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 뻔한 세상
엘란 마스타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캐나다의 재능 있는 각본가 엘란 마스타이의 SF 소설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미래는 자꾸만 디스토피아가 아닐까 상상을 하게 된다. 
수많은 SF 소설을 보아도 늘 유토피아적인 미래보다는 디스토피아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소설만 그러한가. 영화를 봐도 미래는 잿빛이 지배적이다.
현재 일어나는 기후적 징후나, 사건들을 보면 후자로 가는 것이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가 오히려 평화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미래는 빌어먹을 악몽 같다. 암울한 미래를 그린 영화와 드라마들. 

블레이드 러너, 칠드런 오브 맨, 시녀 이야기


미래는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SF 소설인 우리가 살 뻔한 세상.
일단 이 작품의 작가 엘란 마스타이는 영화화된 왓 이프로 이미 할리우드 블랙리스트 시나리오로 주목받은 바가 있다. 원작의 재기 발랄함과 달리 살짝 정신없었던 영화지만, 꽤 흥미로운 연애 이야기였다.
연애라기보다는 썸에 가까웠지만.
(당시 그 트렌드가 유행이었는지, 남녀 간의 썸 타는 내용의 영화가 많이 나왔다.) 
호감 있는 두 남녀가 친구 사이에서, 친구 이상으로, 또 연인으로 발전하면 어떨까라는 전제하에 진행되는 스토리로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조 카잔이 나름 상큼한 매력을 선보였던 작품이다.


왓 이프로 이미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로 주목받은 바 있는 재능 있는 각본가 엘란 마스타이의 SF 소설이라니 흥미롭지 아니한가.


소설은 주인공 톰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인류는 현재와 다른 2016년의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 
1965년 위대한 과학자 라이오넬 구트라이더가 발명한 무한 에너지 덕분에 인류는 즐거움을 추구하며 풍요로운 세상 속에서 살고 있었다. 
유능하지만, 이기적인 아버지 밑에서 낙오자로 살아가던 주인공 톰 배런은 아버지의 회사에 낙하산으로 입사하게 된다. 
그 후 아버지가 야심 차게 준비한 시간 여행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나게 된 페넬로페 베슐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 결과로 프로젝트에 지대한 오점을 남기게 되고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망연자실 바라보게 된 톰은 홧김에 시간 여행 장치를 타고 1965년 구트라이더 엔진 초연의 현장으로 가게 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때부터 시작되고, 톰이 과거의 순간으로 간 그때부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만 간다. 

지구의 궤도는 바뀌지도 않고 바꿀 수도 없으며, 영원히 똑같을 것이다.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유능하지만 이기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주인공 톰. 

유토피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세계가 과연 유토피아인 것인가 의심케 하는 구석이 있다.


달라진 과거 뒤에 돌아온 2016년은 톰이 살던 그 유토피아와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다.
현재 2016년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그 시대에 톰은 존 배런이라는 이름의 유명한 건축가로 살고 있었고. 문학적으로 성공한 어머니가 살아계셨고, 학문적으로나 소설가로나 아내보다 뒤처지는 삶을 살고 있는 아버지가 있었다. 또한, 존재하지 않던 여동생까지.
사랑했던 여인과 닮은 여자와는 금세 사랑에 빠지는 행운을 얻기까지 한다.
달라진 현재지만, 그 상황이 오히려 톰에게는 더 유리한 상황이 된다.
과연 톰은 어떻게 해야 할까.


톰이 살던 2016년 유토피아의 환경에서 봤던 건물을 그대로 그려내서 유명한 천재 건축가로 알려진 존.


톰이 살았던 2016년과 존이 사는 2016년의 비교.


당연하게도 이야기는 그렇게 호락호락 전개되지 않아서, 존의 세계에서 살아갈수록 톰 안의 존이 점차 눈을 뜨게 된다. 백 투 더 퓨터의 마티가 과거나 미래로 돌아가서 자꾸만 뭔가를 변경하면서 일이 더 복잡해지듯이, 나비효과에서 더 좋은 과거를 위한 변화를 줬지만 훗날 걷잡을 수 없는 영향을 줬듯이.
시간여행을 하고 과거를 바꾸면서 생긴 평행 세계들 속에 있을수록 점차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기게 된다.


과거를 바꿀수록 뭔가 다른 문제가 생기고, 시간 여행과 평형 세계의 이야기들이 가득했던 영화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책이 말하고자 했던 스토리는 미드나잇 인 파리의 결말과 같지 않을까? 

사람들은 지금 살고 있는 시대가 가장 좋은 시대임을 깨닫지 못한다는 점 말이다.


톰은 점차 존으로 변화되고 가고 있고, 그에게 잠식 당해 가고 있었다.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를 망친 죄책감에 시달리는 톰.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는 스토리에 자꾸만 빨려 들어간다.
읽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반전들이 등장하면서 소설의 결말을 더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과연 톰의 꼬여버린 시간여행의 끝은 어디를 향할 것인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잘 와닿는 이야기 같다.


소설은 마치 웹 소설처럼 2~3페이지 분량의 짧은 챕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산만한 독자를 위해 매우 축약적이면서도 다음 사건이 궁금하도록 스토리가 매우 촘촘하게 잘 짜여있다.
그리고 유토피아에서의 2016년을 축약해놓은 줄거리 축약판도 있다. 스토리를 읽다가 잊어버리거나, 더 빠르게 진행하고 싶은 독자는 이 부분만 읽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도 될 정도로 편한 부분이다.
드라마로 치자면, 과거 줄거리 회상 장면 같은 느낌이랄까.
타고난 스토리텔러의 꼬이고 꼬인 한 남자의 시간여행 및 평행세계에 대한 SF 소설.
읽다 보면 어렸을 때 본 환상특급처럼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작가 자체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소설이다.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건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이며, 어떤 방향으로 살 것인가에 미래가 변하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 별마당 도서관 드림 트리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SF 소설이었다.


주인공 톰 배런이 평행 세계의 존 배런이 되어 했던 즉흥적인 연설은 마치, 이제는 세상에 없는 스티브 잡스의 연설 같다. 
그의 인상 깊었던 연설을 마지막으로 읽어보자.
소설 속 주제는 결국 여기에 함축되어 있었다.


우리 모두는 기대에 못 미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기대에도 미치지 못하고,
이 세상의 기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건축이란 우리 삶이 담긴 예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적 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이 세계가 우리의 상상력을 풀어내는 데 필요한 재료를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것을 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