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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 뜻을 세우고 그림을 그리다
조선사역사연구소 지음 / 아토북 / 2016년 10월
평점 :
최근 들어 신사임당에 관한 책이 많이 출판되는 것 같다. 소설도 있고 위인전도 있겠고... 이 책은 오랜만에 너무 알찬 책을 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신사임당에 대한 위인전인 줄 알았는데, 신사임당을 비롯해서 전반적인 그 시대의 분위기, 흐름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더불어 오늘날 며느리들이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했는지 뜻밖에 사실을 알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신사임당의 업적이나 그녀를 높이 평가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대의 상황, 역사적 중요 이슈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가니 더욱더 좋았다.
그 이유는 이 책을 통해 왜 남아선호사상이나, 가부장적인 가정들이 속출되는지, 고부간의 갈등과 시집살이들이 왜 생겼는지, 그리고 왜 이토록 신사임당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지에 대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흔히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가정에게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란 말을 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엄밀히 따지면 조선시대 중후기 때 급격히 심해진 것이었다. 조선시대 초기 때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남녀의 차등이 없었고, 여자의 이혼이나 재혼이 그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아들, 딸 차별 없이 부모의 재산을 균등 상속이 이루어졌다. 부모에게는 재산 균등 상속의 의무가 있었다. 아들선호사상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남자가 여자 집으로 '장가'를 간 다음 처가살이를 하다가 자식을 낳고 훗날 자식들이 성장한 후에 부인과 자식을 데리고 시집으로 돌아오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를 '남귀여가혼' 즉 처가살이이다. 남귀여가혼은 고대 삼국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전해져온 일반적인 혼례문화였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는 혼인 후에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고 여자의 성을 갖고 있을 수 있었다. 족보에 여성을 기록했으며 불교를 숭상으로 남녀 차별이 적었다.
조선 초기에 아직 유교의 의식화가 강화되지 않아 고려 시대의 풍습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에서 태종은 유교의 법도를 강화하기 위해 여성의 재가에 관해 엄격하게 법으로 다스리기 시작했다. 조선 중기 성종 때 <경국대전>을 완성하면서 성종이 여성에게 불리한 법률을 세운다. 과부의 재혼 금지령이 내려지고 열녀가 강제로 탄생된다. 부인을 잃은 남자들은 3년 뒤에 재혼이 가능했으나, 여성의 재가는 금지하고 만약 이를 어기고 재가한 여성이 있다면 그녀의 자녀는 벼슬에 나갈 수도 없고 그로 인해 가문이 몰락한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는 당시 여성들이 당해야만 했던 차별이다.
성종 때 발표한 일명 재혼금지법은 오늘날 여성의 재혼을 터부시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pg50
<경국대전>은 유교의 이상을 현실에 실현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고 조선왕조 통치의 기틀이 된 기본 법정이다. <경국대전>이 완성되면서 유교적 사상이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되었다.

열녀 표창을 요청하는 문서
남편이 사망하면 부인이 재가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적어도 남편을 따라 죽어야 열녀라 할 만하다는 당시 시대의 사고방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pg 48
남편은 재가해도 괜찮으면서 여자는 안된다는 것을 법으로 세웠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여자들에 대한 핍박이 더욱더 심해져서 너무나도 고단한 며느리 생활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여성으로 태어난 게 죄가 되는, 정말인지 말도 안 되는 시대가 있었다. 여성은 자신의 의지대로 배울 수도, 살아갈 수도 없었다. 그런 차별은 성리학적 유교 질서를 확립하면서 생긴 결과로 일종의 부작용이었다, pg20
재밌는 건 시대가 이렇게 많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작용이 아직도 남아있어 '딸 가진 죄', '며느리가 봉' 인 개념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명절 때면 꼭 부부싸움으로 인한 기사가 올라온다. 어머니 세대들은 자신의 시집살이 얘기를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란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조선시대 중기 때부터 성리학적 유교 질서가 잘못 확립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졌다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사임당이 살았을 당시 그나마 좋은 부모님 아래에서 좋은 환경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더불어 그런 신사임당을 지지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홀어머니를 둔 가난한 이원수와 혼인을 한다. 그리고 그는 처가살이를 한다.
그런데 이원수는 신사임당보다 재능이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래서였을까. 신사임당이 눈 시퍼렇게 떠 있는데 이원수는 첩을 데리고 집에 왔다고 한다. 더불어 신사임당이 죽기 전에 유언으로 장가가지 않기를 청했으나 결국 이원수는 그 첩과 재혼을 한다.
이원수와 신사임당이 이에 관해 논쟁을 한 대목을 있는데 읽으면서 너무 웃었다. 둘이 고상하게 부부싸움을 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원수가 제아무리 자신의 주장이 옳다 한들, 신사임당이 논리적으로 주장을 다 깨부순다. 여러 방면에 뛰어난 신사임당을 감당하기에 이원수의 그릇이 작은 것 같아 답답한 남편을 보필하느라 꽤 피곤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사임당은 여자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실력을 세상에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빌려온 옷에 국을 흘려 멋진 그림을 그려 위기를 수습한 이야기, 영의정을 지냈던 정호는 사임당에게 여자 중 군자라 일컬어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칭찬, 자신만의 필체를 구축했다는 점을 통해 그녀는 당연 예술가임이 틀림없다.

책 안에 신사임당의 그림들과 서체들에 대해, 그리고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있다.
남성중심주의의 조선사회에서 예술적, 학문적 재능만으로 뛰어란 인재로 평가받았던 사임당은 자녀들도 훌륭하게 키워낸 당연 존경하고 본받아야 하는 위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훌륭한 조상이 있음에 뿌듯한 마음마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