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기다려 주세요 - 느린학습자 친구의 부탁 참좋은세상 1
이상미 지음, 정희린 그림, 사탕수수 기획 / 옐로스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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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를 가졌던 36살의 봄을 기억해 본다.
병원에서는 노산이라며 다양한 태아검사를 권했다. 비용이 비싸기도 했지만, 검사해서 문제가 있으면 안 낳을 것도 아닌데 싶어 검사를 하지 않았다. 검사를 해도, 안 해도 출산 때까지 산모는 불안함 가운데 지내게 되니,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다.
예정일보다 2주 일찍 나온 아이. 건강하게 태어남에 감사했는데, 걷는 게 느려도 걱정, 말이 느려도 걱정. 아이가 클 때까지 감사보다는 걱정으로 살아가는 게 부모의 실체이다.

존재만으로 감사했던 마음은 어디로 간 걸까?
느리기만 한, 잘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를 볼 때, 우리는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윽박지르기 일쑤다.

그런데 만약 나의 성급함이나 욕심 때문에 느리게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아이가 모든 면에 서툴고, 때론 튀기도 하고,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설명해야 한다면 어떨까?

언젠가부터 우리 삶 속에 ‘느린 학습자’라는 새로운 단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특수반이라는 이름의 교실이 있었고, 그곳을 오가던 어딘가 모르게 도움이 필요해 보는 친구들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제 그 교실은 도움반 또는 희망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고, 그 곳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한 학급에 한 명씩은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내가 이 아이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가까운 가족 중에, 친한 가족 중에 특별한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수업을 다니다 보면 이 특별한 친구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경계선 지능인이라고도 불리우는 느린학습자들은 IQ 70-84 사이의 지능지수를 가진다. 완전한 지적장애는 아니지만, 사회생활이 쉽지 않고, 일에 대한 이해력이 약하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장애 등급을 확실히 받기도 어렵다보니 사회적으로 지원, 보호를 받기 어려운 면도 있다. 사회 구성원들의 이들을 향한 인식 정도도 천차만별이라 성인이 되었을 때 평범하게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어려운 게 사실이다.

흔히 우리는 육아의 목표가 독립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느린학습자를 둔 부모들도 마찬가지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이어가며 자립하기를 꿈꾸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자립을 하려면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하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이 변화를 위해 ㈜ 사탕수수 정현석 대표는 경계선 지능인 청년들의 자립을 돕고자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사탕수수에서 기획하고, 이상미작가님이 글을 쓰고 정희린 작가님이 그림을 그린 「우리를 기다려 주세요」는 느린학습자 친구들의 목소리가 담긴 그림책이다.
누구보다 순수하고 해맑은 경계선지능인들의 느리지만 묵묵히 걷는 발걸음을 친절하게 보여주며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는 착한 책이다. 식물이 자랄 때 햇볕과 비와 바람이 필요하듯, 느린학습자 친구들에게도 햇볕과 같은, 비와 같은, 바람과 같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대신 말해주고 있다.

주변에 느린학습자가 있다면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책의 목소리를 들어주면 좋겠다. 혹시 잘 몰랐지만 알고 싶다면 이 책의 목소리를 들어주면 좋겠다. 국민 인구의 13.6%가 경계선지능인이라고 하니 이제는 모두가 알아야 하는 게 맞다.

사실 우리는 빠른 것을 너무 좋아한다. 동시에 빨라야만 하는 현실에 지쳐있다.
조금 느려도 괜찮지 않을까?
천천히 같이, 멀리 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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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17: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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