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6
정이현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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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녹는 온도>와 <나의 달콤한 도시>, 그리고 <오늘의 거짓말>을 통해 강한 인상을 주었던 작가 정이현의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를 만나보았다. 잊고 있었는데, 내가 정이현 작가를 좋아했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지? ㅋㅋ) 오랜만에 그녀의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로 이번 책 역시 너무너무 마음에 들었다.

우선 흡입력이 좋고 이야기 전개가 너무 궁금해서 책을 잡자마자 단숨에 읽어버렸다. 너무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있고, 나와 비슷한 생각과 환경, 문화에 젖어 있는 어른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란 생각에 한동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이야기는 기존에 읽어온 소설의 설정과 너무 달라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각 캐릭터들의 변화는 어찌 될지, 왜 이렇게까지 변하게 되었는지, 삭막한 도시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작은 공간에서 얻고자 하는 기쁨과 채우고자 하는 공허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의 첫 문단은 나의 호기심과 관심을 사로잡기 탁월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를 시작할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세영의 오랜 습관이다. 그것은 눈을 뜨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죽는 것이 두렵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세영은 죽음을, 꿈 없는 깊은 잠 속에 빠진 상태라고 짐작했던 것 같다. 하루를 새로 시작할 이유가 없다면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날을 위해 구체적인 조제법은 정해두었다.

심정지를 위해 케이콘틴 20정, 심정지가 오는 순간 살려달라고 외칠 수는 없으므로 졸피덴 10정, 자다가 위가 아파서 깨면 낭패일테니 프로톤펌 프인히비터 2, 3정을 같이 처방할 예정이었다. 좀 더 몽롱한 기분을 느끼려면 마약계 진통제 몇 정을 추가하면 된다. 무엇보다 그날은 생일이었기 때문에 눈을 뜨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게 요동쳤다.

pg 11

세영은 약사이므로 약에 지식인이다. 그래서 (비교적) 정확하게 어떻게 스스로의 삶을 마감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한다.

14살 딸 도우와 함께 사는 약사 세영은 왜 가슴속에 '자살'을 품고 살고 있을까?

딸 도우는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이상적이라면 이상적일 수 있는 공부 잘하는 딸이다. 이 소설은 세영의 가족들의 시점으로 돌아가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파트 대단지에 둘러싸여 옹기종기 살아가는 이들의 동네에 처참한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의 묘사가 뭔가 몽롱하다. 구체적으로 콕 집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이 잘 안 가고 불안과 초초함만 안겨준다. 이 사건을 통해 각 캐릭터들 내면을 들여다보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남편 무원은 호텔 사업을 하겠다고 지방에 자처해서 내려가 답도 없는 호텔 운영을 하며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등진다. 그는 진정 호텔을 성공적으로 운영을 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가족과 현실로부터의 도피와 나태로 뭉친 인물일까?  그리고 그 허무함을 다른 곳에서 해소하려 하는데, 이 또한 굉장히 엽기적이다. 남편과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어 버린 세영, 원인도 구체적으로 모른 체, 서로의 살아있음만으로 유지되는 결혼생활. 가장 비추천하는 관계, 하지만 어찌 보면 현실적으로 이러한 가정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텁텁한 생각이 밀려오게 되는 상황이다. 허기사 나도 종종 우리 아이들이란 끈이 없었다면 과연 남편과 여전히 대화를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아, 정말 혼자있고싶다,란 생각뿐 ㅋㅋㅋㅋㅋ)

도우의 중학교에서 발생한 사건은 도우와 나름 안면이 있는 아이들의 가해자였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세영은 그 순간을 모면한다. "남의 인생에 그렇게까지 개입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 (pg45) 이것이 세영의 생각인데, 사실 이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기도 하기 때문에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바른 해결책이 무엇이었는지 혼란마저 준다. 그리고 비극적인 또 하나의 사건으로 전개되는데, 그저 가슴이 먹먹하기만 했다. 소중한 손주 유강을 잃어버린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떤 심정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나... 누구의 잘못인가.... 만약 가해자들에게 적절한 처분이 내려졌으면, 강이는 무모한 결정을 안한다는 보장이 있었을까? 그 가해자들은 강이의 소식을 가슴에 안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하나.... 가해자들의 부모들은.... 주변 모든 친구들은....

정이현의 소설은 인간이 스스로를 속이면서 저지르는 죄악들이 채무처럼 우리의 삶을 포박하고 종내는 미래를 열어나갈 아이들의 삶마저 위태롭게 만들 것임을 두렵게 경고하고 있다.

작품 해설 "당신의 아이는 어디 있나요?" 이소연 163

정적 속에서 산 지 일주일쯤 지나자 무원은 서서히 부끄러워졌다. 도대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에게, 어디에 존재하는지조차 불확실한 사람들에게 어쩌자고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고 시간과 열정을 바쳤단 말인가. 길에서 마주친대도 아무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터였다. 이제 그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당신의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고 속삭여주는 타인은 하나도 없었다. pg 142

당신의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고 속삭여주는 타인이 필요한 무원이 삶이 나의 삶과 겹쳐서 보이기도 했다. 나의 정신은 안녕하신가?란 생각과 함께.

정이현 작가의 소설만큼이나 너무 감동적으로 읽었던 이소연 작가의 작품 해설을 통해 작품에 대해 이해도도 높아졌고, 제시하는 질문들을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고, 삶에 대해 더 깊게 통찰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나의 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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