여학교가 네모난 상자라면 학생들은 그 상자
속에서 온종일 경직된 자세로 대시하고 있다가, 이름이 불리는 순간 즉각 한 장씩 튀어나와야 하는 티슈들이었다. 천팔백 장의 티슈를 모두 늘어놓고
봐도 다 같은 모양 같은 크기로 순결하고 보드랍기만 할 뿐 다른 점이라고는 없었다. 루미는 빼곡한 티슈들 사이에 끼여있으면서도 자신은 결코 그
희멀건 물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프리메라 여학교에 있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이 세계를 생각하고, 의시하고, 판단할 술 아는 진정한
인가. (중략) 창 없는 답답한 상자를 견뎌야 했고, 무조건적인 순종을 강요하는 손짓에 복종하는 척해야 했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없어
하루 종일 자기 자신과만 대화해야 했다. 그러나 나중에서도 가장 이겨 내기 어려운 적은 똑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보내는 동류의식의
눈빛이었다. 너도 우리와 똑같은 티슈잖아.라고 말하는. 루미는 프리메라 안에서 자신의 유일함과 개성이 하루하루 무뎌지는 것을 느꼈지만 이러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할 수는 없었다. 프리메라 여학교는 투쟁을 해서 얻은 전리품이었기 때문이다.
pg241
재능은 갑자기 품속으로 날아온 한 마리의 새와도
같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빛깔로 기쁨을 주지만 언제 또 홀연히 품에서 날아가 버릴지 모릅니다. 그 새를 진정한 자기 것으로 길들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훈련하고 반복해서 연습해야 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새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높은 이상으로 여러분을 이끌어 줄 것입니다.
pg279
저자는 인간은 선과 악의 변이, 그리고 선택으로 진화한다는
것을 독특한 스토리 전개로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은 가족소설, 추리소설로 청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하며 부딪치는 과정을 담은 성장소설이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잘 읽히는, 그리고 때론 무거운 주제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재미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