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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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라는 번역제목 보다는 원제를 직역한 '사구의 여자'가 합당하지 않았을까. 모래 언덕이라는 까마득한 속에 지은 집의 여자. 함정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남자. 소설 속에서 설명되고 있는 바, 암석도 아니고 흙도 아닌 일정한 크기의 모래가 사막의 형태로 자신의 크기를 넓혀가고 있는 이유는 1/8mm크기 근처인 모래의 크기가 유체역학적으로 유동에 적합한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람은 태양의 지구에 미치는 영향력에 의해 끝없이 불어오고, 대기중 물과 바람 순환과정에서 암석은 끝없이 모래로 풍화되고 모래는 유동을 계속한다.

모래를 떠올리면 황량한 사막을 넘어 행상하는 아라비아와 중국의 상인들이 생각난다. 월아정이라는, 초승달 모양으로 형성된 중국의 사막의 오아시스도 있다. 유목적인 삶과 행상의 삶은 닮아있다. 정착하고 사는 삶에 대하여 유목적인 삶은 지구화한 자본주의 시대에 어울리며, 또 그것을 내파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일단의 연구자들은 연구실과 생활공동체를 만들었다. 또, 오래전부터 '마을'을 만들고 농사와 어업을 하여 그같은 공동체를 영위해온 곳들이 지구상에 많다.

몽고의 유목민들은 시력이 좋고 건강하지만, 가혹한 날씨와 곤충들로 고통스러워한다고 한다. 소설 속 모래마을의 삶도 가혹하다. 우선 그 곳에 이른 사람들은 자유의지에 의한 경우가 아니다. 노동을 끊임없이 하지 않으면 집은 무너져내리고 가족의 뼈를 찾을 수도 없다. 탈주의 철학, 꼬뮌의 전통을 말하는 사람들은 낭만적으로 그런 공동체를 말한다. 하지만 이 소설 속 공동체는 폭력적이고 고통스럽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의 선택은 무엇을 말하는가. 안과 밖이 다르지 않음, 그같은 공동체와 현실적인 사회의 같음을 말한다. 나는 얼마만큼의 자유의지로 현실사회에 소속되어 있으며 일상의 모래나르는 노동을 반복하고 있는가. 이것을 되돌아보기를 작가는 권한다.

아베 코보가 이 소설을 쓰던 1962년에 그는 또한 일본공산당으로부터 제명을 당하는데, 이런 윤리적 초월성이 그런 사태를 빚어내는 데 일조했을 것 같다. 혁명이 목전에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적과 아군을 구별해야만 했을 것이다. 아베 코보는 실종을 선택하고, 시지프스의 운명을 선택했다. 그의 다른 작품들이 번역되어 그 시지프스의 행적을 좀 더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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