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욥기는 42장이 끝이다. 43장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기독교이고, 세례는 받았지만 교회를 가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사를 하면서 옮긴 동네 교회에서의 노골적인 정치공방, 원치 않는 맞선의 분위기 등등이 원인이었다. 
교회는 엄마 손에 이끌려서 함께 갔던 곳이고, 나의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교회를 주말마다 갈 때 마음이 평온해졌던 건 사실이고, 기도를 하고 나면 속 시끄러운 고민들도 사라지곤 했다. 성가를 부르면 감기 때문에 잠겼던 목도 괜찮아지곤 해서 이게 바로 기적인 걸까 생각했던 어린 시절. 한때 언론에서 좋지 않은 질타를 받았던 몇몇 교회들은 유년 시절 맹목적으로 빠졌었던 믿음의 증거이기도 했다. 

늘 열심히 필기하며 듣는 엄마와 달리 머리가 점점 커지면서, 도무지 목사님 설교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결론이 항상 비슷했고, 상황이 이해가 안 가서였다. 
어릴 때야 시키는 대로 따라 했지만 성인이 되면서 인격이라는 게 생기니 삐딱선만 타게 된다. 
고난 주간이라고 금식하는 기간도 있고, 성경을 읽다 보면 의문만 생겼다.
도대체 왜?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그냥 하나님의 뜻이란다. 
납득이 잘 가지 않는 상황은 쌓여만 갔다.

어릴 때는 그림 성경으로 성경책을 접했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독파한 적이 없어서 욥기에 대한 내용을 떠올리는데 상당히 힘들었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접하고 나서야, 아하.
그런데, 욥기는 42장까지만 있다. 43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강한 궁금증이 생겼던 제목이었던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욥기를 읽다 보면 몸 안에 사리가 생길 것 같다. 왜 그런지는 한번 읽어보시라.



욥기의 내용은 단순하다. 늘 겸손하고 믿음이 충만한 욥이 있었다. 
어느 날 하나님 앞에 나타난 사탄의 도발에 하나님은 욥을 시험에 들게 한다.
그의 재산과 자손, 심지어는 그 자신의 몸조차 성하지 않게 병들게 만든다. 하지만 목숨을 빼앗지는 않는다.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나, 주변 사람들이 자꾸만 멋대로 해석을 하여 주제넘게 충고, 혹은 참견을 한다. 뭔가 죄를 저질러서일 테니, 용서를 구하라 같은 말들이 오고 간다.
욥은 하나님께 항의를 한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하나님에게 자신의 무지와 약함을 인정한다.
욥은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처음보다 더 나은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평화롭게 죽었다.

아주 예전에 읽었던 욥기의 내용을 떠올리다 보면 몸에서 사리가 생길 것 같다.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은 사내가 몸에 병까지 얻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오해만 살 뿐인 최악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기 보다 나는 결백하다고 항의할 뿐이라니.
이 어찌 답답하지 아니할 수 있는가. 
오래전 읽은 답이 안 나오는 욥의 상황은 어제 본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등장인물들의 상황들과 왠지 비슷하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모두 기구한 상황이고, 조국의 운명처럼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은 사람들이다. 
그 시절을 살아가던 조상들은 굴욕의 상황 속에서 종교를 믿었다면 한 번쯤은 자문했을 것 같다.
이것이 주의 뜻입니까? 



성경을 모티브로 구성한 방화사건 소설이라는 신박한 설정을 한 이기호 작가. 

마지 욥처럼 모든 것을 잃은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들.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는 참 특이한 소설이다. 
제목도 궁금증을 유발하지만 차례를 읽고 있노라면 도무지 어떻게 돌아갈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읽다 보면, 방화 사건에 얽힌 인물들을 차례로 심문하거나 조사하는 느낌인데, 등장인물들의 말투와 상황을 읽다 보면 그 사람과 대면하는 기분이다. 
동네 고등학생, 소방수, 식당 주인, 교회 관계자, 목사의 부인, 목사의 아버지인 장로 등등이 등장하는데, 각 인물들의 흘러가는 대화를 읽다 보면, 전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사건을 보면 각자의 시선과 자신이 본 것들, 아는 사실들을 말하는데, 모두 다른 입장이다.



등장인물에 따라 확연히 다른 말투와 사투리가 굉장히 생생하게 느껴진다.


사건을 각각 다르게 보는 시선과 관점들. 

이야기는 화재에서 장로의 과거, 장로의 아들 목사와 그 주변 인물들의 상황으로 흘러간다.



처음에 화재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 지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점차 장로의 과거, 그리고 화재로 죽은 장로의 아들 목사인 요한과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사건 조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추리소설 읽듯이 누가 방화한 것인지 추측하게 된다.
주어지는 자료로 추리하면서 추측하던 상황들은 과거 시절 장로의 간증과 함께 등장하는 하나님의 소환으로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목사 최요한의 부인의 이야기는 사건의 중심을 향해 가는 듯했다.


장로의 과거 간증으로 드러난 속마음. 

누군가의 아버지란 존재는 이렇게나 어려운 존재인 것인가.



장로 최근직, 마지 욥처럼 모든 걸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절망 속에서 화장 입어 짓무른 피부를 나뭇가지로 찌르면서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잔혹하신 하나님 아버지 보소서.
이제 다 되었나이까.
굽어서 나를 보소서. 침침한 골짜기와 흙덩이에 무릎 꿇은 나를 보소서.
당신께서 완력으로 핍박하신 내가 이제 여기에서 끝을 보고자 하나이다.
이것이 주의 뜻입니까.
이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그 뜻이 닿기 전에 내가 먼저 의지를 보이리다.
내 의지로 당신을 찾아가 그 이유를 물으리다.


과연 장로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일까.
주변 인물들이 방화사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시각, 이야기들은 결국 마지막엔 합쳐진다.
그리고 맨 처음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다.
이 모든 게 과연 하나님의 뜻인 것일까. 
결국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장난이라면 차라리 낫겠으나, 실은 자신의 치부를 가리려는 변명이 아닐까.
대물림되듯 놀랍도록 닮은 상황의 연속 부자간의 갈등도, 아버지라는 존재의 어려움과 무거움.
하나님에게 내 목소리가 안 닿은 게 아니라, 당신이 하나님의 소리를 못 드는 건 아닌지.
불통을 마지막으로 소환한 하나님이 이야기한다.

이래도 안 들리냐?

이래도......?

이래도......?

너 혹시...... 너도 혹시 누군가의 아버지이더냐?


종교적인 소설이라 무겁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의외로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생생한 등장인물들의 표현과 묘사, 역설적인 상황의 황당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이 소환되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다니, 이 얼마나 인간적인 상황인가.
두 번 정독하면서, 기억 안 나는 욥기를 다시 읽으면서 오래간만에 집중해서 읽은 소설이다.
소설적 발상에 목마른 분들 한 번 읽어보시라. 
무거운 주제라도 이렇게 쓸 수 있구나, 감탄하실 수 있을 것이다.


진지 전능한 신을 인간적으로 그려놨던 영화 작품인 브루스 올마이티, 이웃집에 신이 산다. 너무 불평불만을 퍼붓지 말자, 

어느 순간 신이 그럼 너 한번 신 해봐 할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살고 싶어 - 마음속 때를 벗기는 마음 클리닝 에세이
가오리.유카리 지음, 박선형 옮김, 하라다 스스무 감수 / 북폴리오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제목과 일러스트를 보면서 내 마음 같다고 생각한 책은 처음이다.



살면서 가장 힘든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나에겐 인간관계였다. 
가뜩이나 좁은 인간관계지만, 나름 유지한다고 많은 에너지를 썼다. 
어떻게 하면 내가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며, 곁에 두고 싶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무리를 한 경우도 많았다. 
내 안의 에너지가 충만할 때는 상대방에게 살짝 섭섭함이 느껴져도 그냥 잠시 속상해하다가 쉽게 날릴 수 있었는데, 내 상태가 좋지 않으니 그게 쉽지 않았다. 상태가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보면 괜찮아지겠지 싶어 한동안 사람들은 만나지 않았지만, 상태는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쉬었다가 만나도 같은 상황은 계속되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우울함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날들이 지속될 때 몇몇 책과 영상의 도움을 받았는데, 잠깐 동안만 효과가 있을 뿐 좋지 않은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보게 된 영상 중 정용실 아나운서의 "왜 저 사람은 나한테만 딴지를 걸지?"(대화할 때 감정이 중요한 이유)였는데, 이 영상에서 중요한 점은 먼저 내 감정을 먼저 잘 들여다본 뒤에 타인과의 갈등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상대방에게 화가 났을 때, 정말 그 감정이 화가 난 것인지, 다른 감정이 있는 것인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실은 진짜 문제는 상대가 아닌 내 감정이나, 내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살고 싶어" 책 제목을 보고, 문장을 읽은 순간부터 마음이 살짝 가벼워졌다.
누구나 다 한 번쯤 생각하는 문장이기도 하고, 그러기를 바라기도 하니까.



어떤 일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한없이 속상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 임상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



책 서문에 나와있는 문장처럼,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속상해도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 책 자체가 임상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의 인지 감정 행동요법 중 ABC 이론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은 책이다. 



앨버트 엘리스의 ABC 이론을 쉽게 풀어놓은 책.



처음에 책을 읽을 땐, 긍정적인 느낌보다는 부정적인 느낌이 앞섰다는 게 사실이다.
말처럼 그게 과연 간단할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책 자체에 의문이 들었었다. 
우울증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이기도 하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방치하기도 한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털어놓기 힘든 문제들을 SNS나 잘 모르는 커뮤니티에 익명으로 올리면서 마음을 다독이기도 한다. 
그냥 방치하기 보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문제 해결에 좀 더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 책은 생각보다 빨리 읽혔고, 한 번 읽었을 때보다 반복해서 읽을수록 더 마음에 와닿았다.



누구 때문에 침울한 게 아니라 실은 그건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마음에 정말 와닿는 문장들.



책은 4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챕터마다 핵심적인 포인트를 잡아서 다시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처음에 읽을 땐 잘 모르다가, 의외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알 수 있다. 
정말 화나는 일이 있을 때, 차분하게 이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그리고, 내 마음 깊은 속 생각이 어떤지 살펴보고 공책에 옮겨 적어보기를 바란다.
조금 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습관처럼 굳어진 생각의 선택과 기준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우울하다고 한심한 건 아니다. 사람은 언제나 우울한 건 아니니까.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간단하게 바꿀 수 있다는 힘을 주는 책이었다.
첫 번째 읽었을 땐, 말로는 참 쉽지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읽으면서 생각이 조금씩 변해간다. 
임상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의 문장이 마지막으로 가슴에 와닿는다.



가능하면 훌륭하게 사고 싶다,
가능하면 소중한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
가능하면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임상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



인간관계에 너무나 지치고 힘들 때,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 아무 생각 없이 맘 편히 살고 싶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맘 편히 살고 싶다.



마음속 안경의 묵은 때를 닦듯이 내 마음도 깨끗하게 닦아졌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 위안부 소설 그 두 번째 작품 "흐르는 편지", 

작가의 전작 "한 명"이 살아돌아온 할머니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엔 15살 소녀가 위안부로 하루하루 생존하는 이야기다.


 얼마 전 본 맘마미아 2에서 딸이 어머니를 가장 가깝게 느끼는 순간이 새 생명을 잉태했을 때라는데, 영화의 모든 스토리 중 가장 공감 가는 이야기였다. 
다른 스토리가 아무리 막장이어도 그 스토리만큼은 감동적이었는데, 오늘 소개할 책은 새 생명을 잉태했지만 너무나 불안하고 슬픈 15세 소녀의 이야기이다. 아기를 가졌지만, 그 아기는 소녀를 강제로 범한 수많은 일본군 중 하나. 소녀는 강가에서 싯쿠(콘돔)와 몸을 씻으면서, 엄마에게 전해지지 않을 편지를 강가에 쓰면서 흘려보낸다.

 최근 몇 년 사이 일본 위안부 관련 영화와 책들이 등장하고 있다.
알고 있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다루는 책과 영화가 많아진다는 건 너무나 좋은 현상이다. 실제로도 아래에 소개하는 영화들을 극장에서 어린 학생들이 많이 보고 있어서 엄청나게 뿌듯했다.
위안부 할머니가 실은 나와 가까운 이웃의 문제일 수도 있고, 더 이상 침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대중적으로 이야기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 
학창시절쯤 TV로 나왔었던 관부 재판의 실화를 다룬 "허스토리".
그리고 어쩌면 흐르는 편지와 가장 비슷한 입장에 있는 영화 "귀향" 시리즈.
실은 귀향의 경우에는 보고 난 뒤의 후폭풍이 두려워서 극장에서 차마 보지 못했다.
영화가 실제 상황과 비교했을 때 매우 순화된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너무나 많은 걸 함축하는 장면들이 모든 걸 설명해주는 영화였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영화들. 대중성을 살려 만든 작품, 실화 사건을 토대로 한 작품, 

소녀들의 상황을 그린 작품 다양하다.


귀향을 보면서 그대로 전달되었던 소녀들의 불안한 마음이 텍스트로 옮겨온 느낌이다.
돈 벌면서 공부가 하고 싶어서, 혹은 어려운 집안 형편상 팔리듯이, 노래를 할 수 있다길래, 길 가다가 그냥 잡혀온 소녀들의 나이는 적게는 13살에서 많게는 20살 남짓 되었다.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 아닌, 이미 죽은 소녀의 이름으로 불리거나, 이미 죽은 소녀의 방과 옷을 입고 죽지 못해 사는 소녀 금자가 바라보는 위안소에서의 일상은 정말인지 처참하다.
한참 꽃피울 나이에 그녀들은 어쩌다 이런 곳에서 보내게 되었을까.


아기가 생겼지만, 아기가 죽어버렸으면 하는 소녀의 불안. 

엄마가 그립지만, 오카상과 오지상에게 감시당하는 15세 금자


아기를 가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긴 아기의 존재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처참히 범하는 짐승 같은 일본군 중 한 사람의 아이라고 생각하니 끔찍하기만 하다.
주변에 이미 아기를 낳은 상황들을 보면서, 혹여라도 장애가 있는 아기를 낳거나, 사산하면 어떡하나 불안해한다. 아기가 그냥 죽었으면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나날이 커가는 아기의 생명을 느끼기도 한다.
임신한 상태를 들키면 아기집 드러낼까 봐, 조심스럽게 숨기기도 하는 소녀의 불안함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소설이다.


아기가 죽기를 바라면서도 또 무사하길 바라는 소녀의 불안한 심정을 절절히 그려냈다.


아기를 가졌지만, 여전히 짐승 같은 일본군은 금자를 범한다.


 고향집에 되돌아가고 싶어도 버릴 대로 버린 몸이라 되돌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엄마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지만, 영원히 전달되지 않을 편지를 강가에서 쓰면서 흘려보내며 하루를 견딘다.
소녀들의 상황이 너무나 처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시적으로 쓰인 금자의 편지와 속마음이 너무나 아프다.


 작가 김숨의 일본군 위안부 소설 전작인 "한 명"은 살아남은 할머니들의 이야기이다. 이번 소설은 15세 소녀의 시점으로 위안부 생활을 그렸다.


 작가의 전작은 위안소에서 살아남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한 명"이라는 소설이라는데, 아직 읽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이 아마도 할머니나 함께했던 분들의 기억이 아닐까 싶다. 
할머니나 고모님들 시대에 흔했다던 조혼 풍습(19세에 시집가셨다고 한다. 나이 많은 상대나, 재혼, 나이 어린 상대에게)이 나오기도 한다. 할머니의 이름이 항상 남자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엄마에게 들어보니 당시 창시 개명을 해야 해서 ~자 돌림의 이름이 너무 싫어서 그렇게 지으셨다고 한다.
아마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은 기억하시리라. 그때, 그 시절을.
그리고 우리는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하며,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꽃다운 소녀들에게 벌어졌던 만행과 슬픈 기억을.
소녀가 느꼈을 한없는 불안을.


동네 공원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늘 갈 때마다 소녀들을 위해 기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우리가 살 뻔한 세상
엘란 마스타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캐나다의 재능 있는 각본가 엘란 마스타이의 SF 소설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미래는 자꾸만 디스토피아가 아닐까 상상을 하게 된다. 
수많은 SF 소설을 보아도 늘 유토피아적인 미래보다는 디스토피아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소설만 그러한가. 영화를 봐도 미래는 잿빛이 지배적이다.
현재 일어나는 기후적 징후나, 사건들을 보면 후자로 가는 것이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가 오히려 평화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미래는 빌어먹을 악몽 같다. 암울한 미래를 그린 영화와 드라마들. 

블레이드 러너, 칠드런 오브 맨, 시녀 이야기


미래는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SF 소설인 우리가 살 뻔한 세상.
일단 이 작품의 작가 엘란 마스타이는 영화화된 왓 이프로 이미 할리우드 블랙리스트 시나리오로 주목받은 바가 있다. 원작의 재기 발랄함과 달리 살짝 정신없었던 영화지만, 꽤 흥미로운 연애 이야기였다.
연애라기보다는 썸에 가까웠지만.
(당시 그 트렌드가 유행이었는지, 남녀 간의 썸 타는 내용의 영화가 많이 나왔다.) 
호감 있는 두 남녀가 친구 사이에서, 친구 이상으로, 또 연인으로 발전하면 어떨까라는 전제하에 진행되는 스토리로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조 카잔이 나름 상큼한 매력을 선보였던 작품이다.


왓 이프로 이미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로 주목받은 바 있는 재능 있는 각본가 엘란 마스타이의 SF 소설이라니 흥미롭지 아니한가.


소설은 주인공 톰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인류는 현재와 다른 2016년의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 
1965년 위대한 과학자 라이오넬 구트라이더가 발명한 무한 에너지 덕분에 인류는 즐거움을 추구하며 풍요로운 세상 속에서 살고 있었다. 
유능하지만, 이기적인 아버지 밑에서 낙오자로 살아가던 주인공 톰 배런은 아버지의 회사에 낙하산으로 입사하게 된다. 
그 후 아버지가 야심 차게 준비한 시간 여행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나게 된 페넬로페 베슐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 결과로 프로젝트에 지대한 오점을 남기게 되고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망연자실 바라보게 된 톰은 홧김에 시간 여행 장치를 타고 1965년 구트라이더 엔진 초연의 현장으로 가게 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때부터 시작되고, 톰이 과거의 순간으로 간 그때부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만 간다. 

지구의 궤도는 바뀌지도 않고 바꿀 수도 없으며, 영원히 똑같을 것이다.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유능하지만 이기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주인공 톰. 

유토피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세계가 과연 유토피아인 것인가 의심케 하는 구석이 있다.


달라진 과거 뒤에 돌아온 2016년은 톰이 살던 그 유토피아와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다.
현재 2016년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그 시대에 톰은 존 배런이라는 이름의 유명한 건축가로 살고 있었고. 문학적으로 성공한 어머니가 살아계셨고, 학문적으로나 소설가로나 아내보다 뒤처지는 삶을 살고 있는 아버지가 있었다. 또한, 존재하지 않던 여동생까지.
사랑했던 여인과 닮은 여자와는 금세 사랑에 빠지는 행운을 얻기까지 한다.
달라진 현재지만, 그 상황이 오히려 톰에게는 더 유리한 상황이 된다.
과연 톰은 어떻게 해야 할까.


톰이 살던 2016년 유토피아의 환경에서 봤던 건물을 그대로 그려내서 유명한 천재 건축가로 알려진 존.


톰이 살았던 2016년과 존이 사는 2016년의 비교.


당연하게도 이야기는 그렇게 호락호락 전개되지 않아서, 존의 세계에서 살아갈수록 톰 안의 존이 점차 눈을 뜨게 된다. 백 투 더 퓨터의 마티가 과거나 미래로 돌아가서 자꾸만 뭔가를 변경하면서 일이 더 복잡해지듯이, 나비효과에서 더 좋은 과거를 위한 변화를 줬지만 훗날 걷잡을 수 없는 영향을 줬듯이.
시간여행을 하고 과거를 바꾸면서 생긴 평행 세계들 속에 있을수록 점차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기게 된다.


과거를 바꿀수록 뭔가 다른 문제가 생기고, 시간 여행과 평형 세계의 이야기들이 가득했던 영화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책이 말하고자 했던 스토리는 미드나잇 인 파리의 결말과 같지 않을까? 

사람들은 지금 살고 있는 시대가 가장 좋은 시대임을 깨닫지 못한다는 점 말이다.


톰은 점차 존으로 변화되고 가고 있고, 그에게 잠식 당해 가고 있었다.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를 망친 죄책감에 시달리는 톰.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는 스토리에 자꾸만 빨려 들어간다.
읽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반전들이 등장하면서 소설의 결말을 더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과연 톰의 꼬여버린 시간여행의 끝은 어디를 향할 것인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잘 와닿는 이야기 같다.


소설은 마치 웹 소설처럼 2~3페이지 분량의 짧은 챕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산만한 독자를 위해 매우 축약적이면서도 다음 사건이 궁금하도록 스토리가 매우 촘촘하게 잘 짜여있다.
그리고 유토피아에서의 2016년을 축약해놓은 줄거리 축약판도 있다. 스토리를 읽다가 잊어버리거나, 더 빠르게 진행하고 싶은 독자는 이 부분만 읽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도 될 정도로 편한 부분이다.
드라마로 치자면, 과거 줄거리 회상 장면 같은 느낌이랄까.
타고난 스토리텔러의 꼬이고 꼬인 한 남자의 시간여행 및 평행세계에 대한 SF 소설.
읽다 보면 어렸을 때 본 환상특급처럼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작가 자체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소설이다.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건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이며, 어떤 방향으로 살 것인가에 미래가 변하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 별마당 도서관 드림 트리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SF 소설이었다.


주인공 톰 배런이 평행 세계의 존 배런이 되어 했던 즉흥적인 연설은 마치, 이제는 세상에 없는 스티브 잡스의 연설 같다. 
그의 인상 깊었던 연설을 마지막으로 읽어보자.
소설 속 주제는 결국 여기에 함축되어 있었다.


우리 모두는 기대에 못 미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기대에도 미치지 못하고,
이 세상의 기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건축이란 우리 삶이 담긴 예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적 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이 세계가 우리의 상상력을 풀어내는 데 필요한 재료를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것을 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서재기록을 읽으니 부끄러워지는군요. 더 많이 읽지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열대야라 무더운 날씨인데, 잠 못 이루는 밤에 열심히 책읽어야 겠어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