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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내게 도와 달라고 말했다 ㅣ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으며 한스 라트의 골수 팬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의 재치와 위트에 감탄은 전작인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에서 <그리고 신은 내게 도와 달라고 말했다>까지 이어진다. 어떻게 이런 대화를 이 시점에서 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을 읽으며, 입밖으로 껄껄 웃기도 하며 읽었다. 재치가 있지 유치하진 않다. 비종교인이 읽어도 너무 공감이 되고, 신에 대한 소재를 이렇게 신선하게 다룰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신기하기만 하다. 그리고 한스 라트가 이 소설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 하는지 주목할만하다.
전작에서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던 아벨 바우만이 죽었다. 그리고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야콥 야코비 박사는 원래의 삶을 살고 있다. 책의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야콥은 길거리에서 좀도둑을 만나 소장하고 있는 시계, 지갑 등을 다 털린다. 그리고 지나가던 노숙자에게 그나마 가지고 있던 털모자와 털장갑마저 선물로 주고 집으로 돌아온다.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 자유로운 야콥이 너무 부럽기만 하다. 그래서였을까? 4년 만에 돌아온 아벨이 야콥에게 도와달라고 한다. 메시아가 되어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 달라고 한다. 그러는 과정이 정말 너무 재밌고 유쾌하고 감동적이다. 물론 야콥은 사양을 하고, 그에 대한 이유를 들으며 이 역시 너무 공감을 하게 된다. 야콥 한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는가. 야콥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기부천사인 션과 황혜영 부부가 생각이 났다. 그렇게 통 큰 기부가 꼭 아니더라도 선의를 베풀고 나눔의 즐거움을 더 느끼는 삶을 사는 것이 더 꽉 찬 삶을 사는 것이라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신이 다시 십계명을 작성해야겠다며 고민하는 부분이 너무 웃겼다. 그러더니 드디어 만들었다고 한다. 인간들은 어차피 기억을 못할 테니, 하나로 가자고 하면서 "무관심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신다. 인간들이 마치 이 지구상의 모든 문제들과 관련이 없다는 듯 행동을 하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라는 것이다. 정말 너무 공감되고 창피하고 반성하고 실천해야겠노라 다짐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야콥의 사도 중 노숙자였던 프란츠가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이야기한다. 만일 사람의 건강 상태를 위성으로 체크할 수 있다면, 우리의 고유 정보가 고스란히 노출이 되고 이용이 된다면, 얼마 안 가 건강한 사람들만 집을 구하고 직장을 얻고 의료 보험에 가입하고 할부 금융을 신청할 수 있게 될거요. 그러면서 "어머나! 그럴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우리의 미래에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한번도 이렇게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갑자기 영화 가타카 GATTACA 가 생각이 났다. 상상일 수 있겠지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기술의 발전이 그다지 좋게만 받아들이지 않는 나로선 더욱 프란츠의 음모설이 뇌리에 박힌다.
꼭 읽기를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정말 재미있고 유익하다. <악마도 때론 인간일 뿐이다>를 읽어야겠다.
- 책 속으로
"이미 말했듯이 이건 시작일 뿐이야. 물론 자네한테 예수처럼 열두 명의 사도가 필요한지는 좀 의문스러워. 그 열두 사도 중에는 썩은 계란도 몇 개 있었거든. 하지만 어쨌든 비상시에 자네의 교리를 퍼뜨려 줄 사람들을 주변에 모아야 하는 건 분명해.
"비상시라니, 어떤 상황을 말하는 거야?"
"뭐 예를 들면... 자네가 십자가에 못 박힌다거나, 아니면
pg119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락한 걸 원하고 비겁해. 심지어 자기 이익만 생각할 때가 많아. 내가 심리 치료사로서 장담하자면, 자네는 나를 잘못 골랐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간을 메시아로 뽑은 거라고. 내가 메시아의 자질을 갖고 있을 가능성은 3퍼센트 이하야. pg241
"내 아빠인 신하고 방금 통화 중이었나 보네." 아우어바흐(악마)가 말한다. pg 244
견딜 만해. 다만, 저렇게 몰상식하게 돈지랄을 하는거야 내가 뭐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저렇게 의미 없이 날려 버리는 돈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은 들어. 더 좋은 일에 돈을 쓸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pg 248
어쩌면 자네는 아주 쓸만한 메시아가 되었을지도 몰라. 신의 종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도덕적 우월감도 벌써 갖추고 있고. 다만 쾌락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는 좀 고칠 필요가 있어. 그런 부정적인 생각은 너무 편협한 쪽으로 흐를 수 있거든. 또 한편으로는 자네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관대한 점도 좀 염려스러워. 그것도 바꿔야 해. pg 248
당신들 인간은 원래 그래. 주위를 둘러봐. 여기서도 어떤 사람은 시중을 들고 어떤 사람은 시중을 받아. 어느 나라건 어느 시대건 마찬가지야. 인간들은 제도를 바꾸기보다는 소외받는 이들이 약간 대우받는 느낌이 들도록 그저 월급과 사회 복지 같은 걸 발명했을 뿐이야. 이게 위선이 아니고 뭐겠어? 당연히 위선이지. 왜냐고? 진정한 정의가 없어서 그래. 도덕과 이타심은 거짓말과 어중간한 진실을 버무려서 만든 것에 불과해. 당신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존경할 만한 동기들이 아니라 비열함과 음험함이야. 인간들은 겉으론 고상한 척하지만 속은 악질이지. pg 251
사람들에게 무관심하지 말고, 동물들에게 무관심하지 말고, 식물과 이 지구에 무관심하지 말고, 굶주림과 고통에 무관심하지 말고, 전쟁과 불의에 무관심하지 말고, 환경 파괴를 비롯해 인류 스스로를 망치는 모든 것에 무관심하지 말라는 거지. 이 복음의 의미는 내가 어린 양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결코 영웅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거야.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인간들이 마치 이 지구상의 모든 문제들과 조금도 관련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지. pg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