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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 - 오늘도 마음을 노래하는 뮤지션 고영배의 다정한 하루하루
고영배 지음 / 북폴리오 / 2023년 9월
평점 :
품절
본격적인 축제 기간이 돌아왔다. 어느 행사에서든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는 버스킹 가수들이다. 얼마 전 지인과 함께 인천 야행을 갔을 때, 여기저기 욕심내서 구경하기보다 휴식하는 기분에 빠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버스킹 공연 때문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했던 상황이었기에, 노래 공연을 모여서 듣는다는 게 꿈만 같았다. 유튜브 채널도 직접 개설했다던, 그 싱어송라이터는 자신의 곡을 부르기 위해 달달한 사랑 노래를 불렀었다. 노래를 불러서 싸웠던 여자 친구도 돌아왔다는 말처럼, 순간적인 감정을 담은 노래는 그 순간의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았다.
작업할 때, 음악을 잘 듣지 않기에 딱히 유행하는 노래도 모른다. 그래서 점점 감성적인 부분이 퇴화되었던 것일까? 분명히 노래는 한 번쯤 들어봤을 텐데, 책을 접하기 전까지 <소란>이라는 그룹을 알지는 못했다. SNS나 블로그 이웃분들 중에 음악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나 <펜타 포드 록 페스티벌>을 많이 가는 걸 봤었다. 인디 음악을 좋아하지만 아티스트에 대해서 깊은 관심도 팬심도 사라진지 오래다. 노래방에 자주 갈 때까지는 노래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음악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기게 된 건 의외로 코로나 기간에 공연을 접하지 못하게 되면서였다. 함께 온라인으로 알게 된 MZ 세대들과 소통했을 때, 음악에 진심이었던 그들의 노동요 플레이리스트 공유는 감수성이 제로를 향해 가는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었다.
함께 하는 매 순간이 특별한 기념일,
번뜩이는 위트와 따뜻한 위로
믿음의 가치, 소란
편안하고 따뜻한 음악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곁을 채울 수 있는 음악
하는 쪽, 듣는 쪽 서로의 자존감이 올라가는 음악
mpmg music 홈페이지, 소란 소개
© mpmg music
© mpmg music
노래를 듣지 않은 상태에서 에세이집을 읽었을 때, 3부로 구성된 각 장의 제목이 <소란>의 수록곡의 가사라는 걸 알지 못했다. 미공개 팬송의 제목이기도 한 1부 '우리 가던 길로 천천히 가자'에서는 고영배가 음악을 시작하고 된 순간부터 진로에 대한 방황, 인디밴드를 결성하는 방법과 밴드 소란이 탄생하게 된 배경, 콘서트의 뒷이야기들까지 그의 음악 인생과 소란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그래서인가 1부를 읽었을 때, 음악적인 부분에 대해서 다룬 내용은 읽으면서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나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지만, 음악을 진로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경험담으로 다가올 파트였다.
배경지식 없이 읽어도 소박하고 따뜻한 언어들이 가득한 2, 3부를 좀 더 공감하면서 읽었었다. 사실 국내에서 미래가 불확실한 예체능계, 그것도 음악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꿈을 이룬다는 건 주변 사람들의 응원이 절실하다. 아니, 그전에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의 원천에는 바로 가족이 있었다. 소란의 곡 <행복>의 가사이자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2부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에는 유년의 기억, 가족에 대한 애틋함, 과거와 현재에 관한 상념 등 인간 고영배의 진솔한 생각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마지막으로 소란을 페스티벌의 황제로 만들어준 곡 <가을목이>의 가사인 3부 '고마워 예쁘게 웃으며 얘기해 줘서'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내와의 달달한 연애 이야기부터 딸바보 아빠가 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적어내린 3장을 읽으면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한다.
우리, 가던 길로 천천히 같이 가는 것,
늘 여행하듯 살아가는 것,
밥 먹었는지 챙겨주는 것,
아마도 우리 이렇게 같이 있는 것.
확실히 알기는 어려운 게 행복이지만,
가끔 행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가, 대단한 우리가 된다.
-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와 책들이 지닌 힘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 메시지로 청년들이 아무것도 도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이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르겠지만, 나는 누구보다 다정한 말이 가진 힘을 믿는다. 위기에 가까워지는 환경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면서 기대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 <실 : 인연의 시작>에서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주인공들이 버블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테러와 재난이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이 고향에 돌아와서 동창과 조우하면서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너무하잖아
내가 뭐 대단한 걸
원했다고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것뿐인데
- 실: 인연의 시작
© (주)디스테이션, (주)엔케이컨텐츠
헤이세이 세대에겐 평범하게 만나 사랑을 하고 정착하는 거 자체도 너무 힘겨워졌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도 비슷한 심정일 거라 생각한다. 평범하게 산다는 게 이토록 힘든 것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던 지난 3년여간, 이리저리 요동치던 마음과 자신을 돌아보면서 행복하다는 게 무엇인가 떠올려본다. 고영배의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소소한 순간에 더 집중하게 된 나를 느낀다. 주변 사람들과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해졌다. 자주는 못 만나고, 아직도 연락 못 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지만, 잠깐 만나 맛있는 걸 먹고 대화하는 시간이 이제는 내가 추구하는 행복의 정의가 되었다.
힘들었던 때에는 늘 마음을 달래주는 노래가 날 버티게 해줬다. 책 속에서 <소란>의 노래 속 가사처럼 연애의 세밀한 감정선을 가장 잘 담은 3장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아껴주고 싶은 마음까지도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 - 172P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소란>의 노래들을 찾아서 듣게 되었다. 듣다가 이 노래도 <소란>의 노래였구나 감탄한 곡들이 있었다. <Ricotta Cheese Salad>, <살 빼지 마요> 들으면서, 한참 살이 올랐던 때 많이 위안 받았던 노래였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노래를 듣고 책을 읽을 걸 그랬다. 담백하게 와닿는 가사는 연애나 사랑에서 느끼는 생생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내 일기장에 한때 적어내렸던 기록들 같았다. 아, 한때 이런 감정을 느꼈었지. 죽어있는 연애 세포 혹은 사랑을 되살리는데 너무나 적당한 노래들이다. 위로와 격려가 가득 담긴 노래가 어디서 왔는지 명확하게 알려주는 에세이집이었다.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애처가이자 딸바보인 고영배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담뿍 담긴 메시지를 읽어보도록 하자.
우리는 닮은 점도 많았고 다른 점도 많았다.
부부는 닮아간다고 하는데, 20년 가까이 함께 해오면서 나는 우리가 섞여간다고 느낀다.
다른 색깔의 두 액체를 한곳에 넣은 것처럼, 각자가 사라지지 않고 상대의 색깔에 영향받아 함께 다른 색깔을 만들어간다. 그래서 결국 닮아지는 게 아닌가 싶다. 서로 닮도록 섞이는 것, 그게 부부인 듯하다.
상대방의 장점을 찾고 이에 영향받아 나 자신이 변한다는 건, 다시 말해 사랑한다는 뜻이다.
아내를 닮아가고 싶은 장점이 아직 정말 많다.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 - 200~201P
사랑이 가득 실린 소란의 노래를 들으면서, 고영배의 에세이집을 읽는다면 완벽한 가을이 될 거 같다.
아무래도 가을 타나보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