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유정아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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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예전부터 타인의 눈치를 보고 살았다. 

부모나 친구의 관심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혼자가 더 편했지만 늘 외향적인 성격으로 살기를 강요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런 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닌데, 괴리감에 괴로워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상대와 상황에 따라 가면을 쓰고 사는 게 편해서,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참 무관심하게 살아왔다.
타인에게 맞춰 살다 보니,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늦은 나이의 방황이었다.

뭘 해야 좋은지 모르겠는 어른의 사춘기란, 참 우울하다.
질풍노도처럼 감정이 몰아치던 유년기 시절 사춘기와 달리 그냥 마냥 우울하다.
나이 들면, 누군가에게 나 우울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힘들다.
주변에 모두들 우울한 사연이 있고, 어릴 때처럼 선뜻 날 위해 시간을 내줄 누군가도 서서히 사라져가는 시기이다.
누구나, 훗날 자신이 이런 모습이 되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면 어떡하지라고 막연히 걱정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한동안 우울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나날 중 제목이 마음에 와닿아서 읽게 된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언젠가, 브런치에서 읽었던 <소비에 실패할 여유>라는 글 한 편에 울컥했던 기억이 나는데, 바로 그 작가분이 낸 책이라는 사실은 읽다가 알게 되었다.


아주 예전부터 이렇게 살아왔기에 청춘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 공감 가는 내용의 책.


책은 네 개의 챕터로 되어 있으며, 

첫 번째와 두 번째 챕터가 가장 맘에 많이 와닿았다.


아마도 20대에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책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멘토 따윈 존재하지 않았고, 대학 졸업 후 쉽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건 나의 탓으로 돌리는 주변 어른들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교수님들은 매사에 너무 비관적이라고 말씀하셨고, 선배들은 너는 젊은이의 패기가 좀 부족한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들에게 나는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서 낙관적이 될 수 있는지, 젊은이의 패기란 게 있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현상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왜 부정적인 관점이 되는 건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소심한 나는 그렇게 묻지 못했다.


너에겐 젊은이다운 패기가 부족해라는 말을 선배에게 들었을 때 묻고 싶었다. 

그게 뭔데요?


무슨 일을 할 때 최악의 상황과 최선의 상황을 둘 다 염두에 두고 일하게 되는 게 왜 태클을 거는 게 되는 건지. 직장 상사들에게도 물어보고 싶었다.
언제나 실패는 존재하는데, 그 실패에 대해서 뒷수습을 해주는 선배나 상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이에나처럼 기회를 엿보며, 내가 실수하기를 기다리다가 비난하고 밀어낼 사람들만 존재할 뿐이었다.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선택의 결과가 최선이 아니더라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준 적 없던 20대의 시절에 봤으면 좋았을 책.


아마도 어떤 사정으로든 꿈을 하나둘씩 포기하면서, 우리는 서서히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쉽게 인정하기란 어렵다.
주변과의 비교와 남들에게 뒤처지는 건 아닌지, 나만 멈춰 서고 있는 건 아닌지.
자꾸만 마음이 불안해지고, 자신을 몰아붙이게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긴 문장은 아니지만 이건 바로 내 머리 속인가 싶을 정도로 공감 가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최소한의 비용이 있어야 여유가 생긴 다는 것, 

빚을 청산하고 그제서야 퇴사할 여유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또 얼마나 공감 가는가.


나를 내려놓는다는 과정은 참 어렵다. 
아마도 대다수가 그걸 경험하게 된다면 편안하게 알게 되기보단,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너무 무리해서 번아웃에 빠지거나, 힘든 상황 속에서 자포자기로 놓아버리게 된다.
과정이 쉽지 않아도 놓아 버리게 되는 순간, 왠지 모를 안도감도 함께 찾아온다.


시시해지면 좀 어떠한가. 그만큼 내가 누구인지는 선명해질 텐데.


아주 가끔씩은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하며 뭐라도 될 줄 알았어라는 푸념을 듣기도 하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누군가는 의미 있는 무엇이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그냥 그런 존재가 되기도 한다. 
사는 게 뭐 이러냐 싶을 때 읽으면 좋을 책이다. 
그냥 막 속 답답해질 때 한 번 읽어보시라. 시시한 존재이면 어떠리.
시시한 삶도 모여서 지나고 나면 소중한 순간이 되어 있고, 인생의 한 부분일 뿐인 것을.
절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 속에서 당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줄 책이다.


작가가 가진 삶에 대한 가치관이 너무나 마음에 드는 구절.


더운 날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선풍기 앞에서 수박이나 먹는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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