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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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가지고 댕기기 좋은 표지와 달리 책의 내용은 꽤나 무겁고 어두운 주제였다.


정권이 바뀌기 전 생겼던 어처구니없던 상황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요즘의 분위기는 문제 있는 상황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문제 있다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는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갑질 논란, 특혜 논란, 미투 문제 등등 여러 가지 문제가 터지고 있다.
그동안 침묵하고 외면하면서 키워온 문제들이 서서히 터지고 있기 때문에, 가끔씩은 파헤치면 누구라도 문제없는 사람이 없다면서 사회가 너무 예민해졌다고들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문제가 고쳐지고 수정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현재 그 사회로 가는 과도기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편혜영의 장편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은 한때 조선업으로 호황이었던 이인시의 선도병원이라는 조직 속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읽다 보면 직장 생활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공감할만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직장 내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는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을 하는지에 대해서 굉장히 건조하고 담담하게 기술해나가는데 이것은 한때 당했던 일이기도 하고, 같이 저지른 일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으로 몰리기 전까지의 상황에 대해서 기술하는데, 그 과정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건 인간이란 한계 상황에 몰리면 결국 본성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최악의 상황으로.

소설을 읽다 보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건, 하얀 거탑이 떠올랐다. 대학병원이라는 조직 속에서 재능 있던 의사가 점차 권력과 야망으로 점차 변해가는 과정을 그려냈다면, 소설은 조직 속에서 개인이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잠식되고 타락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병원이라는 조직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그린 하얀 거탑과 영국 bbc 드라마 바디스


선도병원에서 오래된 고참인 이석은 병원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다. 
조선업의 호황기에 병원이 한참 커가던 시절부터 일해왔지만,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죽은 도시인 이인시에는 빈 병상만 늘어간다. 새로 입사한 무주는 이석의 도움을 받아 쉽게 병원에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석의 비리를 알게 되고 그를 고발하기로 맘을 먹는다.


이인시의 현재 상황과 선도병원 속에서의 이석의 상황. 마치 모기업 중공업 사태를 보는 느낌이다.


무주가 이석의 비리를 고발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일까.


장부상에서 이석의 비리를 보게 되었지만, 이석의 개인적인 상황과 자신에게 대해준 것들을 생각하면 선뜻 고발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를 고발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언젠가 아버지가 될 자신이 아이에게 떳떳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비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였을까.
소설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단순하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만 과거에 직장 내에서 당했던 일들, 혹은 행했던 경험들이 떠올라서 괴로웠다. 


태어날 아이에게 떳떳하기 위해서 무주는 이석을 고발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택한 방법은 홈페이지에서의 폭로.


그리고 그 이후 이석은 병원을 그만두게 되고 그가 그만둠과 동시에 병원에는 영문모를 의료사고가 터진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그런 상황을 밝히기보다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마하려고 한다. 마치 모 병원에서 일어났던 사건처럼. 무주는 그런 상황들이 점차 견디기 힘들어졌고, 동료들 사이에서는 겉도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소설 속에서 병원에 일어난 의료사고는 감추고 정당화한다.


옳다고 생각해서 이번에는 침묵을 지키지 않고, 비리를 고발했지만 직장 내에서 고립되고, 어려움을 당하는 상황은 어디선가 많이 본 상황이다. 하지만, 무주 자신은 과연 옳은가. 
무주 또한 비리를 저지를 때 관행대로 그냥 태연히 저지르다가, 서울에 있던 병원에서 쫓겨난 상황이 아니던가. 자신이 특별히 무능해서가 아니고, 자신만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다른 사람을 고발한다.


직장에서 다른 동료들에게 배척당하자 살아남기 위해 무주가 하는 말 조심해요.


그리고 이석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번엔 승진까지 해서.
하지만, 이석이 무주와 다시 마주쳤을 때의 예전의 그가 알던 이석이 아니었다. 
이미 병원이라는 불합리한 조직과 함께 싸워서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결국 타락 해버리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들. 그들을 비난하기엔, 그런 과정을 한 번쯤 겪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쉽지 않다.

병원은 말이야. 불리한 건 절대 들춰내지 않아.
또 원하면 뭐든 감출 수 있어.
물론 들출 수도 있지.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야.


직장 내에서 살아남는 방법으로 택하는 방법은 대다수 타락하는 쪽이지 않을까.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만 떠오르는 건 개인적 경험이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주처럼 내면적 갈등을 많이 겪을 것 같다. 언젠가 속으로 욕했던 직장 상사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답습하고, 입사 초반과는 달리 점차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고 점차 침묵해가던 직장생활의 경험이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달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의 이석과 이인시는 닮아있다. 

영혼 없이 빈 껍데기만 된 이석의 모습이 안타깝다.


이미 우리가 경험해왔던 우리 사회의 추한 단면들을 모아놓은 듯한 소설은 왠지 대학시절 처음 알게 된 우리나라 역사의 진실과도 닮아있다. 그때 겪었던 충격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한동안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보냈던 때가 떠오른다.
진실을 마주한다는 건 정말 무거운 현실이다. 때로는 잠식할 거 같고, 견디지 못하고 그냥 타락을 선택하기도 한다. 누군가 시킨 것이고, 관행이라고 생각하면 자신이 당할 비난을 미룰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우리 사회의 문제는 자꾸만 커져왔고 곪아왔다. 
사람은 꼭 옳은 선택만을 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다시 선택할 기회를 갖는다. 
소설에서 무주는 그렇게 마음을 먹는 걸로 끝맺는다. 그렇게 희망을 이야기한다.


전임자가 그만둔 이유는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리고 무주 또한 이번엔 자신이 해야 할 것을 뚜렷하게 깨달는다.


책의 두께는 얇았지만, 소설의 무게감으로 꽤나 읽기 힘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단 걸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사회를 반영하는 문학의 힘을 이 책에서 느꼈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불편함과 문제점을 쉽게 이야기하고, 한 발 더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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