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쓴 김혜남님은 정말로 열심히 산 사람이다. 그 어려운 의과 대학을 마치고 정신과 의사가 되고 결혼해서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두 아이의 엄마로 교수로 바쁘고 힘든 가운데 여러 권의 책을 쓴 베스트 셀러 작가이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던 어느 날, 파킨슨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노인성 질환의 하나로 알려진 병을 진단받았을 때 그의 나이는 마흔 몇살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기막히고 어기가 차고 억울했을까? 김혜남님은 침대에 누워 천정만 바라보며 한 달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이렇게 누워서 죽기를 기다릴 순 없다고. 오늘 살아 있으니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겠다고. 잠시 멈추었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는 아프기 전처럼 진료를 하고 책을 쓰고 가정에서는 며느리이자 엄마로 열심히 살았다.

🔖어떤 것을 이루는 과정에는 견디고 버텨야 하는 시기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버티는 시간 동안 우리는 그 일의 의미와 절박성을 깨닫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필요한 것들을 재정비하며 결국은 살아남는 법을 익히게 된다. 그러므로 버티어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폄하 할 수 없는, 피땀어린 노력의 결실이다. ... 정말로 때론 버티는 것 자체가 답일 때가 있다. (206)

맞는 말이다. 돌아보니 나도 그랬던 적이 많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떠 오르지 않는데 물러 설 곳도 없으면 버티는 수 밖에 없다. 김혜남님도 버텨냈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언니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고 전문의가 되고 병이 찾아 왔을 때 22년을 병과 마주하여 버텨냈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를 치유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다른 말로 ‘회복 탄력성‘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힘든 상황에 맞딱뜨렸을 때, 그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힘을 말한다. 상처가 난 자리에 새 살이 돋듯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회복 탄력성, 그 힘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많은 사람들이 홀로코스트같은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도 살아남아 다시삶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것도 회복 탄력성 덕분이었다. (265)

물방울 사진을 찍고 길거리 공연을 하는 무명 연주자를 응원하고 옴쭉달싹 못 하는 상황에서도 약을 먹고 조금 움직일 수 있고 덜 아프면 뭘 할까, 계속 궁리하고. 때로는 바로 앞에 보이는 화장실까지 가기 위해 5분 넘게 걸리면서도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것. 김혜남님은 회복 탄력성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보여주었다. 긍정의 힘, 어른다운 성숙함. 그래서, 조곤조곤 낮은 목소리로 건네는 그 말들이 설득력을 갖는다.

🔖샤워를 하다가 보면 문득 긁힌 자국을 발견 할 때가 있다. 언제 긁혔는지도 모를 자국을 보며 ‘언제 그랬지?‘생각한다. 그런데, 그 때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국은 없어지게 마련이고 나도 그냥 잊어버리게 된다. 어쩌면 현대인들이 무분별하게 상처라고 말하는 일들이 그 자국일 수도 있다. 그러니 스쳐 지나가고 그냥 지나갈 일까지 상처라고 말하며 인생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처와 상처가 아닌 것을 구분짓는 것, 그것은 어쩌면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첫 걸음인지도 모른다(99)

요즘 들어 짧은 문장들로 이루어진 위로의 글들이 넘쳐 난다. sns에 돌아다니고 책으로 엮어져 나오기도 한다. 사탕같은 위로는 입에 달지만 금방 녹아 없어져 허전함만 남긴다. 단순한 위로의 말들 말고 성숙한 어른의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말씀이 듣고 싶을 때 펴서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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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2-02 06: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호우님
저도 김혜남님 책 읽고 넘 마음 아팠어요
보이지 않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
읽고 좋았습니다.

호우 2023-02-02 11:09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반가워요^^ 김혜남님 유명한 분이셨는데 저는 처음 만났어요. 읽고 많이 배웠어요. ˝보이지 않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는 책도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