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몬드>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 손원평의 다른 작품인 <서른의 반격>을 만났다.
전작을 통해 그녀의 글 솜씨에 감탄을 했던 터라 이번 책에서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쩜 이렇게 군더더기 없이 글을 잘 쓰지?

이 책 왜 이렇게 웃긴지. 처음부터 공감 백배 이야기로 시작된다. 출산과 이름에 관련한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너무 웃기다.
'김추봉'이 될 뻔한 사연, 엄마의 의지로 '김지혜'가 된 사연, 학창시절 김지혜가 너무 많아서 김지혜를 가나다 또는 ABC, 큰 지혜 작은 지혜 등으로 불렸다는 사연이 마냥 웃겼다. 본인에겐 싫었을 수 있지만.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김지혜란 친구가 있다. 미스 와이즈. 예쁘다고만 생각한 이름에 이런 사연으로 시작된 소설은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기본적으로 밑줄, 포스트잇, 낙서를 할 수 없는 독자이기에 보통 사진을 찍어 기억하고 싶은 문구를 남기는데, 이 책을 읽으며 어느덧 찍어대는 사진의 수가 엄청 늘어났다.

이 책에 등장하는 어떤 작가의 책에 대해 평가를 이렇게 거침없이 시원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도 마음에 들었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책, 하지만 누군가가 지향점으로 삼기에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바는 너무나 부실하고 흔하며, 별다방에서 녹차 프라프치노를 마시면 읽은 뒤 중고 장터에 내놓으면 딱 좋을 그런 책이라니. 나도 간혹 그런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처음 책을 읽을 땐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사명감? 의리? 때문에 읽은 적이 있는데 요즘은 마인드를 달리한지 오래다. 혹 내 시간을 낭비하는 책을 만나면 과감하게 멈춘다. 아직 안 읽어본 다른 좋은 책이 너무나도 많기에.

이 책을 읽으며 괜히 현재 내가 가진 나만의 문제로 한없이 초라하고 숨고 싶고 작게 느끼고, 세상 따위와 상관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들었을까. 이 책안의 지혜가 나와 유사한 점이 많을수록 괜히 새침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오늘 또 쓸데없는 말을 많이 지껄이고 다녔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면서, 입은 무겁게, 오버하지 말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허세 떨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일침을 가한다. 이 책의 메시지를 떠나, 그냥 그런 생각 마구마구 들었다.

이 책의 중요 내용은 전혀 담지 않은 서평이다. 그저, 꼭 한번 읽어보시라,라고 말하고 싶다. 비록 내가 서른이 안되었더라고, 서른이 훌쩍 넘었더라고, 인생에서 반격은 언제나 필요할 듯하니.

책 속으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면 언젠가 인생 전체가 창피해질 날이 옵니다. pg 22

힘 있는 소수는 언제나 여유 만만하고, 힘없는 다수는 자신들이 무언가를 바꿀 서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요. pg 68

부당한 권위를 이용해 세상을 뻣뻣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대상들이었으며, 그들을 곤란하게 하고 면박을 주고 불평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pg 129

그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올 때면 더 낙오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전히 나는 초라한 집으로 지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그건 결국 내가 변화시킨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의미했다.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세상에 잣대를 매기는 게 온당치 못한 허영심처럼 무겁게 마음을 짓눌렀다. pg 166

비틀대는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간신히 문을 열고 신발을 팽개치듯 벗은 후 화장실로 들어가 헛구역질을 몇 차례 했다. 나오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토하고 싶은데 게워내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니, 세상은 대체 왜 이 모양인 걸까. 이런 사소한 일까지 내 의지대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게 갑자기 무척이나 서러워져 나는 엉엉 소리를 내서 울부짖었다. 너무 취해서인지 눈물도 별로 나오지 않았다. 세면대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마주 봤다. 서른 살의, 젊다면 젊은 낙오자가 서 있었다. 아니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낙오한 적도 없다. 잘 나갔던 적도 없기 때문에 슬럼프라는 말도 사치다. 그러 하루하루 살았을 뿐이다. 내 깜냥만큼, 내 능력만큼. 내 성격이 받쳐주는 딱 그만큼. 그게 나였다.
돌이켜보면 그랬다. 생각대로 행해진 건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내가 결심한 것을 늘 보류했다. 나는 영원히 정진 씨와 헤어지지도, 맘먹은 대로 사직서를 내지도 못할 거다. 도망친다는 규옥의 말은 그런 뜻인지도 몰랐다. pg171

우리는 모두 보잘것없다는 것. 정말로, 하찮기 그지없는 존재들이죠. 특별한 척해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누구나 아등바등 살아가요. 어떻게든, 그저 존재를 확인받으려고 발버둥치면서.
존재를 어떻게 확인받아요.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뭘 확인받느냐고요.
아마 그 고민은 죽을 때까지 하게 될 거예요. 백 살이 될 때까지 같은 생각할걸요. 외롭다고,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었느냐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괴롭고 끔찍하죠. 그런데 더 무서운 거는요,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사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질문을 외면하죠. 마주하면 괴로운 데다 답도 없고, 의심하고 탐구하는 것만 반복이니까. 산다는 건 결국 존재를 의심하는 끝없는 과정일 뿐이에요.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는 게 얼마나 드물고 고통스러운지 알아가는.... pg 180
더는 그들과 섞이고 싶지 않았다. 내 안으로. 나만을 위하여. 세상 따위 어떻게 돌아가든 그렇게 살고 싶었다. pg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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