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동물원
진 필립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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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이케아 링곤베리 원액. 폐장 시간 후 동물원이라는 밀실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인간 사냥을 그린 작품


아주 예전에 미국 드라마에 푹 빠졌을 때, 한번 중독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드라마에 푹 빠졌었다. 그 드라마를 보기 위해 모 커뮤니티에도 가입하고, 며칠 밤을 새워서 꽤 적지 않은 편수인 그 드라마를 한 번에 감상하기도 했다. 
그 드라마는 24였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주인공이 24시간 동안 겪는 일을 1시간 단위로 끊어서 방영해줬던 드라마다. 대통령 암살을 둘러싼 잭 바우어 요원의 고군분투기인데, 테러리스트에게 아내와 딸을 함께 납치당하고 그 와중에 테러리스트들로부터 대통령을 암살하라는 강요까지 받는다. 
대통령 암살을 막음과 동시에 사랑하는 가족까지 구해야 하는 잭 바우어의 고생바가지 행진의 스토리지만, 당시엔 처음 보는 드라마여서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으로 한편씩 감상했다. 
지금이야 아류작들도 많고 24도 시즌을 거듭해가면서 시시해지긴 했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상황과 말을 너무나 듣지 않는 트러블 메이커 딸이었다.
아무리 말을 안 듣는 시기라도 고구마 100개가 체한 듯한 느낌의 반항기의 딸내미가 압권이었달까?
특수요원들의 딸내미들은 왜 그렇게 납치를 잘 당하는 건지. 테이큰 시리즈만 봐도 그렇고.
부성애를 앞세운 전직 요원들이 딸을 구하는 일도 이렇게나 힘겹다.


드라마 24가 신선했던 느낌은 24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을 1시간 단위의 실시간 드라마였다는 사실이다.


잭 바우어도 브라이언도 특수요원인데, 항상 딸내미가 이유 없이(물론 이유가 있다.) 납치당한다.


작품상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구절.


오늘 소개할 책은 평범한 한 아이의 엄마인 조앤이 어린 아들인 링컨과 폐장 시간에 가까운 동물원이라는 공간에 완벽하게 고립되어 약 3시간 동안 추격당하며 생존하는 내용이다.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공간인 동물원.
아이와 함께 있다가, 폐장 시간이 다가오자 서둘러 동물원을 나가려던 조앤은 우연히 총소리와 함께 그곳에 총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되고, 그들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다.
그리고 동물원 바깥에 있는 남편에게 문자를 넣어서, 남편을 안심시킴과 동시에 동물원 안의 상황을 알려준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폐장한 동물원에 남아, 로비와 마크 패거리에게 쫓기는 몸이 되었다. 정확하게는 묻지 마 살인의 희생양이 되어 추격당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추격자들에게 쫓기게 되는 상황에서 마치 폭탄같이 언제 울거나 칭얼거릴지도 모를 아이를 달래고, 지키면서 그녀는 이동한다.


소설은 시간과 사건이 길게는 30분가량 짧게는 10분가량으로 진행된다.
조앤과 링컨, 케일리라는 10대 소녀, 마거릿이라는 할머니, 그리고 이들을 쫓는 로비와 마크의 시점으로 바뀌는데, 쫓기는 사람들과 쫓는 사람들의 시점으로 나눠서 읽으면 좀 편하다.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폐장시간 후 동물원에 꼼짝없이 갇히게 된 사람들을 마치 사냥하듯 쫓는 사회 부적응자 혹은 사이코패스들을 다루는 스토리로 점차 진행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평범한 엄마가 아들과 함께 묻지마 범죄자들에게 쫓기면서, 철모르는 아들을 달래기도, 소리 내지 말라며 인내심의 한계를 참으면서 이동해 가는 과정은 참 눈물 난다. 


폐쇄된 공간인 동물원에서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쫓기면서 아이를 홀로 지키는 그녀에겐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기 싫어도, 그들과 함께 잠시 스쳐갔던 사람들의 최후나, 갓난아기와 함께 추격당하는 엄마나 그 후의 상황들을 보면서 조앤은 점차 아이와 함께 생존을 목표로 하다가 점차 아이를 지키기 위한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또한 갓난아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간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그녀가 처한 상황을 비슷하게 겪게 되자 그 선택도 이해하게 된다. 자신 또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 결국 같은 선택을 해야 했기에.


쓰레기통에 방치된 아이를 보고 기겁했던 조앤은, 갓난아기의 엄마가 겪은 상황을 곧 이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중간에 잠시 마주치는 케일리와 마거릿이라는 타인도 처음엔 쉽게 믿지 못하고, 이들과 함께 이동하면서, 그나마 통제 가능한 아들 외에 타인들과 함께 한다는 게 버겁고, 생존하기 위해 흩어지는 걸 선택하기도 한다. 
목숨에 위협받는 상황일 때 인간이 얼마나 초인적인 힘과 머리를 써서 상황을 파악하고 냉정해지는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한 작품이기도 하다. 살기 위해 때론 다른 생명이나 상황을 그냥 지나쳐 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엄마와 아들 간에 보이지 않는 연결점을 다룬 상황을 보면서 많이 공감했다.
언젠가 엄마에게 사고가 났을 때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던 기억이 났다.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이들이 일탈하면서 결국 무시무시한 선택을 하게 되는 상황을 다루기도 했다. 
잠시 옛 스승과의 조우에서 갱생의 기회를 마다하기도 한 로비가 한순간에 잘못된 선택으로 나락에 떨어지는 상황은 어쩌면, 이들을 외면한 사회의 결과가 아닐까 싶었다.


사회의 외면을 받은 이들은 결국 모여서 현실과 가상을 구분 못하는 일탈을 꿈꾼다.


추격에 쫓기면 쫓길수록 그녀는 상황에 필요한 것들을 냉정하게 파악하면서 사태를 해결한다.


그 어느 곳도 테러나 묻지마 살인에서 안전할 수 없는 현실과 일상을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동물원이라는 가족의 일상을 보내는 장소가 폐쇄된 상황에서 얼마나 무서운 장소로 변모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또한 평범한 엄마가 아이를 위해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면서 생존을 위해 냉정하게 변모해가는 과정을 다루기도 했기에, 극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했던 이들도 실은 일상생활 속에서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는 누군가 중 하나이고, 사회와 부모에게 외면당한 어느 누군가의 한순간 일탈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멋진 작품이다.
드라마 24시간 만큼이나 심장이 쫄깃해지지는 않지만, 급박한 상황과 실처럼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인 상황이 매력적인 밤의 동물원.
동물원이든 어디든 폐장 시간 되기 전에 여유롭게 나가자는 깨알 같은 교훈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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