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정류장 스콜라 창작 그림책 89
한라경 지음, 심보영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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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숨을 쉬지 않는 생명은 없다.
살아있다는 것은 호흡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숨을 내쉬지만, 어떤 사람들은 어딘가에 의지하여 겨우 숨을 유지한다.

우리가 내쉬는 숨은 생명이기도 하지만,
그만 내쉬고 싶은 한숨이기도 하다.

나의 하루가 버겁고, 나의 연결고리가 버겁고, 나의 미래가 버거울 때 우리는 한숨가운데 나의 존재를 내어주게 된다.

그런 우리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정류장이 있다면 어떨까?

따뜻한 글쟁이 한라경 작가가 쓰고, 귀엽고 섬세한 그림을 그리는 심보영작가가 그린 「숨정류장」은 동네책방 대표님들 여럿이 함께 추천하는 책이기도 하다.

답답한 마음이 꽉 차 있을 때,
밀려드는 일로 압박이 올 때,
슬픔이 가득할 때,
용기가 없을 때,
나를 숨 쉬게 해주는 숨정류장.

숨정류장을 찾는 고객은 다양하다.
올챙이 같기도,
젤리 같기도,
별 같기도 하다.

다양한 숨들이 제대로 숨쉬고 싶어서 찾은
숨정류장에서
크게 후 하고 숨쉬고 나면
다시 삶의 자리에서 쉬는 호흡이
조금은 편안해질 것 같다.

나에게 필요한 숨정류장은 어디일까 생각해보았다.
놀랍게도 여기에 나오는 모든 정류장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상대적이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우리 모두는 참 고생이 많았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다.

여기 숨정류장에서 쉼을 얻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다시 힘차게, 씩씩하게
새해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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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숲 고래뱃속 창작그림책
이현영 지음 / 고래뱃속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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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초록이던 나뭇잎이 가을이 되어 색이 변하고, 떨어져서 말라버리는 건 시간의 변화를 의미한다. 원래부터 푸른 것은 변함없음에 칭송받아 마땅하고, 푸르름을 잃어버리는 것은 순간순간을 잘 버텨 여기까지 왔음에 칭송받아 마땅하다.

이야기 속의 엄마와 아이는 하루하루가 향기롭고 따스했다.
재미있는 일이 많았고, 새로운 경험은 늘 흥미 가득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의 숲에 낯선 하얀 잎새가 나기 시작했다.

잘라도 보고, 색을 입혀보기도 했지만,
점점 빠르게 숲을 침범하는 하얀 풀을 다 치워버리기는 힘들었다.

더 이상 아이가 아닌 남자 아이에게 엄마는 말한다.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
그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뜻이란다.”

어쩌면 가장 서글펐을 사람은 엄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에겐 흘러간 시간만큼 아이와의 추억이 수북하게 쌓였던 것 같다.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아이가 자라가는 순간순간을 마음에 높이 높이 쌓아갔을 것 같다.

가까이 사시는 엄마와 밤마다 산책을 한 지 2달이 조금 넘어가고 있다.
속도가 아닌 습관을 만들어보자며 만보기를 기준으로 걷고 있는데,
함께 걷는 날이 더해갈수록 우리의 삶의 나눔은 깊이를 더해간다.

몰랐던 엄마의 슬픔과 설움을 알게 되자 더 잘 살고 싶어진다.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어떤 업적을 남기는 것이 아닌,
삶의 작은 걸음들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깊이 사랑하며 받아들이는 것임을 깨달아가고 있다.

아이는 아이였을 때는 갑자기 들어선 하얀 잎새가 어색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더 이상 아이가 아니게 된 때에 바라 본 새 하얀 숲은 눈이 부신 아름다움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깊어져 간다.
그렇기에 우리의 나이듦은 그 자체로 위대한 업적이다.

책의 작가인 이현영작가님은 어느 날 삐죽 솟은 흰머리를 보며 책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흰머리가 나는 것을 보며 ‘나도 이제 늙어가네’가 아닌 하얗게 익어간 엄마를 떠올렸다는 것이 놀랍다.

그림은 무채색으로만 표현되었는데,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의 표정이 밝기 때문인 것 같고, 마지막 부분의 팔근육을 표현한 것은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대단한 날개」로 제9회 상상만발책그림전에서, 「콩떡콩떡 줄넘기」로 제1회 한국그림책출판협회 그림책 공모전에서 수상한 바 있다.

깊어가는 가을, 아름답게 익어가신 부모님을 떠올리고, 나 역시 아름답게 익어가기를 꿈꾸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림책 「하얀 숲」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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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숲 The 그림책 4
조수경 지음 / 한솔수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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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샘」을 쓰고 그린 조수경 작가의 신작 「마음 숲」이 출간되었다. 「마음 샘」에서는 물을 마시려던 늑대가 샘에 비친 토끼의 모습을 본다. 그 모습은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다. 힘이 센, 으르렁대는 늑대가 사실은 토끼였다니, 늑대는 더욱 자신을 감추고 싶었다. 이 모습은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살아가는 우리는(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여러 개의 가면을 가지고 있다. 만나는 사람이나 장소에 따라 알맞은 가면을 꺼내 쓰고 그게 진짜 나인 것처럼 행동한다.

조수경 작가 신작 「마음 숲」에서는 감추던 나에서 가면을 쓰는 나로 옮겨가 깊은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남자는 가면을 자꾸 쓰다보니 깊이 숨겨 놓았던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눈,코,입……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는 아무도 아니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끈이 더욱 자신을 조여올 때, 한 아이를 만나게 된다. 그 아이는 끈을 서서히 풀어주고 손을 잡고 숲으로 남자를 데려간다.

숲에서부터 책은 화려해지기 시작한다. 고뇌하던 남자는 흑백인데, 아이는 화려하고 푸르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에도 이목구비가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가면을 쓰고 있어 아무것도 아닌 내가 푸르러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언제든 달려가기만 하면 나를 맞아줄 마음 숲.
그곳에 가면 기다렸다고 왜 이제야 왔냐고 할 것만 같다.
그리고 너부터 가면을 벗어보면 어떻겠냐고 말해줄 것만 같다.

나는 가면 따위는 쓰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감정의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를 테면 이런 것들이다. 행복 가면, 자신감 가면, 너그러운 엄마 가면 등.

나를 옭아매고 있는 끈으로 인해 표정이 사라졌다고 느낀다면 마음 숲에 가보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면에 10명의 사람이 있다. 그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는데,
팝업 형태의 가면을 벗기면 전혀 다른 얼굴이 나온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가면을 직접 벗겨보며, 그 안의 아름다움들을 맞이하며 상한 마음의 치유를 경험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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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기다려 주세요 - 느린학습자 친구의 부탁 참좋은세상 1
이상미 지음, 정희린 그림, 사탕수수 기획 / 옐로스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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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를 가졌던 36살의 봄을 기억해 본다.
병원에서는 노산이라며 다양한 태아검사를 권했다. 비용이 비싸기도 했지만, 검사해서 문제가 있으면 안 낳을 것도 아닌데 싶어 검사를 하지 않았다. 검사를 해도, 안 해도 출산 때까지 산모는 불안함 가운데 지내게 되니,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다.
예정일보다 2주 일찍 나온 아이. 건강하게 태어남에 감사했는데, 걷는 게 느려도 걱정, 말이 느려도 걱정. 아이가 클 때까지 감사보다는 걱정으로 살아가는 게 부모의 실체이다.

존재만으로 감사했던 마음은 어디로 간 걸까?
느리기만 한, 잘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를 볼 때, 우리는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윽박지르기 일쑤다.

그런데 만약 나의 성급함이나 욕심 때문에 느리게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아이가 모든 면에 서툴고, 때론 튀기도 하고,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설명해야 한다면 어떨까?

언젠가부터 우리 삶 속에 ‘느린 학습자’라는 새로운 단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특수반이라는 이름의 교실이 있었고, 그곳을 오가던 어딘가 모르게 도움이 필요해 보는 친구들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제 그 교실은 도움반 또는 희망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고, 그 곳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한 학급에 한 명씩은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내가 이 아이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가까운 가족 중에, 친한 가족 중에 특별한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수업을 다니다 보면 이 특별한 친구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경계선 지능인이라고도 불리우는 느린학습자들은 IQ 70-84 사이의 지능지수를 가진다. 완전한 지적장애는 아니지만, 사회생활이 쉽지 않고, 일에 대한 이해력이 약하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장애 등급을 확실히 받기도 어렵다보니 사회적으로 지원, 보호를 받기 어려운 면도 있다. 사회 구성원들의 이들을 향한 인식 정도도 천차만별이라 성인이 되었을 때 평범하게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어려운 게 사실이다.

흔히 우리는 육아의 목표가 독립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느린학습자를 둔 부모들도 마찬가지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이어가며 자립하기를 꿈꾸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자립을 하려면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하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이 변화를 위해 ㈜ 사탕수수 정현석 대표는 경계선 지능인 청년들의 자립을 돕고자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사탕수수에서 기획하고, 이상미작가님이 글을 쓰고 정희린 작가님이 그림을 그린 「우리를 기다려 주세요」는 느린학습자 친구들의 목소리가 담긴 그림책이다.
누구보다 순수하고 해맑은 경계선지능인들의 느리지만 묵묵히 걷는 발걸음을 친절하게 보여주며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는 착한 책이다. 식물이 자랄 때 햇볕과 비와 바람이 필요하듯, 느린학습자 친구들에게도 햇볕과 같은, 비와 같은, 바람과 같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대신 말해주고 있다.

주변에 느린학습자가 있다면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책의 목소리를 들어주면 좋겠다. 혹시 잘 몰랐지만 알고 싶다면 이 책의 목소리를 들어주면 좋겠다. 국민 인구의 13.6%가 경계선지능인이라고 하니 이제는 모두가 알아야 하는 게 맞다.

사실 우리는 빠른 것을 너무 좋아한다. 동시에 빨라야만 하는 현실에 지쳐있다.
조금 느려도 괜찮지 않을까?
천천히 같이, 멀리 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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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를 기다려 주세요 - 느린학습자 친구의 부탁 참좋은세상 1
이상미 지음, 정희린 그림, 사탕수수 기획 / 옐로스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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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경계선지능 친구들에게 큰 응원과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림책이에요. 모두가 사랑으로 함께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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