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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걸음으로 가다
귄터 그라스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소설에는 두가지의 길이 있다. 하나는 역사적 사실과 도덕적 가치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올바를 것을 주장하는 소설이다. 다른 하나는 마광수의 <광마일기>가 보여주는 욕망에 솔직하고 즐거움을 주는 가상의 세계이다. 나는 이 두가지 길이 모두 의미있다고 생각하는데, 현재와 같은 야만의 세계에서는 특히 앞의 길에 조금의 높은 가치를 둬야 한다고 본다.
귄터 그라스의 <게걸음으로 가다>는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과는 무척 다른 작품이다. 황석영의 소설이 육박해오는 국가폭력과 그에 따른 주관적인 아픔을 이야기한다면 귄터 그라스의 소설은 차분하게 다시 되살펴보는 입장이다. 제목이 [게걸음]이 된 이유는 소설 속 화자의 다음과 같은 설명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우선 이것을, 다음에는 다른 것을, 그러고 나서 이런저런 인생의 경로를 차례대로 풀어가야 할지, 아니면 시간을 비스듬하게 가로지르면서, 마치 뒷걸음질하며 옆으로 비켜가는 듯하지만 사실은 상당히 신속하게 전진하는 게걸음의 방식과도 유사하게 서술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의 사실만은 분명하다. 자연 혹은 더 정확히 말해서 발트 해는 앞으로 여기서 보고하게 될 그 모든 일을 이미 50년 이전부터 묵묵히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마지막 문장에 주목해야 하는데, 귄터 그라스는 자신의 창작법으로 하나의 객관적 역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게걸음처럼 우회하는듯한 조심스러운 총체의 관찰에 의해서 가치상대주의의 함정을 넘어선 진리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라쇼몽> 등에서 소설 작가들이 가지는, [시점에 따라서 역사는 전혀 다르며 역사는 기억하기 나름이고 가치는 상대적이다]라는 암묵적인 인식과 정반대된다. 이 소설 중간중간에도, 네오나찌의 이념이 역사적 사실의 사소한 왜곡들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지 그것이 가치상대주의에 의해서 관용될 성질의 것임이 아님이 주장되고 있다.
소설 속 화자는 자신에게 아버지가 없기에 자신이 아버지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무능한 중립자라고 인지하는 사람이다. 또, 범죄자의 어머니는 자유방임적인 교육자로 그려지는데, 이런 과정에서 가치상대주의가 왜곡되어 네오나찌의 선을 타게 된 것으로 작가는 보고 있다.
소설의 또 다른 논점은, 네오나찌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소재인 1만명의 독일인이 사망한 사건을 그가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총체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죄가 너무 크고 그 오랜 세월 동안 참회를 고백하는 것이 너무나 절실한 문제였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처럼 많은 고통에 대해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되며, 또한 그 기피 주제를 우파 인사들에게 내맡겨서도 안 된다. 이러한 태만은 용서되어서는 안 된다.] 117p
이 명제를 그는 이 소설 속의 한 사건에 대한 총체적 분석을 통해서 실천하고 있다. 그는 이 소재를 그가 우파들의 선전물에서 하나의 객관적 비극으로 회복시키는데 성공한 것 같다. 회복된 객관적 비극은 이제 좌파적인 시각에서의 인지도 가능해진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한국인 납치의혹사건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떤 단체의 주장에 의하면 4백명 이상의 한국인 어부 등이 휴전 이후에 북으로 납치되었다고 한다. 한국이 북에 잘못한 일이 또 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서 한국정부나 한국의 인권옹호적인 좌파는 발언해야 한다.
귄터 그라스 식으로 말하면 [우파인사들에게 내맡겨서는 안된다. 이러한 태만은 용서되어서는 안된다.] 과연, 한국의 우파 신문사와 우파 단체들은 북의 납치의혹사건을 자신들의 주요 선전물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