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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 - 듣도 보도 못한 쁘띠 SF
이선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5월
평점 :
최근 감기에 된통 걸렸다. 약을 먹어도 위만 쓰리고 감기 증상은 개선되지 않았다. 열이 39도까지 올라 두통과 치통에 꽤 통증을 느끼며 밤낮 통틀어 정말 15시간 이상 잠을 자고 났더니,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행성 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이었다. 하도 잠을 많이 자서 더 이상 잠은 안 오지만, 힘이 없어 움직이 못하겠다고 가족에게 선포하고, 누워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원래 쌓아있던 책탑 중간쯤 있었던 책이, 나의 감기 증상으로 인해 우선순위가 위로 쑥 올라왔다. 왠지 공통점이 있을 것 같아서랄까.
처음 이 책이 내게 왔을 때, 책 표지가 너무 상큼하고 귀여웠다. 보통 SF소설을 생각하면 무겁고 긴장한 느낌을 주었는데, 이 책의 느낌은 샤방샤방이었다. CABINET에서 출간하는 SF소설을 즐겨 읽는데, CABINET에서 새로 출간된 <행성 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을 가제본으로 만나보게 되어 더욱 반갑다.
지구에서도 감기 걸리지 않는 법을 잘 모르겠는데, 행성 어디에서 감기에 안 걸리는 걸 얘기하는 것인가?라고 지레짐작을 하며 첫 페이지를 여는데, 두둥, SF 소설답게 너무 모르는 용어를 많이 사용해서, 어딘가 정리를 하며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고민도 잠시 잊은 채, 그냥 머리를 비우고 읽으면 된다. 역시 소재가 독특해서 그런지, 창의적이고 평소에 살면서 상상조차 하지 않은 이야기가 전개되어 그런지, 행성이 감기에 걸린 것처럼 나도 감기에 걸려있어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어서 그런지, 또 아니면 그저 이 모든 것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그런지 의외로 허허 웃으며 읽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무오 하나가 땅에 떨어지지 않으면 무오 그래도 남아 있고, 떨어지면 (소군)이 된다. - <우주 신학>개정판 33489q장 A24절-
마치 성경에서나 나올법한 느낌이다, 했는데, <요한계시록> 12장 24절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주석이 달려있다.
성경 문구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길래 단어를 살짝 변경해 이런 이야기가 시작되었을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무오와 소군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런 것 같다.
베델스크 행성계 라비다 행성의 무오들은 더 이상 땅에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무오나무는 식물 무오가 자라서 동물(소군)이 되고, 동물(소군)이 다시 식물 소군이 된다. 즉, 소군의 상태는 동물이면서도 식물인 것이다. 단계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것뿐. 라비다 행성에서의 식량은 무오 농사를 통해 얻는다. 동물인 상태인 소군이 몸에서 나오는 빛이 사라지고 회색으로 변하면 식물 소군이 되는 것이다. 옥수수의 아삭한 식감과 감자의 고소한 냄새와 고구마의 달콤한 맛이 난다고 한다.
그러던 중, 라비다 행성이 감기에 걸렸다. 땅은 콧물이 나고, 식물(소군)이든 동물(소군)이든 잘 자라지 않고 식량은 부족하여 행성인들은 식량을 공급에 어려움을 느껴 육체 공유법을 이용해, 하나의 육체에 여러 라비다인이 공유하며 살아간다. 그들에게 가진 행성을 살리는 옵션 하나는 지구를 정복하여 지구인을 죽이지 않은 채 죽이는 것과, 지구에 사는 농업에 관련된 지구인 전문가를 데리고 와서 행성의 농업을 살리는 것이다.
이때, 띵은 지구에서 방영하는 <농사의 전설>을 즐겨보며 그들이 우주에서 가장 유능한 최고의 농사 전문가라고 판단하고, <농사의 전설> 촬영장에 가서 양동마을 주민들(출연진)을 자기 행성으로 데리고 가려 한다. 출연진은 띵을 보고 <몰래 몰래 쇼>에서 몰래카메라 같은 것을 하는 줄 알고, 함께 장단을 맞춘다.
이야기는 지구와 라비다 행성에서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전개되는데, 처음 어려운 용어가 나와 이해하기 어려운 SF소설인가 싶더니, 지구 얘기 나오고 전혀 똘똘해 보이지 않은 행성인들의 행동과 상황을 보며, 그저 웃긴 웹툰을 보는 기분이다. 그저 그림은 내 머릿속 상상일 뿐. 나도 모르게, 등장하는 지구인을 제3자인 외계인(필자)의 시선으로 나도 모르게 바라봐설까 모든 것이 어처구니없게만 느껴진다. 지구에만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착각을 하며, 혹은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그렇게 믿고 싶은 데로 믿으며 살고 있는 지구인들의 대화와 하는 행동을 보니 우리가 아등바등 억척스럽게 사는 모습이 외계인들에겐 이 지구인들의 모습으로 비추어 보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해본다.
농사 전문가가 아닌, 그저 드라마 배우인 <농사의 전설> 출연진들이 감기에 걸려 힘들어하는 라비다 행성을 구할 수 있을까?
저자 이선이 그려내는 세상과 인물들을 이미지화하고 해독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무얼 이야기하려는 거지?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며 읽기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