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 바티칸의 금서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4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009년 필자는 청소년 용으로 출판된 군주론의 설명서를 읽은 적이 있다. 당시에 두 전직 대통령, 노무현과 김대중이 서거한 시기여서 군주론에 대한 느낌이 더 특별했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국가운영방법을 당시 피렌체의 실질적 지도자였던 젊은 메디치가 지도자에게 헌정하고 그 것을 기회 삼아 정계에 복귀하고자 하는 의도로 기술된 일종의 ‘에세이’였다. 길게 편집해야 200페이지를 넘지 않는 책을 어째서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읽지 않았는가는 개인적인 미스터리(?)이다. 2009년 12월에 관련 글을 쓴 것으로 보면 11월에 읽었고 2013년 5월에 제대로 된 텍스트를 읽었으니 4년 정도 걸린 셈이다. 2009년 10월에 유토피아를 읽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플라톤의 ‘공화국’ 이다. 그러면 소위 말하는 '3대 국가론'을 다 읽게 되는 셈이다. 웬지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전투력(?)이 증가한 것 같은 심한 착각이 든다.

군주론은 고전 중에 하나이긴 하지만 플라톤이나 모어 같은 지성들의 그것과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 저작이 철저히 현실적이며 세속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지성인들이 정치적 리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도덕적, 종교적 가치를 기반으로 평가하고 이야기 하고 교육한다. 따라서 이상적인 리더, 왕, 권력자에게서는 보편적으로 부도덕하다고 평가되는 어떤 요소도 허용이 되지 않는다. 부연하자면 냉혹, 이기심, 폭력적, 반종교적 등이 그것인데 그러나 실제로 이런 특징을 전혀 가지지 않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듯이 그것은 권력 주변에서는 더더욱 찾아보기 어려운 말 그대로의 이상적인 군주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역사 내내 심지어 지금도 권력자에 대한 표상은 거의 변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군주론은 정치, 권력, 지도자를 이야기 할 때 언급되어지는 책이다.




이상은 이상일 뿐

정치라는 것의 목적은 무엇인가?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이런 가르칠 것 같지 않지만 필자가 다닌 국민학교 시절에 사회시간에는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잠시나마 정의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 기억을 꺼내보면 정치란 ‘정권 획득과 유지를 위한 일련의 활동’ 이었다. 어떠한 정의 보다 가장 정곡을 찌르는 정의라고 생각한다.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한 유형, 무형의 모든 활동이 정치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그 것에는 도덕적 관점은 전혀 고려되어 있지 않다. ‘백성을 이롭게 하기 위한 불철주야(不撤晝夜)의 노고(勞苦)'도 사회가 아닌 도덕이나 사상(아주 오래전 우리의 선배님들은 학교에서도 이런 과목을 공부했다.) 시간에 배워야 내용이다.  덕(德)에 의한 정치를 꿈꾸던 공자가 평생 자신의 뜻을 펼 수 있게 해줄 군주를 찾아 다녔지만 말년에 잠깐 그에게 실린 힘도 결국 현실의 권력자들에게는 ‘해당 사항 없음’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정권 즉 권력-'힘을 얹는다'는 의미 자체에는 어떤 형태이던 힘의 논리가 적용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정권(그 것의 목적, 의미, 내용을 떠나 표면적으로) 획득 활동 자체에서 이미 수단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이상적 권력이나 이상적인 권력자는 말 그대로 이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아름다운 의미의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보기 좋게 하려고’ 이다.




‘군주’라는 이름의 직업을 이야기 하다.

군주론의 주제를 한마디로 이야기 하자면 바로 ‘잘나가는 군주가 되는 법’이다. 군주가 어떤 방법으로 군주가 되었던 그 국가의 상황이 어떤가에 무관하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일단 군주가 되면 군주로써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군주가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은 국가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군주가 제 아무리 도덕적이며 선량하다고 해도 내외부의 요인으로 국가 전복되는 사태야 말로 군주가 국민에게 줄 수 있는 최악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의 입장에서도 국가가 늘 전쟁이나 내란, 그리고 경제적 위기, 내부적인 정쟁에 휩싸이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는 바이다. 

물론 군주론의 주장을 다른 시대에 적용하는 것은 마키아 벨리가 살던 시대와 이탈리아라는 지역적 문제 때문에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군주론의 주장을 순전히 기술적인 문제로 국한시켜 본다면 군주, 권력자의 실제적인 위치에 대해서 정확하게 고찰한 것 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왕, 독재자, 정치적 리더 등의 소위 권력자를 하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해보면 ‘군주론’ 적인 가치관은 꽤 쓸모가 있다. 





군주론의 가치와 한계

보통사람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삶의 수준이 퇴보하지만 않는다면 정치에 대해서는 일체의 관심을 가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것은 요순(堯舜)임금 시대에서 현대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이르기 까지 통용할 수 있는 사실이다.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정치에 관심이 많은데? 라고 반문하실 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관심과 의식을 구별해야 한다. 뉴스를 전혀 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연히 정치는 주요한 관심 거리이다. 그러나 관심을 가졌다고 또는 현실 정치에 불만이 있다고 해서 정치적 의식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다. 그냥 궁금해 하는 수준으로는 설사 당시에는 지대한 관심이 있고 불만이 끓어 오른다고 해도 하등의 영향을 줄 수 없는 공 염불(空 念佛)이 된다. 

따라서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이 도덕론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철저히 실무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키아 밸리가 인식한 백성, 시민들은 변화를 싫어하고 현재의 삶이 지속된다면 설사 그것이 노예의 상황이라도 혁신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보았다. 현실적으로는 거의 맞는 판단이고 이것은 현대에서도 틀렸다 할 수 없는 판단이다. 소위 소시민이라고 불리는 과반수의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자신의 의지로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들에는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현대의 일부 시민들이 현실정치 참여나 발달된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실제 현장에 뛰어 든다고 해도 이들의 대부분 역시 당장의 생존문제에 직면하면 소시민의 특징을 드려내기 때문이다. 

군주론의 저자의 바램과는 다르게 그의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하였지만(아마도 당시의 권력자들은 이런 생각을 지난 사람을 부리는 것 보다는 그가 쓴 책을 보는 것이 속편 했을 것 같다. ) 그의 사후에 지난 몇 백 년의 역사에서 군주들 권력자들, 독재자들, 정치지도자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하는 이들과 그들이 되고 싶은 이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교황청에서는 이 책을 금서(禁書)로 정하기 까지 했다. 그의 주장은 비도덕적이고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는 등의 이유였는데 실상은 교황청의 타락이 고스란히 기록된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공자가 평생 자신의 정치실험을 지원할 군주를 못 찾았던것 처럼 마키아벨리 역시 같은 딜레마을 가지고 있었다. 공자가 주장한 대의명분과 신의 등의 도덕적인 군주와 대의 정치는 보기에 무척 좋았지만 현실적으로는 군주의 실제 권력행사와는 많은 차이를 보였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큰 방법이었다. 반면 마키아 벨리의 방법론은 실제로 적용하기에는 적절해 보였지만 사람들에게 욕 먹기 딱 좋은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권력은 인자의 얼굴을 하고 칼을 휘두르는 형국이었기 때문에 공자, 마키아벨리 모두 참조는 할만하지만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다.




군주론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

현대는 거의 모든 것이 고도화 조직화 되고 체계화 되어 있다. 따라서 군주 개인이나 군주 주변의 몇몇 인물들에 의해 국가나 국민들이 좌지우지(左之右之) 되어서는 안된다. 물론 일부 국가에서는 그렇게 하려고 하고 그렇게 되고 있는데 전 인류의 흐름에 역행(逆行) 하는 것으로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시스템에서는 군주론에서 이야기되는 군주의 특성이나 능력 그리고 인성, 지혜등은 현대의 최고 권력자가 아닌 관료에게 적용될 것이다. 현대의 국가는 권력자가 아닌 관료와 시스템에 의해 운영이 되기 때문에 마키아 벨리가 주장한 방법론들은 관료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실 관료가 아닌 관료시스템에 적용하는 것이다. 관료들도 군주론에 등장하는 군주들처럼 결국에는 실정을 한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덜 비인간적인 시스템에 적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해 보인다.

끝으로 우리가 군주론에서 찾아 낼 수 있는 위안이 하나 있어 소개하고 글을 마칠까 한다. 앞에서 줄곧 이야기 했듯이 도덕이 배제된 군주론의 시각은 현대인이 관점에서 보면 마치 전제군주나 독재자를 옹호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 모든 논의에는 반드시 지켜야 군주의 의무가 하나있다. 국민, 시민의 지지위에 군림해야 하는 전제조건이다. 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군주는 아무리 선량하고 나라를 부자로 만들어도 그 자리에서 반드시 내려진다는 것이다. 히틀러를 생각해보면 이 전제는 희망일 수 없다. 하지만 권력자 자신이나 주변인들 또는 정치인들 그리고 금권을 지닌 기업인들 모두 그 권력을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반드시 국민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마키아 벨리의 주장의 요즘시대에 와서 더더욱 위안이 된다.





그런데 진실을 말하자면 이상적인 군주는 실제로도 없지만 그것이 영원하다고 말할 어떠한 근거도 찾을 수 없다. 누가 누구 보다 조금 더 빨리 또는 조금 더 오래 기다리에 매달려있느냐의 차이를 이야기 한 것이 바로 군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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