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숲 고래뱃속 창작그림책
이현영 지음 / 고래뱃속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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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초록이던 나뭇잎이 가을이 되어 색이 변하고, 떨어져서 말라버리는 건 시간의 변화를 의미한다. 원래부터 푸른 것은 변함없음에 칭송받아 마땅하고, 푸르름을 잃어버리는 것은 순간순간을 잘 버텨 여기까지 왔음에 칭송받아 마땅하다.

이야기 속의 엄마와 아이는 하루하루가 향기롭고 따스했다.
재미있는 일이 많았고, 새로운 경험은 늘 흥미 가득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의 숲에 낯선 하얀 잎새가 나기 시작했다.

잘라도 보고, 색을 입혀보기도 했지만,
점점 빠르게 숲을 침범하는 하얀 풀을 다 치워버리기는 힘들었다.

더 이상 아이가 아닌 남자 아이에게 엄마는 말한다.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
그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뜻이란다.”

어쩌면 가장 서글펐을 사람은 엄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에겐 흘러간 시간만큼 아이와의 추억이 수북하게 쌓였던 것 같다.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아이가 자라가는 순간순간을 마음에 높이 높이 쌓아갔을 것 같다.

가까이 사시는 엄마와 밤마다 산책을 한 지 2달이 조금 넘어가고 있다.
속도가 아닌 습관을 만들어보자며 만보기를 기준으로 걷고 있는데,
함께 걷는 날이 더해갈수록 우리의 삶의 나눔은 깊이를 더해간다.

몰랐던 엄마의 슬픔과 설움을 알게 되자 더 잘 살고 싶어진다.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어떤 업적을 남기는 것이 아닌,
삶의 작은 걸음들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깊이 사랑하며 받아들이는 것임을 깨달아가고 있다.

아이는 아이였을 때는 갑자기 들어선 하얀 잎새가 어색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더 이상 아이가 아니게 된 때에 바라 본 새 하얀 숲은 눈이 부신 아름다움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깊어져 간다.
그렇기에 우리의 나이듦은 그 자체로 위대한 업적이다.

책의 작가인 이현영작가님은 어느 날 삐죽 솟은 흰머리를 보며 책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흰머리가 나는 것을 보며 ‘나도 이제 늙어가네’가 아닌 하얗게 익어간 엄마를 떠올렸다는 것이 놀랍다.

그림은 무채색으로만 표현되었는데,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의 표정이 밝기 때문인 것 같고, 마지막 부분의 팔근육을 표현한 것은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대단한 날개」로 제9회 상상만발책그림전에서, 「콩떡콩떡 줄넘기」로 제1회 한국그림책출판협회 그림책 공모전에서 수상한 바 있다.

깊어가는 가을, 아름답게 익어가신 부모님을 떠올리고, 나 역시 아름답게 익어가기를 꿈꾸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림책 「하얀 숲」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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