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망치는 말 아이를 구하는 말 - 1만 명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범죄심리학자가 전하는
데구치 야스유키 지음, 김지윤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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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아서 키우기에 너무나 가혹한 환경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되어서 뒤집기 어려운 불평등 속에서 성장하고, SNS나 다른 매체로 타인과 비교하기 너무나 쉬워진 환경. 단순히 은따를 당하거나 아웃사이더로 사는 게 아닌, 외면할 수 없는 학교 폭력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교권은 무너지고, 젊은 교사들은 적응하기 힘든 환경 속에서 극단의 선택을 하는 경우를 정보로 접하다 보면 과연 뭐가 문제일까 생각하게 된다. 자극적인 환경에 노출되기 쉬워지고,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쉬워졌다. 부모도 맞벌이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렵다. 무너진 교권과 가정 속에서 아이들은 버림받고 외면당하고 있다. 



​<아이를 망치는 말 아이를 구하는 말>은 범죄심리학자이자 아동심리학 교수인 데구치 야스유키가 38년간 1만 명이 넘는 비행청소년과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면서 마주친 진실에 대한 기록이다. 아이들의 문제 행동 기저에는 '부모가 던진 말 한마디'가 자리하고 있었다. 부모가 옳다고 믿는 것이 반드시 아이에게도 좋은 것일까? 어떤 부모도 자신의 아이가 잘 못 되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금쪽같은 내 새끼가 잘 되라고 했던 말 한마디가 아이를 괴롭히는 독이 될 수 있다. 책에서는 평범한 아이가 비행을 저지르게 된 실제 사례를 분석하고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어긋나게 된 결정적인 말, '아이를 망치는 말'을 설명한다. 이를 통해 부모의 잘못된 말습관을 바로잡는 동시에 아이가 보내는 SOS 신호를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다양한 심리 요법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아이를 구하는 말'을 소개한다. 



​2장에서 7장까지 등장하는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라는 아이의 멋진 개성을 파괴하고, "빨리빨리 해!"라는 아이의 미래 예측 능력을 방해하고, "열심히 해"라는 아이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말이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니?"라는 아이의 눈부신 자기 긍정감을 해치고, "공부 좀 해라"라는 부모와 아이의 신뢰 관계를 무너뜨리고, "조심해"라는 아이의 공감 능력을 죽이는 말이라고 한다. 그저 아이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부모의 한마디에 뒤바뀌는 아이의 미래.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고 오롯이 전달하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애정이란 일방적인 게 아니라 양방향이어야 한다.


채널A의 <금쪽같은 내 새끼>, 넷플릭스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 디즈니 플러스의 <크리미널 마인드>를 보면 문제 아이 뒤에서는 문제 부모가 있다. 크리미널 마인드에서는 사이코 패스는 어떻게 탄생되는가를 부모의 대물림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촬영한 영상을 분석하고 처방전을 제시하는 걸 보고, 육아 관련 책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육아에 과연 정답이 존재할까? 누구나 100% 옳은 방법으로 자식을 키울 수는 없을 것이다. 노력은 하겠지만, 모두가 부모나 자식의 역할은 처음이라 다 알 수가 없다. 제대로 된 부모라면 어떻게든 자신이 결핍되었던 것을 채워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는 미혼이라서 육아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육아에 지쳐 우울증에 걸렸거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부모가 아이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다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주변 친구의 조카를 함께 돌봐주고 놀아보면서 느낀 점은 육아는 정말 만만치 않은 과정이라는 점이었다. 사회가 아이를 함께 키워주고 보호해 주는 환경을 조성하고, 부모가 행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더 우선적이지 않을까? 부모에 대한 문제를 되짚기 전에 먼저 병든 사회와 환경이 변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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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
나카무라 쓰네코.오쿠다 히로미 지음, 박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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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나이를 지나면서부터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뤄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먹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자꾸만 나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지금 나이쯤이면 무언가 해냈거나,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 거라고 막연한 상상을 했었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는 지금보다 더 불안했다. 보이지 않는 막막한 미래의 내 모습이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요즘에서야 뒤늦게 얻은 깨달음은 삶이란 원래 불안한 거고, 미래가 어떨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걸 완벽하게 다 해낼 수는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나 자신에게 좀 더 여유를 주기로 했다. 더 잘할 거라는 생각을 버리고, 꾸준히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니 한결 수월해졌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아직 반도 살지 못했고, 겨우 반을 향해 갈 뿐이다. 타인을 롤 모델로 삼지 말라던 배우 윤여정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때론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읽게 된 <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은 정신의학과 전문의인 90대 나카무라 쓰네코와 50대 오쿠다 히로미, 두 사람의 대담으로 이뤄져 있다. 5장으로 이뤄져 있는 책들은 나이 들어가면서 겪는 인생의 가볍지 않은 질문에 대한 대화를 200페이지에 담아놨다. 무겁다고 생각할 수 있는 주제지만, 두 분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최근 그림을 그리면서 내 삶의 속도를 되찾아가는 깨달음을 얻은 상태에서 읽게 돼서인가. 읽으면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느낌은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부담을 덜게 된다는 점이다. 최근 내가 느끼고 있는 상황들과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 



© 구글 검색

오쿠다 히로미, 나카무라 쓰네코




50대의 오쿠다님이 90대의 나카무라 선생님의 말씀을 좀 더 정갈하게 다듬어서 전달하는 느낌이다. 90대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시선은 뭔가 통달한 느낌이다. 전쟁을 겪은 세대로 가난함 속에서 자라야 했던 시대를 겪은 나카무라 선생님은 오히려 젊은 세대가 받을 스트레스를 걱정한다. 오히려 경쟁과 비교를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힘든 세대겠다고.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이 듦을 부정적으로 바라봤었다. 노인에 대한 시선이 일단 긍정적이 아니었고, 나이 들면서 세상으로부터 서서히 버림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더 불안해졌던 것 같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다른 사람의 상황과 내 상황을 비교하기만 했다. 나의 삶의 속도는 다른 사람과 다를 뿐인데. 그걸 인정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 건지 나 사용 설명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평생 스트레스를 받아왔지만, 이제는 어느 부분 포기를 했다. 원래 친구가 많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지 못할 것이라는 걸 받아들이니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오래된 친구들과 연락을 많이 하지 않고, 거의 보지 못하지만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물론 먼저 연락을 해서 만나도록 노력해야겠지만, 우린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니까. SNS에서 차단을 당하거나,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던 인맥과 하루아침에 연락이 되지 않아도 이젠 그러려니 한다. 친한 친구의 말처럼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다고 생각한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 대해서 더 이상 연연해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런 고민을 할 시간에 날 위한 시간을 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니까. 나이 들면 어차피 사람은 혼자가 된다. 혼자에 익숙해지는 게 더 중요하다. 요즘은 하루를 짧게 드로잉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면서 나에게 더 집중한다. 






함께 살고 있는 부모님이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마음 아파질 때도 있지만, 요즘은 마음을 고쳐먹는다. 주변에 나이 드신 부모님과 함께 산책을 하거나 영화를 보러 온 모습을 볼 때마다, 나이와 체력이 허락하는 한 무리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다. 두 분의 모습은 내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기에, 부모님을 보면서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우기도 한다. 최근 안락사와 연명치료에 대한 주제를 다룬 영화들을 많이 봐서인지, 마지막 장인 <웃는 얼굴로 마지막을 맞이하기>를 집중적으로 읽었었다. 누구나 나이 들어서 언젠가는 타인의 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때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노력해도 돌아오는 상황에서 주변 사람보다 자신이 편한 선택을 한다는 것. 그 선택을 존중하는 시선이 많이 와닿았다. 

나이가 든다는 건, 연말에 새해를 기다리는 심정과 같다고 생각한다. 온갖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들로 가득할 때도, 내년에는 뭔가 좋은 일들이 있겠지 택배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기대한다.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불안해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보다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하나둘씩 도전해 보길 바란다. 너무 상투적인 말이지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것보다 하는 게 낫다. 기회도 정보도 사람도 뭔가 할 때 다가오고 열린다. 아직도 내 삶에서 가장 젊은 건 지금이니까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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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7일의 미술 수업
김영숙 지음 / 빅피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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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기획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이라면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조반니 벨리니, 보티첼리, 라파엘로, 카라바조, 티치아노, 렘브란트 등 국내에서 만나보기 힘들었던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이 많았기에 기대했던 화가나 작품들보다 더 감동받았다. 시대가 선택한 '거장'의 작품을 보면서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 회화의 흐름을 담은 서양미술 명작을 통해 미술의 관심이 신에서 사람으로 향하는 모습을 조명한 전시였다. 르네상스 작품에 관심은 많지만, 국내에서 이렇게 많은 작품을 감상해 보는 건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보러 가기 전에 <처음 만나는 7일의 미술수업>을 읽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그림에는 시대적 반영이 담겨있다. 그렇기에 그림을 보면, 역사, 문화, 철학, 신화, 종교 등 여러모로 교양 지식을 저절로 쌓을 수 있다. 예술서적을 원래 좋아하지만, 스토리텔링으로 전달하는 130점의 그림들과 화가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너무나 흥미로워서 아껴서 읽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대다수는 알고 있는 지식이었어도, 어렵지 않게 깊이 있는 지식을 전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 그림에 대해서 잘 모르는 독자분이 처음 접하셔도 너무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을 많이 다뤘지만 현대 작품까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예술 관련 서적에서 가장 중요한 인쇄 색감에 신경 쓴 느낌이어서 더욱 맘에 든다. 시스티나 성당 벽화 전체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서 세세히 알려주면서도 알쓸신잡 같은 지식도 함께 포인트로 집어준다. 무엇보다 각 챕터마다 이탈리아의 미술관을 소개해서, 직접 가고 싶은 맘에 더욱 커진다. 미켈란젤로와 율리우스 2세와의 갈등, 브라만테의 질투심. 벽화를 완성한 뒤 외설 논란에 휩싸여서 제자가 대신 가려주는 수정을 했다는 등의 사건과 인물, 시대를 중심으로 한 작가 특유의 스토리텔링은 다방면의 지식으로 꽉 차있다. 라파엘에게는 베끼지 말라며,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작품 상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소통했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있다. 라파엘로가 사랑했던 여인 포르나리나를 작품 속에 어떻게 표현하고 넣었는지, 그녀로 추정되는 그림들을 모아놓기도 했다.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에서도 위를 쳐다보면서 기도하는 모습의 그림이 있었는데, 그런 그림을 <소토 인 수>라고 부른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카라바조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딧의 그림을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는 건 흥미롭다. 남자 입장인 카라바조가 그린 그림 속의 유딧은 어리고 연약하고 겁먹은 듯한 느낌이며, 죽임당하는 남성의 모습이 더 부각된 느낌이다. 하지만, 실제로 스승에게 성폭행을 당해서 재판까지 가서 모욕을 당해야 했던 젠틸레스키의 그림을 보면 두 사람이 함께 협력해서, 남성을 결연한 모습으로 응징하고 있다. 피와 놀란 남성의 얼굴, 젊고 어린 모습만 부각된 카라바조와의 그림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담으려고 한 그녀의 그림이 그 시대에 얼마나 큰 반향이었는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수산나와 장로들>을 그린 같은 이야기 다른 그림들을 비교해 보면, 차이는 더 명확하다. 수산나를 모욕하려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인데도, 한쪽은 피하고 반항하는 모습을 그렸다면, 다른 한쪽은 남자를 유혹하고 있는 형상이다. 


아마도 그림 그려주고도 교수형으로 죽지 않을까, 엄청나게 노심초사했을 한스 홀바인. 후세에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헨리 8세 초상화 중에 그의 작품이 가장 유명하고 멋지다. 독일 화가로 영국에 정착해서 왕의 전속 화가로 살아간다는 건 어땠을까? 그것도 6번 결혼한 왕의 화가로 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클레비스의 앤의 초상화를 너무 아름답게 그려서, 목숨을 잃을 뻔했던 에피소드, 그래도 나중에 재의뢰해서 만족할 만한 그림을 그려줬다. 


미술관 가면, 그림을 보지 않고 글자 읽고 오디오 해설 듣고, 사진 찍느라 다들 바쁘다. 미술 전시를 보러 온 목적과 감상하는 방법이 모두 다르겠지만, 미술관에서 제발 공부하지 말자. 전시 보러 올 시간 동안만 그림에 대해서 공부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다. 대신 도슨트 해설을 보기 전이나 후에 그림과 마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하자. 그림과 마주하면서 화가의 영혼과 대화할 시간을 갖는다는 것, 작품을 다각도로 감상할 시간은 이때뿐이다. 교양 지식은 평소에 조금씩 <처음 만나는 7일 미술수업>같은 예술서적을 읽거나 도록을 통해서 쌓는 건 어떨까? 급하게 전시 보는 2~3시간 동안 쌓는 지식은 오래가지 않는다.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보기 전이나 후에 꼭 읽어보시기를 다시 한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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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 - 오늘도 마음을 노래하는 뮤지션 고영배의 다정한 하루하루
고영배 지음 / 북폴리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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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축제 기간이 돌아왔다. 어느 행사에서든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는 버스킹 가수들이다. 얼마 전 지인과 함께 인천 야행을 갔을 때, 여기저기 욕심내서 구경하기보다 휴식하는 기분에 빠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버스킹 공연 때문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했던 상황이었기에, 노래 공연을 모여서 듣는다는 게 꿈만 같았다. 유튜브 채널도 직접 개설했다던, 그 싱어송라이터는 자신의 곡을 부르기 위해 달달한 사랑 노래를 불렀었다. 노래를 불러서 싸웠던 여자 친구도 돌아왔다는 말처럼, 순간적인 감정을 담은 노래는 그 순간의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았다.



 작업할 때, 음악을 잘 듣지 않기에 딱히 유행하는 노래도 모른다. 그래서 점점 감성적인 부분이 퇴화되었던 것일까? 분명히 노래는 한 번쯤 들어봤을 텐데, 책을 접하기 전까지 <소란>이라는 그룹을 알지는 못했다. SNS나 블로그 이웃분들 중에 음악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나 <펜타 포드 록 페스티벌>을 많이 가는 걸 봤었다. 인디 음악을 좋아하지만 아티스트에 대해서 깊은 관심도 팬심도 사라진지 오래다. 노래방에 자주 갈 때까지는 노래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음악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기게 된 건 의외로 코로나 기간에 공연을 접하지 못하게 되면서였다. 함께 온라인으로 알게 된 MZ 세대들과 소통했을 때, 음악에 진심이었던 그들의 노동요 플레이리스트 공유는 감수성이 제로를 향해 가는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었다.



함께 하는 매 순간이 특별한 기념일, 


번뜩이는 위트와 따뜻한 위로


믿음의 가치, 소란



편안하고 따뜻한 음악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곁을 채울 수 있는 음악


하는 쪽, 듣는 쪽 서로의 자존감이 올라가는 음악


mpmg music 홈페이지, 소란 소개


© mpmg music

 

© mpmg music




 노래를 듣지 않은 상태에서 에세이집을 읽었을 때, 3부로 구성된 각 장의 제목이 <소란>의 수록곡의 가사라는 걸 알지 못했다. 미공개 팬송의 제목이기도 한 1부 '우리 가던 길로 천천히 가자'에서는 고영배가 음악을 시작하고 된 순간부터 진로에 대한 방황, 인디밴드를 결성하는 방법과 밴드 소란이 탄생하게 된 배경, 콘서트의 뒷이야기들까지 그의 음악 인생과 소란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그래서인가 1부를 읽었을 때, 음악적인 부분에 대해서 다룬 내용은 읽으면서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나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지만, 음악을 진로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경험담으로 다가올 파트였다. 


배경지식 없이 읽어도 소박하고 따뜻한 언어들이 가득한 2, 3부를 좀 더 공감하면서 읽었었다. 사실 국내에서 미래가 불확실한 예체능계, 그것도 음악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꿈을 이룬다는 건 주변 사람들의 응원이 절실하다. 아니, 그전에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의 원천에는 바로 가족이 있었다.  소란의 곡 <행복>의 가사이자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2부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에는 유년의 기억, 가족에 대한 애틋함, 과거와 현재에 관한 상념 등 인간 고영배의 진솔한 생각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마지막으로 소란을 페스티벌의 황제로 만들어준 곡 <가을목이>의 가사인 3부 '고마워 예쁘게 웃으며 얘기해 줘서'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내와의 달달한 연애 이야기부터 딸바보 아빠가 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적어내린  3장을 읽으면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한다.

우리, 가던 길로 천천히 같이 가는 것,

늘 여행하듯 살아가는 것, 

밥 먹었는지 챙겨주는 것, 

아마도 우리 이렇게 같이 있는 것.

확실히 알기는 어려운 게 행복이지만, 

가끔 행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가, 대단한 우리가 된다.


-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와 책들이 지닌 힘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 메시지로 청년들이 아무것도 도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이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르겠지만, 나는 누구보다 다정한 말이 가진 힘을 믿는다. 위기에 가까워지는 환경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면서 기대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 <실 : 인연의 시작>에서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주인공들이 버블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테러와 재난이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이 고향에 돌아와서 동창과 조우하면서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너무하잖아


내가 뭐 대단한 걸 

원했다고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것뿐인데


- 실: 인연의 시작 


© (주)디스테이션, (주)엔케이컨텐츠

헤이세이 세대에겐 평범하게 만나 사랑을 하고 정착하는 거 자체도 너무 힘겨워졌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도 비슷한 심정일 거라 생각한다. 평범하게 산다는 게 이토록 힘든 것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던 지난 3년여간, 이리저리 요동치던 마음과 자신을 돌아보면서 행복하다는 게 무엇인가 떠올려본다. 고영배의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소소한 순간에 더 집중하게 된 나를 느낀다. 주변 사람들과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해졌다. 자주는 못 만나고, 아직도 연락 못 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지만, 잠깐 만나 맛있는 걸 먹고 대화하는 시간이 이제는 내가 추구하는 행복의 정의가 되었다.


힘들었던 때에는 늘 마음을 달래주는 노래가 날 버티게 해줬다. 책 속에서 <소란>의 노래 속 가사처럼 연애의 세밀한 감정선을 가장 잘 담은 3장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아껴주고 싶은 마음까지도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 - 172P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소란>의 노래들을 찾아서 듣게 되었다. 듣다가 이 노래도 <소란>의 노래였구나 감탄한 곡들이 있었다.  <Ricotta Cheese Salad>, <살 빼지 마요> 들으면서, 한참 살이 올랐던 때 많이 위안 받았던 노래였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노래를 듣고 책을 읽을 걸 그랬다. 담백하게 와닿는 가사는 연애나 사랑에서 느끼는 생생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내 일기장에 한때 적어내렸던 기록들 같았다. 아, 한때 이런 감정을 느꼈었지. 죽어있는 연애 세포 혹은 사랑을 되살리는데 너무나 적당한 노래들이다. 위로와 격려가 가득 담긴 노래가 어디서 왔는지 명확하게 알려주는 에세이집이었다.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애처가이자 딸바보인 고영배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담뿍 담긴 메시지를 읽어보도록 하자.  




우리는 닮은 점도 많았고 다른 점도 많았다.


부부는 닮아간다고 하는데, 20년 가까이 함께 해오면서 나는 우리가 섞여간다고 느낀다.


다른 색깔의 두 액체를 한곳에 넣은 것처럼, 각자가 사라지지 않고 상대의 색깔에 영향받아 함께 다른 색깔을 만들어간다. 그래서 결국 닮아지는 게 아닌가 싶다. 서로 닮도록 섞이는 것, 그게 부부인 듯하다.


상대방의 장점을 찾고 이에 영향받아 나 자신이 변한다는 건, 다시 말해 사랑한다는 뜻이다. 


아내를 닮아가고 싶은 장점이 아직 정말 많다.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 - 200~201P



사랑이 가득 실린 소란의 노래를 들으면서, 고영배의 에세이집을 읽는다면 완벽한 가을이 될 거 같다. 

아무래도 가을 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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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상인가 - 평균에 대한 집착이 낳은 오류와 차별들
사라 채니 지음, 이혜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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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다르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던 시대에 자라서 그런지,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과 원래 나 자신과의 괴리감을 많이 느꼈다. 사회적으로 바라는 여자에 대한 고정 관념과 기대하는 모습에 나 자신을 억지로 짜 맞추면서 살다 보니 좌절감이 느껴졌다. 막연히 나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몇 살쯤이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왜 나만 뒤처지는 걸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 괴로웠다. 평균 연봉, 결혼 시기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정부에게 외면받고, 사회 내 어딘가에도 끼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정책이나 혜택이 내 또래만 비껴가는 느낌이었다. 아직 뭔가 더 하고 싶은데,  낄 자리가 없었다. 


 내가 어딘가 비정상인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정상인가>를 읽게 되었다. 고작 200년밖에 되지 않은 '정상성' 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현대적 집착이 된 기원에 대해서 정리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저자인 사라 채니 또한 젊은 시기 튀는 행동으로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정상이고 싶어 했고, 그 상황에 의문을 품게 된다. 7장으로 구성된 책은 정상성은 어떻게 생겨나고 적용되어 왔는지의 기원에 대해서 살펴본 뒤 몸, 마음, 성생활, 감정, 아이들, 사회로 세분화해서 정상이라는 개념을 분석한다. 



책 속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챕터는 아무래도 2장 <내 몸은 정상인가>이다. 어느 시기이건 아름다움에 대한 비정상적 욕구에 시달렸던 여성의 삶과 역사를 패션과 유행을 통해 접하고 있어서인가. 관련 부분을 읽으면서, 몸무게 최하점을 겪을 때조차 살을 빼야 한다는 말을 들었었던 과거가 떠올랐다. 이상적인 몸무게와 몸의 평균 사이즈의 틀에 시달리면서, 다이어트와 운동에 매진하기도 했었다. 건강에 이상이 오면서 치료를 하던 중 찐 살이 잘 빠지지 않으면서, 잘 모르던 타인들의 말과 태도가 상당히 무례해지는 게 느껴졌다. 가깝다고 느꼈던 친구들과 가족들의 반응을 보면서 더 힘들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까지, 숫자로 기록되는 암묵적인 평균 사이즈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군다나 코로나 이전부터 살찐다는 것은 자기관리의 실패로 보기까지 하지 않는가. 



책을 읽어보면 정상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깨닫게 된다. 사실 정상으로 분류되는 무언가로 사회적 기준이 맞춰지고,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특히 인간의 역사 중 큰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대전 중에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졌던 인종 차별적인 상황들. 특정 인종과 외모가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그 논리가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 말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표준으로 정해놓은 사이즈로 만든 조각상 노르마. 실제 사이즈만 비슷한 사람을 나란히 세워놨을 때 다가오는 괴리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왜곡된 이성상의 기준을 선사하는 아이돌 그룹이나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외모를 그 틀에 끼워 맞추려는 사람들이 많다. 옷을 고를 때 프리 사이즈는 실제로는 마른 체형의 사람들만 입을 수 있는 사이즈일 뿐이다. 


마지막 장인 <사회는 정상인가>는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 큰 질문을 던지는 장이라고 생각했다. 정상과 평균이라는 기준에 맞춰서 살아왔던 모든 사람들이 가지게 된 기형적인 부작용이 아닐까? 그 기준이 너무 높고 엄격한 것은 아닌지, 이제 우리 모두 잠시 멈추고 돌아봐야 할 때가 왔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과연 정상인가에 끊임없이 의문점을 느끼고 질문해 봐야 한다. <나는 정상인가>는 그런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는 책이라기 보다,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견해를 보여주는 책이다. 팬데믹 이후에 생겼던 커다란 부작용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의문점이 생기시는 분들은 읽어보시면 좋겠다.



책 속에서 인상적으로 봤던 문구가 있어서 기록으로 남겨본다. 


일상이란 별거 아니야. 너한테 익숙한 게 곧 일상이거든. 

이 상황이 지금은 일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게 곧 일상이 될 거야.


마거릿 애트우드 - 시녀들 (리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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