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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딸을 이해하기 시작하다 - 나이젤 라타의 ㅣ 나이젤 라타의 가치양육 시리즈
나이젤 라타 지음, 이주혜 옮김 / 내인생의책 / 2012년 1월
평점 :
엄마 입장에서 육아할 때 첫 아이를 딸 키우고 나서 둘째를 아들 키우면 쉽지 않다는 말을 가끔 돋곤 했었다. 마찬가지로 보니 아빠 또한 딸을 대하는 법에 익숙하지 않으면 관계 형성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다 막연하게 생각을 해왔다.
최근 우리나라 분위기도 TV에서 나오는 남성 연예인들이 딸 양육하는 법에 관해 드러내며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경우도 보았고, 그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도 가끔씩 자신의 딸 이야기를 하며 일명 "딸 바보 아빠" 라는 신어?인가? 아무튼 뭔가 새로운 말이 형성되어 사용되는 경우도 종종 본듯 싶다. 혹 딸 바보 이 말의 순서를 바꿔서 실수로 바보아빠 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엄연히 다른 의미라고 생각된다.
어찌보면 엄마가 아들 키우는 것보다 아빠가 딸 대하는 것이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두 경우다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성별을 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아직 우리 사회 정서상 엄마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해도 양육의 책임이랄까? 그런것이 엄마에게 아이가 어느정도 성장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귀속된다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아빠의 입장에서 자신의 딸에게 했던 경험적 상황들에 비춰서 속속들이 안내하고 있다. 물론, 책의 저자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기에 문화적으로 다른 표현과 습관 관습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삶속에서 성장과 육아의 과정은 피부색이나 민족이 달라도 보편타당하게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있겠다 싶었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특히나 유교적 정서가 양육자였던 지금의 연세드신 어르신들에게서 주어졌을 것이고, 가부장적 행동과 말들, 일부러 구분한 것은 아니지만, 성역할에 대해 명확한 구분선을 두고 암묵적으로 구전이나 가정의 약간 다른 습관이나 가품을 통해 자신들이 익숙해지고, 받아들였던 방법들과 달라서 적응하기 힘들기도 하고, 맘은 있으나 표현하는 데 쉽지 않아 갈등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 아빠들도 대다수일 수 있겠다는 것도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분위기를 그대로 다 따라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시시비비적 관점에서 옳다 할 수 없지만, 삶을 살때는 문닫아 놓고 우리 가족만 살아갈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수 있겠기에 어느정도는 흡수하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곤 했다.
그렇기에 문화와 습관 관습이 다른 곳에서 성장한 저자의 생각이나 견해를 참고 삼으면
막연하지만, 소소하게 딸들의 심리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엄마들이 양육자인 경우가 많아서 아들 이해하는 법? 아들 양육하는 법?을 주제로 삼고 다루는 책들을 가끔 오프라인 서점에서 접해본 적 있다.
이제는 양육의 책임도 엄마 뿐 아니라 아빠도 많이 참여하고, 보조를 맞춰 하는 경우가 속속들이 증가하는 듯 하나보다. 아빠의 시선에서 딸의 정서를 이해하는 책이 출간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싹싹하고, 자상하게 딸을 스스럼 없이 대하는 아빠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딸들에게 대하는 방법이 옳다 그르다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위에서 언급했듯이 맘은 있지만, 표현에 익숙하지 못하거나, 왜? 딸들에게 자상해야 하고, 딸들의 심리를 이해해야 하는지 중요성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할 경우에 참고자료로 읽어보고 각자의 생활에서 맞는 방법을 다시 재창조해서 적용하는 것도 좋을 듯 싶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나는 나이고, 내 삶을 대신 부모라 할지라도 살아줄 수 없기에 각각의 상황에 따라 시행착오 과정은 있을 수 있고, 설령 육아기간 내내 시행착오라 할 정도라고 할 정도로 헤매다 끝을 내는 경우의 발생확률이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변화하는 사회에서 정보의 증가로 예전처럼 굳이 부모를 통해서 자녀들이 정보를 얻지 않아도 외부에서 학교나 친구, 기타 IT기기들, TV나 길거리 광고등으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이즈음, 물론 가정교육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자녀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가정의 삶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럼에도 한편에선 자동화나 기기화를 통해 인간관계에서 오는 정이라는 연결고리의 의미가 퇴색되어짐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무조건 가정 내의 부모의 책임론으로 언급하며 가정교육이 안되서 그렇다고 하는 말을 하는 경우도 간접적으로 접해봤다.
물론, 사회의 기본 단위는 가족이라 가족이 올바로 서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요즘 삶을 유지하기 힘들어서 부모들이 집이 아닌 다른 외부 활동을 통해서 경제활동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지기도 하고, 설령 집에서 양육을 한다 해도, 관심을 쏟다보면 간섭이나 잔소리로 흘려버리는 상황도 도래한다고 알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와 같은 책들의 출간은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듯 싶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시각으로 출간되어진 내용을 담은 양질의 책이 아닌 외국 육아서에 의존해야 해서 우리 정서랑 맞지 않고, 그냥 이론으로 흘려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는 듯 싶어서 조금은 아쉽다.
묘든 아빠들이 딸바보 아빠처럼 자상하게 다른 성인 아이들을 대하고, 정서적인 교류를 올바로 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그렇다고 아들들 교육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아니다.
이제껏 잘 해왔지만, 그럼에도 지금보다 더 소소하고 섬세하게 자신들의 아이에게 관심을 쏟을 필요성이 부여된다는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이다.
쉽지 않다면,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기본적으로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갈 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기본적으로 삼을 수 있는 공통의 요소들을 이끌어 내서 내것으로 받아들이는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자녀들과 솔직하게 인정하고 수정하고 고쳐가는 내용을 담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인간성 상실화에 대한 안타까움을 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것이 막연하고 머릿속 상상으로 밖에 할 수 없거나, 혹여 머릿속 상상 또한 사치라 할지라도 희망이라는 양념을 담아 가슴에 고이 살포시 새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