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의 맛 문학동네 청소년 48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제목으로 인해 이 책을 읽으며 귤의 맛이 어떨까? 란 생각이 들 줄 알았는데, 등장인물들이 먹는 떡볶이가 더 먹고 싶어진 건, 결국 개인적인 취향이 여전히 크게 반영된다는 뜻이려나?


약한 불로 계속 끓고 있던 떡볶이는 국물이 다 졸아들고 떡도 팬 바닥에 눌어붙었다. pg 124


이 새벽에, 냉동실에 비상식량처럼 저장해놓은 미미네 냉동 떡볶이를 살포시 꺼내어 놓는다. 오늘 아침은 떡볶이? 이것이 진정한 책의 힘? ㅋ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책을 만났다. 역시 조남주 작가답다. 흠뻑 빠져 이 어린 소녀들의 각자 이야기와 상황, 관점에서 이야기를 저자의 세심하게 이끌림에 푹 빠져 읽게 되었다. 저자의 친필 사인에 "아직은 그럴 나이"라는 문구가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필자는 유년 시절을 한국에서 자라지 않았고, 이상하리만큼 초등학생 시절의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복잡 미묘한 이야기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이런 경험들, 감정을 느끼며 한국 아이들이 성장할 수도 있겠구나, 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학교 공부, 진학, 학원 관련으로 그려낸 이야기가 그저 말로만 듣던 일상을 간접경험하게 된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한국에서 쭉 성장한 여자 동료들과 가까이 지낼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건 소설이지만, 현실과는 얼마나 다를지 상상하게 된다. 애정과 권력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엇갈리고 나뉘었다. 크고 작은 균열이 생겼다가 메워지고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 각기 속앓이도 했다. pg 149  어쩌면 나 역시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하면서 성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소설 속 아이들이 겪는 일들과는 달리, 외딴 미국이란 땅에서 혼자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언어의 벽과 문화 차이를 느끼고 훌쩍 어른인 척 행동해야겠던 나의 유년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친구끼리 제주도 여행을 가서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사실 그런 거 해보고 싶어서, 한국에 있는 학교를 다녀보고 싶어서 대학원을 가기도 했다. MT 가보고 싶어서 진학했다고 하면, 믿어줄까? ㅋㅋ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아무 일 없기를 바라게 되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별일 없는 하루가 끝나도 다음 날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두 감정 사이를 넘어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pg137



이렇게 사람들은 불안정한 사춘기 시기를 겪을 수 있겠구나, 나는 고세 다 잊고 지냈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과거도 떠올렸지만, 앞으로 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시기를 지낼 우리 아이들을 상상하게 된다. 처음에는 최대한 내가 도와주어야겠다, 잘 지낼 수 있게 좋은 엄마, 좋은 친구가 되어주어야겠다, 란 생각이 들었는데, 은지와 하은이의 관계에서 은지가 들었던 감정을 읽으며, 그마저도 혼란이 오기도 한다.


은지는 하은과의 문제가 해결되어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사실은 다시 은지를 자신 없게 했다. 통화 이후에도 은지가 회복되지 않자 은지 엄마는 서울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도 은지의 것은 아이였다. pg 120



선행, 자사고, 공부, 학원 등에 대한 내용이 나올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내가 아이들을 "이렇게 해야 해~"라면서 볼아 세울 수 있을까?


학원에서 선생 다 뽑은 애들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이 뭔지 알아? 학교 수업은 안 들을 거라는 생각. 애들이 방정식이니 함수니 하는 걸 아, 너무 알고 싶어, 그러면서 배울 거 같애? 그냥 하는 거야. 공부는 습관이고 태도거든. 일단 몸에 배면. 학원에서든 학교에서든 수업 잘 듣고 문제 열심히 풀고 외울 거 딱딱 외우는 거지. pg 54



난 우리 아이가 어떠한 인생의 결정을 하든, 감히 함부로 인생이 망쳤다느니 실패라느니란 말을 지껄이지 말아야겠다, 고 다짐하게 된다.


"제 인생 망치지 않았어요. 망쳐지지 않았어요, 아빠" pg 93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책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윤이, 소란이, 해인이, 은지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어린 시절, 성인이 된 후,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입장으로, 다양한 각도로 이야기가 들린다. 다시 다윤, 소란, 해인, 은지 이야기를 보며 은연중 예상을 하긴 했지만, 진짜 그랬을 줄이야!!! 



초록색일 때 수확해서 혼자 익은 귤, 그리고 나무와 햇볕에서 끝까지 영양분을 받은 귤. 이미 가지를 잘린 후 제한된 양분만 가지고 덩치를 키우고 맛을 채우며 자라는 열매들이 있다. 나는, 그리고 너희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pg 161



나는 어떤 귤에 가까울까? 어떤 귤에 가까운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을까?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낙오되는 것 같고 불안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답을 찾아가면 된다고. 아직은 그럴 나이라고. pg 205 이렇게 나이 먹고 아이 엄마가 되어봐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16세 소녀, 아직은 그럴 나이라는 점에 의심은 없지만, 46살이 되더라도 아직 그래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건 여전히 철이 없어서일까? 어쨌거나 결국 우리는 평생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가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좀 더 태연한 척 하루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