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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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스 라트의 신작 <그리고 신은 내게 도와 달라고 말했다>가 출간되었다. 아는 지인이 한스 라트의 작품을 너무 재있게 읽었다는 얘기에 나 역시 읽고 싶어졌다. 신작도 나왔다는 소문을 듣고 첫 작품인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를 먼저 읽고 신작을 읽어야지란 마음을 먹고 서둘러 도서관에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첫 장, 두 번째 장을 읽다 책 한 권을 홀라당 다 읽어버렸다. 나름 세워둔 책 읽기 우선순위를 모두 무시한 채 말이다.

한스 라트의 재치 있는 위트와 이야기의 빠른 전개, 이야기를 통해 시사하는 바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더불어 독일의 문화에 대해서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이야기 진행이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등장인물들의 대화 수위나 상황들을 미루어 봤을 때 우리나라와 다른 점을 흥미롭게 지켜보게 된다. 기존 유럽 국가의 책들을 읽어오며 느꼈던 가족, 결혼, 데이트, 직업윤리 등에 대해 이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 고급 와인과 샴페인을 선호하고 갈망하며 산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술주정뱅이로 비추어지는 것이 아닌, 인생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으로 필자는 받아들였달까. 그리고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신'이란 소재라서 종교적인 내용이 언급이 되며 이야기가 구성된다. 나 역시 야콥 야코비처럼 신을 전적으로 믿지도 부정하지도 않기에 유머가 깃든 구성이 매우 재미있다.

어느 날 야콥 야코비의 삶에 아벨 바우만이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신이라며 고민 상담을 하자고 한다. 물론 야콥은 아벨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왜 자신이 신이라 믿게 되었는지에 대해 분석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난다.

야콥이 '아벨 바우만'의 정체에 대해 고민을 하며 파악을 하려 할 때, 어느새 나도 심리 상담자가 되어 곰곰이 분석하려는 자세로 책을 읽는다. 나도 점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면서 아벨이 한낮 정신병자가 아닌, 진짜 신이길 바라고 있는 듯했다. 자신이 신이라는 자가 하는 고민들의 나열이 너무 웃기고 새롭고 재치가 넘친다. 정말 진짜 신이 아벨 바우만의 몸을 빌려 이 세계 어딘가에 있다면, 나 역시 그와 대화를 나누며 우정 아닌 우정을 쌓아가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한스 라트의 표현이 웃긴 것이 많다. 그냥 어떤 신사에 대해 설명을 할 때, '늑대로 변신 중인 늑대 인간처럼 보인다'라고 묘사를 하거나, 마시고 싶은 와인들을 보며, '선반에는 최고급 보르도 와인 여섯 병이 기품있게 누워 목을 따주길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는 표현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위에서도 언급을 했듯, 문화의 차이를 느꼈던 가장 큰 사건은, 야콥의 동생인 요나스의 아이를 가졌다고 야콥에게 하는 대화였다. 미혼모인 상태에서 임신을 했기에 자신의 부모님께 말씀을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와중에 야콥이 하는 조언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이었으면 어느 부모도 이와 같은 반응을 하지 않을 테니.

유쾌하고 재미있는 소재를 더욱더 신선하게 이야기를 풀어주는 책이다. 주변에서 재미있는 책 추천을 해달라고 할 때,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를 꼽을 것이다. 빨리 그의 신작 <그리고 신은 내게 도와달라고 말했다>를 읽어야겠다.

 

- 책 속으로

그건 모르겠소. 그걸 당신이 뭐라 부르든 상관없소. 사실 난 종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천국에 한자리쯤 마련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할 뿐이죠. pg77

"신이 노름꾼이라고요? 거참 흥미롭네요. 예전에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죠.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나도 알아요. 아인슈타인은 낄 데 안 낄 데 모르고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인간이죠. 신은 주사위를 던질 뿐 아니라 룰렛도 아주 좋아해요. pg84

아직도 떠오르는 게 없어? 인간은 언제 만족해야 하는지 몰라. 어디서든 어떤 일에서든 그래. 먹을 때도 그렇고, 일할 때나 술 마실 때나 돈 문제에서도 그래. 잘사는 사람은 더 잘살길 바라고, 더 잘사는 사람은 또 그보다 더 잘살길 원해. pg93

인간들 없이는 내가 뭐겠어? 인간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냐.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을 때만 움직일 수 있어. pg104

나는 방금 깨달은 것이 있었다. 아벨 바우만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광대든 신이든 원칙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아벨이 내게 보여 준 것이 진짜 기적이든 눈속임 마술이든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아벨의 체험이 나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신이 있다고 해도 더 이상은 신에게 요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g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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