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멈추는 법
매트 헤이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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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엔 40살 정도지만, 실은 400살 넘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시간을 멈추는 법


이 소설을 읽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아무래도 요즘 가장 바쁜 배우 중에 하나인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 영화화가 확정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잘생김을 연기하는 이 멋진 배우가 출연을 확정한 소설이라니! 
어떤 소설인지 궁금한 게 사실이다.
작가 매트 헤이그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는데, 국내에 벌써 8편이나 소개된 작가이고 20대의 우울증에 대한 경험을 쓴 "살아야 할 이유"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소설가였다. 또한 영국의 판타지 동화작가로도 유명한 분인데, 글쓰기와 독서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하신 경험이 작품 대다수에 묻어나는 느낌이다. 
주로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많이 다루는 듯한데, 이번 작품인 시간을 멈추는 법에서도 그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잘생김을 연기하는 컴버배치가 주연 확정되었다는 이번 작품. 

작가 매트 헤이그는 우울증을 글쓰기와 독서로 극복했다고 한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겉보기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지만, 실은 439살이나 먹었다고 주장한다. 
평범한 인간보다 15배나 노화의 속도가 느려서, 남들보다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그런 남자가 있다. 
그가 다시 미국에서 런던으로 새로운 삶을 여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생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꾸준히 여러 작품 속에서 등장한 주제이다. 
즉, 새로울 것이 없는 스토리다.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주로 집중한 포인트는 너무나 흔한 주제를 어떻게 다르게 표현해냈을까였다.
그리고 작품은 기존 작품들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비교적 덤덤하게 한 남자의 인생사를 풀어놓는다.


영생에 대한 부분을 다룬 건 영화 아델라인 : 멈쳐진 시간, 터크 에버래스팅과 유사한 스토리지만,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와도 살짝 유사한 스토리라인이 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과 영생을 사는 남자 주인공과 수사물과의 만남이 있는 미드 뉴 암스테르담과 포에버


계속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지켜야 할 법칙일까? 400년 전 프랑스에서 태어난 어느 한 남자의 이야기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주인공이 겪어온 험난한 인생사를 보여준다. 
중세 시대에 프랑스에서 태어나 종교전쟁으로 런던 쪽으로 넘어와 마녀사냥 시대에, 나이를 먹지 않는 아들과 함께 살아서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온갖 질병이 팽배하던 시대에 사람들이 쉽게 죽어나가는 게 일상이던 어둡던 시대에 만났던 영원한 첫사랑 로즈와의 만남에 대해서도 상세히 그려져 있다. 운명처럼 그녀와 마주쳤던 순간의 첫 만남은 그리 유쾌하진 못했지만, 로즈와 그녀의 동생 그레이스와 함께 했던 그 순간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나날이었으리라.
몇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외모는 눈에 띌 수밖에 없고, 정착을 하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머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을 떠나서 살게 되고, 그의 영원한 사랑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첫사랑 로즈가 죽고 삶의 이유를 찾지 못했던 주인공 톰은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해서 살아간다.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죽던 시대에 결혼해서 낳은 아기는 건강했지만, 로즈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홀로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며 살던 톰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오마이라는 친구를 만나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하고 영원히 사는 자신의 상황이 궁금해져서 당대 유명한 의사를 찾아가기도 한다.
그러다가 프리메이슨처럼 비밀결사단 같은 앨버트로스 소사이어티라는 조직의 수장 헨드릭과 아그네스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조직의 일원이 되게 된다. 바로 자신의 체질을 물려받은 딸 매리언을 쉽게 찾기 위해서. 조직의 일원이 되면 꼭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데, 8년을 주기로 다른 곳에서 새 출발해야 한다는 것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정착하지 못한 채로 유령같이 떠도는 삶을 사는 톰은 런던에서 역사 선생님으로 새 출발하면서 마주치게 된 프랑스어 선생인 카미유에게 다시 끌리게 된다. 하지만, 앨버트로스 소사이어티의 규칙과 과거에 떠나보낸 첫사랑에 대한 죄책감으로 쉽게 사랑을 시작할 수가 없다.

톰이 매리언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과정은 살짝 흥미롭다.
마치 영국 드라마 닥터 후처럼 시간여행을 하듯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시대의 중요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가장이지만 재미있다.
그래서인지, 그냥 평범한 러브스토리이기보다는 시대극 같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 어딘가에도 속하지 못한 채 떠돌면서 앨버트로스 소사이어티 속에서 단순한 재미와 쾌락에 집착하며 살아가게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톰은 소설 후반부, 한때 친구였던 오마이와 마주치면서 인생의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된다.


런던에서는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함께 일하기도 하고, 

미국에서는 그 유명한 스콧 피츠제럴드와 마주치기도 한다.


작가는 마지막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쓴다.
결국 소설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톰이 자신에게 저주처럼 주어진 인생을 다시 새롭게 자유를 찾아가면서 끝맺음을 한다. 과거에 묶이기보단, 현재에 충만한 삶이 자유로운 삶이라고.


세상에는 오직 현재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제는 분명해졌다. 현재는 매 순간 속에서 영원히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직 살아야 할 현재가 많이 남아있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얼마든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시간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면 비로소 시간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나는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않을 거고. 왜?
내가 바로 미래니까.

중세와 격변기의 영국,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등 시공간을 넘어선 다양한 배경이 많아서, 영상화되었을 때 어떨지 매우 기대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애절한 사랑을 하는 고독한 남자로 나온다니, 어서 빨리 마무리되어 개봉되었으면 좋겠다. (현대극, 시대극 코스프레 몹시 기대된다.)
새로울 것이 없을 스토리 라인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꽤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소설이다.


첫 사랑 로즈에, 시공간을 넘나드는 스토리는 자꾸만 영국드라마 닥터후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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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동물원
진 필립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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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이케아 링곤베리 원액. 폐장 시간 후 동물원이라는 밀실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인간 사냥을 그린 작품


아주 예전에 미국 드라마에 푹 빠졌을 때, 한번 중독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드라마에 푹 빠졌었다. 그 드라마를 보기 위해 모 커뮤니티에도 가입하고, 며칠 밤을 새워서 꽤 적지 않은 편수인 그 드라마를 한 번에 감상하기도 했다. 
그 드라마는 24였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주인공이 24시간 동안 겪는 일을 1시간 단위로 끊어서 방영해줬던 드라마다. 대통령 암살을 둘러싼 잭 바우어 요원의 고군분투기인데, 테러리스트에게 아내와 딸을 함께 납치당하고 그 와중에 테러리스트들로부터 대통령을 암살하라는 강요까지 받는다. 
대통령 암살을 막음과 동시에 사랑하는 가족까지 구해야 하는 잭 바우어의 고생바가지 행진의 스토리지만, 당시엔 처음 보는 드라마여서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으로 한편씩 감상했다. 
지금이야 아류작들도 많고 24도 시즌을 거듭해가면서 시시해지긴 했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상황과 말을 너무나 듣지 않는 트러블 메이커 딸이었다.
아무리 말을 안 듣는 시기라도 고구마 100개가 체한 듯한 느낌의 반항기의 딸내미가 압권이었달까?
특수요원들의 딸내미들은 왜 그렇게 납치를 잘 당하는 건지. 테이큰 시리즈만 봐도 그렇고.
부성애를 앞세운 전직 요원들이 딸을 구하는 일도 이렇게나 힘겹다.


드라마 24가 신선했던 느낌은 24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을 1시간 단위의 실시간 드라마였다는 사실이다.


잭 바우어도 브라이언도 특수요원인데, 항상 딸내미가 이유 없이(물론 이유가 있다.) 납치당한다.


작품상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구절.


오늘 소개할 책은 평범한 한 아이의 엄마인 조앤이 어린 아들인 링컨과 폐장 시간에 가까운 동물원이라는 공간에 완벽하게 고립되어 약 3시간 동안 추격당하며 생존하는 내용이다.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공간인 동물원.
아이와 함께 있다가, 폐장 시간이 다가오자 서둘러 동물원을 나가려던 조앤은 우연히 총소리와 함께 그곳에 총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되고, 그들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다.
그리고 동물원 바깥에 있는 남편에게 문자를 넣어서, 남편을 안심시킴과 동시에 동물원 안의 상황을 알려준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폐장한 동물원에 남아, 로비와 마크 패거리에게 쫓기는 몸이 되었다. 정확하게는 묻지 마 살인의 희생양이 되어 추격당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추격자들에게 쫓기게 되는 상황에서 마치 폭탄같이 언제 울거나 칭얼거릴지도 모를 아이를 달래고, 지키면서 그녀는 이동한다.


소설은 시간과 사건이 길게는 30분가량 짧게는 10분가량으로 진행된다.
조앤과 링컨, 케일리라는 10대 소녀, 마거릿이라는 할머니, 그리고 이들을 쫓는 로비와 마크의 시점으로 바뀌는데, 쫓기는 사람들과 쫓는 사람들의 시점으로 나눠서 읽으면 좀 편하다.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폐장시간 후 동물원에 꼼짝없이 갇히게 된 사람들을 마치 사냥하듯 쫓는 사회 부적응자 혹은 사이코패스들을 다루는 스토리로 점차 진행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평범한 엄마가 아들과 함께 묻지마 범죄자들에게 쫓기면서, 철모르는 아들을 달래기도, 소리 내지 말라며 인내심의 한계를 참으면서 이동해 가는 과정은 참 눈물 난다. 


폐쇄된 공간인 동물원에서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쫓기면서 아이를 홀로 지키는 그녀에겐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기 싫어도, 그들과 함께 잠시 스쳐갔던 사람들의 최후나, 갓난아기와 함께 추격당하는 엄마나 그 후의 상황들을 보면서 조앤은 점차 아이와 함께 생존을 목표로 하다가 점차 아이를 지키기 위한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또한 갓난아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간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그녀가 처한 상황을 비슷하게 겪게 되자 그 선택도 이해하게 된다. 자신 또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 결국 같은 선택을 해야 했기에.


쓰레기통에 방치된 아이를 보고 기겁했던 조앤은, 갓난아기의 엄마가 겪은 상황을 곧 이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중간에 잠시 마주치는 케일리와 마거릿이라는 타인도 처음엔 쉽게 믿지 못하고, 이들과 함께 이동하면서, 그나마 통제 가능한 아들 외에 타인들과 함께 한다는 게 버겁고, 생존하기 위해 흩어지는 걸 선택하기도 한다. 
목숨에 위협받는 상황일 때 인간이 얼마나 초인적인 힘과 머리를 써서 상황을 파악하고 냉정해지는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한 작품이기도 하다. 살기 위해 때론 다른 생명이나 상황을 그냥 지나쳐 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엄마와 아들 간에 보이지 않는 연결점을 다룬 상황을 보면서 많이 공감했다.
언젠가 엄마에게 사고가 났을 때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던 기억이 났다.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이들이 일탈하면서 결국 무시무시한 선택을 하게 되는 상황을 다루기도 했다. 
잠시 옛 스승과의 조우에서 갱생의 기회를 마다하기도 한 로비가 한순간에 잘못된 선택으로 나락에 떨어지는 상황은 어쩌면, 이들을 외면한 사회의 결과가 아닐까 싶었다.


사회의 외면을 받은 이들은 결국 모여서 현실과 가상을 구분 못하는 일탈을 꿈꾼다.


추격에 쫓기면 쫓길수록 그녀는 상황에 필요한 것들을 냉정하게 파악하면서 사태를 해결한다.


그 어느 곳도 테러나 묻지마 살인에서 안전할 수 없는 현실과 일상을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동물원이라는 가족의 일상을 보내는 장소가 폐쇄된 상황에서 얼마나 무서운 장소로 변모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또한 평범한 엄마가 아이를 위해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면서 생존을 위해 냉정하게 변모해가는 과정을 다루기도 했기에, 극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했던 이들도 실은 일상생활 속에서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는 누군가 중 하나이고, 사회와 부모에게 외면당한 어느 누군가의 한순간 일탈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멋진 작품이다.
드라마 24시간 만큼이나 심장이 쫄깃해지지는 않지만, 급박한 상황과 실처럼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인 상황이 매력적인 밤의 동물원.
동물원이든 어디든 폐장 시간 되기 전에 여유롭게 나가자는 깨알 같은 교훈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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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유정아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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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예전부터 타인의 눈치를 보고 살았다. 

부모나 친구의 관심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혼자가 더 편했지만 늘 외향적인 성격으로 살기를 강요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런 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닌데, 괴리감에 괴로워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상대와 상황에 따라 가면을 쓰고 사는 게 편해서,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참 무관심하게 살아왔다.
타인에게 맞춰 살다 보니,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늦은 나이의 방황이었다.

뭘 해야 좋은지 모르겠는 어른의 사춘기란, 참 우울하다.
질풍노도처럼 감정이 몰아치던 유년기 시절 사춘기와 달리 그냥 마냥 우울하다.
나이 들면, 누군가에게 나 우울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힘들다.
주변에 모두들 우울한 사연이 있고, 어릴 때처럼 선뜻 날 위해 시간을 내줄 누군가도 서서히 사라져가는 시기이다.
누구나, 훗날 자신이 이런 모습이 되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면 어떡하지라고 막연히 걱정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한동안 우울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나날 중 제목이 마음에 와닿아서 읽게 된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언젠가, 브런치에서 읽었던 <소비에 실패할 여유>라는 글 한 편에 울컥했던 기억이 나는데, 바로 그 작가분이 낸 책이라는 사실은 읽다가 알게 되었다.


아주 예전부터 이렇게 살아왔기에 청춘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 공감 가는 내용의 책.


책은 네 개의 챕터로 되어 있으며, 

첫 번째와 두 번째 챕터가 가장 맘에 많이 와닿았다.


아마도 20대에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책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멘토 따윈 존재하지 않았고, 대학 졸업 후 쉽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건 나의 탓으로 돌리는 주변 어른들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교수님들은 매사에 너무 비관적이라고 말씀하셨고, 선배들은 너는 젊은이의 패기가 좀 부족한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들에게 나는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서 낙관적이 될 수 있는지, 젊은이의 패기란 게 있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현상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왜 부정적인 관점이 되는 건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소심한 나는 그렇게 묻지 못했다.


너에겐 젊은이다운 패기가 부족해라는 말을 선배에게 들었을 때 묻고 싶었다. 

그게 뭔데요?


무슨 일을 할 때 최악의 상황과 최선의 상황을 둘 다 염두에 두고 일하게 되는 게 왜 태클을 거는 게 되는 건지. 직장 상사들에게도 물어보고 싶었다.
언제나 실패는 존재하는데, 그 실패에 대해서 뒷수습을 해주는 선배나 상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이에나처럼 기회를 엿보며, 내가 실수하기를 기다리다가 비난하고 밀어낼 사람들만 존재할 뿐이었다.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선택의 결과가 최선이 아니더라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준 적 없던 20대의 시절에 봤으면 좋았을 책.


아마도 어떤 사정으로든 꿈을 하나둘씩 포기하면서, 우리는 서서히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쉽게 인정하기란 어렵다.
주변과의 비교와 남들에게 뒤처지는 건 아닌지, 나만 멈춰 서고 있는 건 아닌지.
자꾸만 마음이 불안해지고, 자신을 몰아붙이게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긴 문장은 아니지만 이건 바로 내 머리 속인가 싶을 정도로 공감 가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최소한의 비용이 있어야 여유가 생긴 다는 것, 

빚을 청산하고 그제서야 퇴사할 여유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또 얼마나 공감 가는가.


나를 내려놓는다는 과정은 참 어렵다. 
아마도 대다수가 그걸 경험하게 된다면 편안하게 알게 되기보단,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너무 무리해서 번아웃에 빠지거나, 힘든 상황 속에서 자포자기로 놓아버리게 된다.
과정이 쉽지 않아도 놓아 버리게 되는 순간, 왠지 모를 안도감도 함께 찾아온다.


시시해지면 좀 어떠한가. 그만큼 내가 누구인지는 선명해질 텐데.


아주 가끔씩은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하며 뭐라도 될 줄 알았어라는 푸념을 듣기도 하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누군가는 의미 있는 무엇이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그냥 그런 존재가 되기도 한다. 
사는 게 뭐 이러냐 싶을 때 읽으면 좋을 책이다. 
그냥 막 속 답답해질 때 한 번 읽어보시라. 시시한 존재이면 어떠리.
시시한 삶도 모여서 지나고 나면 소중한 순간이 되어 있고, 인생의 한 부분일 뿐인 것을.
절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 속에서 당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줄 책이다.


작가가 가진 삶에 대한 가치관이 너무나 마음에 드는 구절.


더운 날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선풍기 앞에서 수박이나 먹는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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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 - 나사의 회전 외 7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1
헨리 제임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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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파스텔화와 제법 잘 어울리는 헨리 제임스 단편집. 

습작인 그림은 뭐라 규정할 수 없는 헨리 제임스 작품들과 제법 닮아있다.


예전엔 전집이 집에 있어서인지, 유럽의 고전문학을 참 많이 읽었었다. 
하지만 읽기 쉬운 요즘 책들을 읽다가 영문학에서는 고전 중에 고전으로 손꼽는 헨리 제임스의 책을 오래간만에 읽게 되니, 결코 쉽게 읽히지 않았다. 
단편집이라지만, 600페이지를 압박하는 두께에, 단편을 중편으로 중편을 장편으로 느끼게 하는 빽빽한 글자들과 내용들은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건, 헨리 제임스를 알아간다는 건, 일종의 도전이 되어 버렸다.


젊은 시절의 헨리 제임스는 꽤나 미청년이었는데, 저렇게 변해버렸다. 

평생 미혼으로 살았다는 그.


평생 미혼으로 살아갔고, 심리학 교수로 명성을 날린 형의 그늘 안에서 당대에는 소설가로 인정받지 못하며 살았던 헨리 제임스의 생애는 그의 소설만큼이나 난해하다. 특히 병약하고 소심했다던 젊은 시절과 신경쇠약으로 평생 결혼하지 못했던 여동생 앨리스, 그를 스쳐갔던 몇 명의 여인들 모두 그의 소설 속에서 읽어볼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을 굳이 읽지 않아도 영국 드라마 중 시대극을 좋아했기 때문에, 단골로 리메이크되는 나사의 회전만큼은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꽤 많은 작품들이 영상화되었다.


워싱턴 스퀘어, 러브 템테이션, 도브


제인 캠피온 감독의 여인의 초상, 대안가족에 대한 이야기인 메이지는 알고 있어, 영화 후반작업 중인 아스팬 문서


21세기에 20세기의 문학을 읽는다는 건 참 흥미롭다.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대다수 남자 주인공의 행동은 신사다운 듯 적어놓았으나, 우유부단하거나, 적절치 못하거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관망하고 있는 게 전부이다. 
한마디로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 혹은 모태솔로의 마음속을 그린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것이 그 시대의 미학이었던 것일까?
실제 헨리 제임스의 상황도 별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특히 네 번의 만남과 데이지 밀러, 정글 속 짐승은 다분히 개인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자유분방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데이지 밀러는 당시 시점으로 그렇게나 파격적이었나 보다.

그녀에게 매력은 느끼지만, 그런 그녀가 무례하다고 하는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는 남자 주인공.


여성은 아름다워도 무지한 존재, 매력적이면서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까다롭고 요구 조건이 많다고 비하한다. 상대방의 상황을 먼저 생각해주기보다, 자신의 입장에서 널 이렇게 생각하는데, 넌 왜 이런 나에게 모질게 대하니라는 생각은 참 지질하다.
문장과 묘사력은 아름답지만, 실상은 지질하기 그지없는 남자들의 속마음 이야기들.
20세기 상류층을 살아가는 여성들은 대체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제약이 느껴졌다. 
그나마 다른 대륙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에서조차. 


애매하고 불편한 상황에 대한 묘사가 아주 일품인 헨리 제임스의 작품.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맞장구를 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헨리 제임스 책은 참 흥미롭다. 
작품마다 어떤 관점에서 읽냐에 따라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데, 이건 의식의 흐름에 따른 영화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중 나사의 회전은 리메이크가 그리 많이 되나 보다. 


나사의 회전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 이노센트, 디 아더스, 인어 다크 플레이스 모두 다르게 바라보는 관점에 각색된 작품들이다.


콜린 퍼스 나오는 bbc 드라마판 나사의 회전


2009년도 크리스마스에 각색된 작품인 bbc 드라마. 

원작과 달리 많은 부분이 각색된 작품이다.


원서 자체가 애매하게 쓰여있는 것인지, 번역이 되어도 역시 뜻이 분명치 않다.
헨리 제임스의 소설 대다수가 관점에 따라서 모두 다른 해석이 가능한지라 영화로 따지자면 열린 결말 수준의 떡밥이 여기저기 깔려있는데, 그걸 모두 생각하면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진다. 특히 나사의 회전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과연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논란이 가장 활발하다.
일단 소설의 시작은 자신이 좋아했던 가정교사가 남겼던 기록을 40년 뒤에 공개한 내용인데, 작품을 다 읽고 나면 혼돈이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시골에 아이들과 함께 고립된 가정교사의 히스테릭인 건가.
아니면 정말 유령이 나타난 것인가.
유령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불안처럼 심어주면서 점차 무섭게 변해가는 내용인 것인가. 아니면 영악한 아이들이 그렇게 상황을 몰아가는 것인지. 
마일스와 가정교사와의 관계는? 미묘하게 느껴지는 아이들 간의 관계는? 
의문점은 작품을 읽을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초반에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 후반부가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후반부를 보고 나면, 대략 난감해진다.


이 부분과 몇몇 부분을 읽다 보면, 미묘한 느낌이 든다. 

마일스와 선생님 간의 관계는 과연 단순히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는지.


한국 영화 올가미에서나 볼 것 같은 선생님의 소년에 대한 집착일까, 

유령에게 홀린 소년을 구원하고 싶었던 것일까.


작품을 읽다 보면 거대한 혼돈의 카오스에 휩쓸리게 된다.
그래서 반복해서 읽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 
마치 헨리 제임스의 연약하고 섬세하지만 미청년이었던 모습과 괴팍해 보이는 모습의 늙은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듯이 말이다. 
그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여자 주인공을 살펴보는 남자 주인공은 그녀를 이성적으로 사모한다는 마음보다 관찰자의 태도가 더 큰 느낌이 든다. 또한 여성의 심리상태를 상당히 섬세하게 표현해냈는데, 점차 타들어가는 불안한 심리묘사에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 이렇게 비 오기 직전의 으스스한 날에 읽으면 나도 모르게 전율이 느껴지는 기분이 든다.
불안하고 불편한 상황의 심리 묘사, 유럽적인 것과 미국적인 것에 대한 갈등, 상류사회의 허상과 위선에 대한 풍자, 죽음이 늘 가까이하는 상황은 당시 그가 느꼈던 아웃사이더의 감정의 산물이다.
알 듯 모를 듯한 그의 작품 세계는 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같다.
으스스한 비 오는 날 밤 나사의 회전을 읽어보자. 
노년의 헨리 제임스와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압박감과 긴장감이 조여올 것이다.
마치 가위눌린 것처럼.

헨리 제임스.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두통 유발자인 남자. 
한동안 멀리해야겠다.
그래도 여전히 영향력 있는 작가이기에, 개봉 예정인 아스팬 문서와 현대적으로 또 리메이크되는 나사의 회전의 영상화를 기대해본다.

*보너스 - 나사의 회전 2009년 BBC 드라마판. 
다운튼애비로 유명한 미셀 도커리와 댄 스티븐슨 커플이 같이 등장하고 배경도 왠지 1차 세계대전 이후로 바뀌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한 때 가정교사였던 앤의 이야기를 의사인 댄 스티븐슨이 들으면서 시작된다. 


잘 생긴 의사와 어여쁜 환자의 만남.

아직은 어리고 순진한 20대의 가정교사가 시골 저택에서 매력적인 두 아이와 함께 고립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집안의 사람들은 과거에 대해서 쉬쉬하고, 가정교사는 범상치 않은 기운을 읽게 된다. 과연 그것은 그녀의 망상일까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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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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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가지고 댕기기 좋은 표지와 달리 책의 내용은 꽤나 무겁고 어두운 주제였다.


정권이 바뀌기 전 생겼던 어처구니없던 상황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요즘의 분위기는 문제 있는 상황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문제 있다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는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갑질 논란, 특혜 논란, 미투 문제 등등 여러 가지 문제가 터지고 있다.
그동안 침묵하고 외면하면서 키워온 문제들이 서서히 터지고 있기 때문에, 가끔씩은 파헤치면 누구라도 문제없는 사람이 없다면서 사회가 너무 예민해졌다고들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문제가 고쳐지고 수정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현재 그 사회로 가는 과도기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편혜영의 장편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은 한때 조선업으로 호황이었던 이인시의 선도병원이라는 조직 속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읽다 보면 직장 생활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공감할만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직장 내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는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을 하는지에 대해서 굉장히 건조하고 담담하게 기술해나가는데 이것은 한때 당했던 일이기도 하고, 같이 저지른 일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으로 몰리기 전까지의 상황에 대해서 기술하는데, 그 과정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건 인간이란 한계 상황에 몰리면 결국 본성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최악의 상황으로.

소설을 읽다 보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건, 하얀 거탑이 떠올랐다. 대학병원이라는 조직 속에서 재능 있던 의사가 점차 권력과 야망으로 점차 변해가는 과정을 그려냈다면, 소설은 조직 속에서 개인이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잠식되고 타락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병원이라는 조직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그린 하얀 거탑과 영국 bbc 드라마 바디스


선도병원에서 오래된 고참인 이석은 병원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다. 
조선업의 호황기에 병원이 한참 커가던 시절부터 일해왔지만,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죽은 도시인 이인시에는 빈 병상만 늘어간다. 새로 입사한 무주는 이석의 도움을 받아 쉽게 병원에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석의 비리를 알게 되고 그를 고발하기로 맘을 먹는다.


이인시의 현재 상황과 선도병원 속에서의 이석의 상황. 마치 모기업 중공업 사태를 보는 느낌이다.


무주가 이석의 비리를 고발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일까.


장부상에서 이석의 비리를 보게 되었지만, 이석의 개인적인 상황과 자신에게 대해준 것들을 생각하면 선뜻 고발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를 고발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언젠가 아버지가 될 자신이 아이에게 떳떳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비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였을까.
소설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단순하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만 과거에 직장 내에서 당했던 일들, 혹은 행했던 경험들이 떠올라서 괴로웠다. 


태어날 아이에게 떳떳하기 위해서 무주는 이석을 고발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택한 방법은 홈페이지에서의 폭로.


그리고 그 이후 이석은 병원을 그만두게 되고 그가 그만둠과 동시에 병원에는 영문모를 의료사고가 터진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그런 상황을 밝히기보다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마하려고 한다. 마치 모 병원에서 일어났던 사건처럼. 무주는 그런 상황들이 점차 견디기 힘들어졌고, 동료들 사이에서는 겉도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소설 속에서 병원에 일어난 의료사고는 감추고 정당화한다.


옳다고 생각해서 이번에는 침묵을 지키지 않고, 비리를 고발했지만 직장 내에서 고립되고, 어려움을 당하는 상황은 어디선가 많이 본 상황이다. 하지만, 무주 자신은 과연 옳은가. 
무주 또한 비리를 저지를 때 관행대로 그냥 태연히 저지르다가, 서울에 있던 병원에서 쫓겨난 상황이 아니던가. 자신이 특별히 무능해서가 아니고, 자신만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다른 사람을 고발한다.


직장에서 다른 동료들에게 배척당하자 살아남기 위해 무주가 하는 말 조심해요.


그리고 이석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번엔 승진까지 해서.
하지만, 이석이 무주와 다시 마주쳤을 때의 예전의 그가 알던 이석이 아니었다. 
이미 병원이라는 불합리한 조직과 함께 싸워서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결국 타락 해버리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들. 그들을 비난하기엔, 그런 과정을 한 번쯤 겪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쉽지 않다.

병원은 말이야. 불리한 건 절대 들춰내지 않아.
또 원하면 뭐든 감출 수 있어.
물론 들출 수도 있지.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야.


직장 내에서 살아남는 방법으로 택하는 방법은 대다수 타락하는 쪽이지 않을까.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만 떠오르는 건 개인적 경험이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주처럼 내면적 갈등을 많이 겪을 것 같다. 언젠가 속으로 욕했던 직장 상사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답습하고, 입사 초반과는 달리 점차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고 점차 침묵해가던 직장생활의 경험이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달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의 이석과 이인시는 닮아있다. 

영혼 없이 빈 껍데기만 된 이석의 모습이 안타깝다.


이미 우리가 경험해왔던 우리 사회의 추한 단면들을 모아놓은 듯한 소설은 왠지 대학시절 처음 알게 된 우리나라 역사의 진실과도 닮아있다. 그때 겪었던 충격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한동안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보냈던 때가 떠오른다.
진실을 마주한다는 건 정말 무거운 현실이다. 때로는 잠식할 거 같고, 견디지 못하고 그냥 타락을 선택하기도 한다. 누군가 시킨 것이고, 관행이라고 생각하면 자신이 당할 비난을 미룰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우리 사회의 문제는 자꾸만 커져왔고 곪아왔다. 
사람은 꼭 옳은 선택만을 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다시 선택할 기회를 갖는다. 
소설에서 무주는 그렇게 마음을 먹는 걸로 끝맺는다. 그렇게 희망을 이야기한다.


전임자가 그만둔 이유는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리고 무주 또한 이번엔 자신이 해야 할 것을 뚜렷하게 깨달는다.


책의 두께는 얇았지만, 소설의 무게감으로 꽤나 읽기 힘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단 걸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사회를 반영하는 문학의 힘을 이 책에서 느꼈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불편함과 문제점을 쉽게 이야기하고, 한 발 더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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