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 에리히 프롬 진짜 삶을 말하다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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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미출간 되었던 책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가 출간되었다.
심플하고 깔끔한 책표지 만큼이나 내용도 간결하고 내용 또한 의미심장하다.

 

저자 에리히 프롬 교수는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 이다.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 정신과 의사로 재직을 하였으며 의과 교수로도 재직을 하였다고 한다. 이 책을 엮은 이는 라이너 풍크인데 그는 에리히 프롬 교수 의 마지막 조교였으며 프롬 교수의 문헌실을 운영하고 그의 유고를 관리한다고 한다.

이 책은 총 7 가지 statement에 대해 인간의 본질을 설명한다. 각 chapter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간략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철학적, 심리학적으로 논리를 펼친다.
1. 인간은 타인과 같아지고 싶어 한다.
2. 인간의 본질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3. 자유는 진짜 인격의 실현이다
4. 자아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만큼 강하다
5. 인간은 자신의 인격을 시장에 내다 판다
6. 현대인은 깊은 무력감에 빠져있다
7. 진짜와 허울의 차이를 보다

책은 200 pg 남짓한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여느 책들보다 더 곱씹어서 읽어야 하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하며 읽은 문구를 다시 읽고 또 읽게 만드는 책이었다.

선생님, 자유가 다 뭔가요.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질적으로, 구체적으로 자유로운지, 얼마나 자유로운지의 문제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자유"라는 단어의 깊은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자유는 참 다양하다. 이처럼 이중적인 의미도 없을 것이다. 심리적 자유, 시민적 자유, 언론의 자유, 의견 개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신념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 의미가 수없이 많다.

우리는 그 다양한 자유를 만끽하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삶이란 모순과 역설, 고통으로만 이루어진 듯하지만 고통과 수동적 태도를 극복하며 자신의 존재를 깨달아가며 살고 있다고 설명한다. 시몬 베유는 '억압'이 '자유'로 변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인간은 자각에 이르는 만큼만, 현실을 인식하는 만큼만 자유로워진다고 하였다.

피곤한 사람, 절망에 빠진 사람, 염세주의자는 자유에 도달할 수도 없고 피곤할수록 절망에 젖어 있을수록, 염세적일수록 얻을 수 있는 자유는 줄어든다고 한다. '열정적인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퇴보에 빠지지 않고 전진하고 진보하려 노력하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유에 대해 잘 표현한 것이 플라톤의 동굴 이야기이다. 자기 발의 족쇄를 끊고 아무리 힘들어도 참으며 동굴의 절벽의 벽을 기어올라 마침내 정의의 태양을 보겠다는 노력이 없다면 자유가 존재할까?  태양을 본 철학자가 동굴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그들이 본 것은 환영이고 진정한 자유는 진리의 인식에서 나온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자유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삶의 의미가 있을까?  철학자, 신학자, 도덕가, 신비주의자, 심리학자들은 거듭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나는 계속 살아야 할까?" 이런 상황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은 '구원', 불교도는 '해탈'과 '깨달음', 인문주의자들은 '사랑과 타인과의 합일' 혹은 '자기 내면의 조화와 온전함'의 의미와 가능성을 물었다.

 

 선생님, 인생이 무기력합니다.

나는 어떤 것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어떤 것도 움직일 수 없으며, 나의 의지로는 외부 세계나 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아무도 나를 진지하게 대우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공기와 같다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자신 및 사회의 운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힘과 상황을 올바르게 통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바른 사회 이론, 개인에게 적용할 올바른 심리학 이론을 갖추지 못한 것은 무력감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론은 행동의 조건이지만 이론이 존재하더라고 심지어 그 이론에 살짝 다가간다 하더라도 인간은 아직 적극적 행동에 나설 능력이 없다고 설명한다.

 

이 책이 다소 어려운 이유는 저자가 아는 인물들, 그들이 펼친 사상을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학문의 폭이 넓지 않기 때문이랄까. 사르트르가 누구인지 모르고 키르케고르의 사상, 하이데거에 대해 친근감이 없으니, 책을 읽을수록 다소 지쳐가고 있었다. 그냥 글씨를 읽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사상과 대화를 나누며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런 능력이 아직 부족해서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인식할 수 있을 때에만 타인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의식적 헌신이 곧 자신의 사적 공간을 포기한다거나 타인의 사적 공간을 침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은 인식이지만, 또 인식이 때문에 타인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우리가 자신에게 투명화 하면 타인의 불투명성은 인간의 가능성 안에서 투명해질 것이다.

 

너무 어렵고 이해가 안 가는 문장들의 나열이었다. 알듯 모를 듯 이해할 듯 전혀 이해가 안 가듯. 가독성도 매우 낮았지만 이는 나의 독서력이 부족해서였던 것 같다. 철학사전을 옆에 두고 사상들을 살펴보며 책을 읽는 재미는 있었던 것 같다. 심오한 철학의 세계에 또 한걸음 다가선듯한 느낌.
이 책은 많은 철학, 심리학 책을 읽은 후 다시 읽으며 좀 더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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