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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삶에 관심을 가지다보면 이국적인 것을 동경하지요. 일본 전래의 미와 열심히 번역하는 기세의 근대적인 내면의 인위적인 형성이 일본소설의 두가지 특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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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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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마음은 근대인의 마음. 사물을 보는 미적인 시각은 다른 일본소설이나 예술작품(만화 등)의 기본이 된다. 자기풍자의 여유를 가진 독특한 교양소설이다.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장경룡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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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 연설에서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도겐(1200-1253)의 시, [봄은 꽃이다. 여름은 두견. 가을은 달, 겨울에는 눈이 맑아 서늘키도 하더라]를 인용하고 있는데, 그와 같은 자연적인 일본의 미를 체험할 수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 미를 완상하는 개인주의적인 주체의 태도는 근대인의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아베 고보 단편집
아베 코보 지음, 이정희 옮김 / 위덕대학교출판부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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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된 장편소설 <모래의 여자>에서도 그렇지만, 모래처럼 앙상한 문체를 가지고 기발하고 도식적인 플롯으로 이야기하는 아베 고보의 예술은 단편에서 더 뛰어나다. 전세대의 연극적인 감수성을 느끼고 일본 소설의 한 극단(최인훈과 유사한)을 볼 수 있다.
하마에게 물리다
오에 겐자부로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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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식 후일담 소설인데, 1960~70년대의 일본의 지적 상황을 옅볼수 있고, 일본에서 소설가의 존재형식에 대해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소설 속 화자는 창조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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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걸음으로 가다
귄터 그라스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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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두가지의 길이 있다. 하나는 역사적 사실과 도덕적 가치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올바를 것을 주장하는 소설이다. 다른 하나는 마광수의 <광마일기>가 보여주는 욕망에 솔직하고 즐거움을 주는 가상의 세계이다. 나는 이 두가지 길이 모두 의미있다고 생각하는데, 현재와 같은 야만의 세계에서는 특히 앞의 길에 조금의 높은 가치를 둬야 한다고 본다.

귄터 그라스의 <게걸음으로 가다>는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과는 무척 다른 작품이다. 황석영의 소설이 육박해오는 국가폭력과 그에 따른 주관적인 아픔을 이야기한다면 귄터 그라스의 소설은 차분하게 다시 되살펴보는 입장이다. 제목이 [게걸음]이 된 이유는 소설 속 화자의 다음과 같은 설명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우선 이것을, 다음에는 다른 것을, 그러고 나서 이런저런 인생의 경로를 차례대로 풀어가야 할지, 아니면 시간을 비스듬하게 가로지르면서, 마치 뒷걸음질하며 옆으로 비켜가는 듯하지만 사실은 상당히 신속하게 전진하는 게걸음의 방식과도 유사하게 서술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의 사실만은 분명하다. 자연 혹은 더 정확히 말해서 발트 해는 앞으로 여기서 보고하게 될 그 모든 일을 이미 50년 이전부터 묵묵히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마지막 문장에 주목해야 하는데, 귄터 그라스는 자신의 창작법으로 하나의 객관적 역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게걸음처럼 우회하는듯한 조심스러운 총체의 관찰에 의해서 가치상대주의의 함정을 넘어선 진리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라쇼몽> 등에서 소설 작가들이 가지는, [시점에 따라서 역사는 전혀 다르며 역사는 기억하기 나름이고 가치는 상대적이다]라는 암묵적인 인식과 정반대된다. 이 소설 중간중간에도, 네오나찌의 이념이 역사적 사실의 사소한 왜곡들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지 그것이 가치상대주의에 의해서 관용될 성질의 것임이 아님이 주장되고 있다.

소설 속 화자는 자신에게 아버지가 없기에 자신이 아버지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무능한 중립자라고 인지하는 사람이다. 또, 범죄자의 어머니는 자유방임적인 교육자로 그려지는데, 이런 과정에서 가치상대주의가 왜곡되어 네오나찌의 선을 타게 된 것으로 작가는 보고 있다.

소설의 또 다른 논점은, 네오나찌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소재인 1만명의 독일인이 사망한 사건을 그가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총체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죄가 너무 크고 그 오랜 세월 동안 참회를 고백하는 것이 너무나 절실한 문제였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처럼 많은 고통에 대해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되며, 또한 그 기피 주제를 우파 인사들에게 내맡겨서도 안 된다. 이러한 태만은 용서되어서는 안 된다.] 117p

이 명제를 그는 이 소설 속의 한 사건에 대한 총체적 분석을 통해서 실천하고 있다. 그는 이 소재를 그가 우파들의 선전물에서 하나의 객관적 비극으로 회복시키는데 성공한 것 같다. 회복된 객관적 비극은 이제 좌파적인 시각에서의 인지도 가능해진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한국인 납치의혹사건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떤 단체의 주장에 의하면 4백명 이상의 한국인 어부 등이 휴전 이후에 북으로 납치되었다고 한다. 한국이 북에 잘못한 일이 또 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서 한국정부나 한국의 인권옹호적인 좌파는 발언해야 한다.

귄터 그라스 식으로 말하면 [우파인사들에게 내맡겨서는 안된다. 이러한 태만은 용서되어서는 안된다.] 과연, 한국의 우파 신문사와 우파 단체들은 북의 납치의혹사건을 자신들의 주요 선전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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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상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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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이 십여년의 창작중단에서 벗어나 새 소설들을 써서 비평과 독자의 양쪽을 만족시키며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두 권을 썼는데, 조금 먼저 출간된 것이 [오래된 정원]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운동권의 상황을 1990년대의 끝에 출소한 장기수가 감옥 밖의 연인의 삶을 회고하는 방법으로 이야기한다. 편지 형식의 연애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을텐데, 연애의 감정이 이상하게 추상적으로 변질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이 겪는 상황의 절박함들이 이런 기이함을 가려준다.

소설 중에서 여자주인공의 아버지가 일제시대의 공산주의자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분단과 전쟁을 경험하며 현실에서 패배한 이들은 가정에서도 폭력적이면서도 무기력하다. 이런 경험들이 매우 낭만적으로 그려진다. 엘리트였음에도 패배를 선택했다는 식으로. 하지만 그 패배라는 것은 개인적인 패배인 동시에 집단적인 패배이다. 여자주인공의 아버지는 그 패배의 의미를 제대로 반성하고 오류를 바로잡는 작업을 했나? 아니다, 술꾼으로 아픈 사람을 살 뿐이다.

이같은 낭만주의적 패배주의는 남자주인공의 생각에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감옥에서 그는 샹그리라-유토피아를 그리면서, 연인과의 산골 오지에서의 몇 달의 삶을 이상적인 삶으로 그리워한다. 이 대목이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것인데, 결국은 낭만적인 도피적 삶에의 그리움 이상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1970년대에 남자주인공이 생각했던 과학적인 사회주의에 어떤 오류가 있었던 것인가? 여기에 대해 남자주인공은 전혀 책임을 지지 않고 방기하고 있을 뿐이다.

책임방기는 여자주인공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아버지-남자연인을 추수하는 행태를 보일 뿐이고, 사회적 행동이나 결정적인 여행들도 자신을 짝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반응이었던 것이 컸다. 그는 남자들에 비해 비주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고 반영 자체만으로서도 의미를 가진다. 나쓰메 소세키는 [흉포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행동을 정확하게 기록하기만 하는 것으로 성불할 수 있다. 법적 책임은 따로 지더라도]라고 말했다. 이 소설은 책임과 자신에 대한 끝없는 되물음이 빠진 소설이다. 그 공백의 상태를 드러내주는 것이 이 소설의 소명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공백의 존재는 이야기가 소세키 식으로 완결되지는 않았음을 표시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별다른 이의없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이상하다. 무책임의 구조. 참도 거짓도 아닌 것. 이 소설이 소비되는 현재의 한국에서 북한의 응원단에 미인들이 많다는 것에만 주목하는 상황은 비극적 사회주의자였던 여자주인공의 아버지와 대비되어 하나의 희극을 연출한다. (자칭 사회주의 국가는 미인들만을 뽑아 응원단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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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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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라는 번역제목 보다는 원제를 직역한 '사구의 여자'가 합당하지 않았을까. 모래 언덕이라는 까마득한 속에 지은 집의 여자. 함정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남자. 소설 속에서 설명되고 있는 바, 암석도 아니고 흙도 아닌 일정한 크기의 모래가 사막의 형태로 자신의 크기를 넓혀가고 있는 이유는 1/8mm크기 근처인 모래의 크기가 유체역학적으로 유동에 적합한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람은 태양의 지구에 미치는 영향력에 의해 끝없이 불어오고, 대기중 물과 바람 순환과정에서 암석은 끝없이 모래로 풍화되고 모래는 유동을 계속한다.

모래를 떠올리면 황량한 사막을 넘어 행상하는 아라비아와 중국의 상인들이 생각난다. 월아정이라는, 초승달 모양으로 형성된 중국의 사막의 오아시스도 있다. 유목적인 삶과 행상의 삶은 닮아있다. 정착하고 사는 삶에 대하여 유목적인 삶은 지구화한 자본주의 시대에 어울리며, 또 그것을 내파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일단의 연구자들은 연구실과 생활공동체를 만들었다. 또, 오래전부터 '마을'을 만들고 농사와 어업을 하여 그같은 공동체를 영위해온 곳들이 지구상에 많다.

몽고의 유목민들은 시력이 좋고 건강하지만, 가혹한 날씨와 곤충들로 고통스러워한다고 한다. 소설 속 모래마을의 삶도 가혹하다. 우선 그 곳에 이른 사람들은 자유의지에 의한 경우가 아니다. 노동을 끊임없이 하지 않으면 집은 무너져내리고 가족의 뼈를 찾을 수도 없다. 탈주의 철학, 꼬뮌의 전통을 말하는 사람들은 낭만적으로 그런 공동체를 말한다. 하지만 이 소설 속 공동체는 폭력적이고 고통스럽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의 선택은 무엇을 말하는가. 안과 밖이 다르지 않음, 그같은 공동체와 현실적인 사회의 같음을 말한다. 나는 얼마만큼의 자유의지로 현실사회에 소속되어 있으며 일상의 모래나르는 노동을 반복하고 있는가. 이것을 되돌아보기를 작가는 권한다.

아베 코보가 이 소설을 쓰던 1962년에 그는 또한 일본공산당으로부터 제명을 당하는데, 이런 윤리적 초월성이 그런 사태를 빚어내는 데 일조했을 것 같다. 혁명이 목전에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적과 아군을 구별해야만 했을 것이다. 아베 코보는 실종을 선택하고, 시지프스의 운명을 선택했다. 그의 다른 작품들이 번역되어 그 시지프스의 행적을 좀 더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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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 아래서 너를 낳으려 했다
시게노부 후사코 지음, 최순육 옮김 / 지원북클럽(하얀풍차)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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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케냐의 삼부루 조수보호지역에 사는 한 암사자가 새끼 영양을 2주일간 보호했다고 한다. 동물은 어린 것을 돌보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전문가가 말한다. 돌보느라 제대로 먹지 못한 암사자는 함께 강가로 물을 먹으러 갔다가 깜박 잠이 들었고, 그때 한 수사자가 새끼 영양을 잡아먹어버렸다. 한 관리인은 '잠에서 깬 암사자가 매우 화가 나 수사자 주위를 돌며 10차례나 포효했다'고 전한다. 이후 암사자는 보호지역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한겨레' 2002년 1월 8일자 외신면 요약)

이 에세이를 쓴 시게노부 후사코라는 일본여자는 30년동안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함께 테러활동을 해온 적군파의 멤버다. 1999년 10월에 체포되었다. 아랍 전사와의 사이에서 난 자신의 27세된 딸에게 일본국적을 취득하게 하기 위해서 일본정부에 낸 글들을 포함하여 쓰여진 자전적인 내용을 기록한 에세이다.

선전의 의도가 보이는 곳이 있고, 또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오래 현장에서 투쟁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실무가다움이 있었다. 제목만 해도 그렇다. 일본어로 된 원제를 해석하자면, '사과나무 아래에서 너를 낳기로 결정했다'인데, 억척 모성과 비인간적인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테러리스트의 긴장이 느껴진다.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며칠 전 위에 소개한 신문기사에서 만난 암사자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후사코가 행한 테러로 인하여 사망하였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잔인하다고 생각하여 그와같은 이미지를 연상한 것은 아니다.

후사코의 고졸 사원으로서의 회사생활, 야간대학생활과 학생운동, 그리고 세계혁명기지인 베이루트에서의 투쟁 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속을 가지고 있다. 후사코는 제국적 지배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자연스러움을 바탕으로 하나의 길을 살아갔던 것이다. 이 과정이 모성을 지닌 채 야수로서 자연스러운 삶을 사는 암사자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일전에 '하마에게 물리다'라는 소설을 통해서 1972년의 연합적군 사건의 전말을 전하고 있다. 일본의 깊은 산속 아지트에서 무장훈련을 하던 적군파의 동조자들은 자체 재판을 통해 10여명의 동료에게 사형을 집행한다. 아랍에 있던 후사코는 이들의 살인행위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후사코는 이어 말하길, '다른 사람의 생명을 뺏을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무력으로 맞서는 투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때는 자신의 생명도 다른 이에게 내어 주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것을 전체주의적인 사고나 소영웅주의로 격하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속에서 만나는 아랍의 상황에서라면 테러의 주장에 어쩔 수 없는 정당성을 발견하게 된다.

1972년 연합적군사건에 즈음하여 서방 세계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변혁의 목소리는 희미해졌다. 그러나 후사코가 땅을 딛고 있는 아랍에서 전쟁은 이스라엘의 금융자본을 바탕으로 늘 계속되어왔다. 그게 무익하고 모험적인 소영웅주의 행동이기만 했을까. 1990년대의 후반의 아랍과 이스라엘 관계에서 아랍이 얻은 얼마 안되는 몫이라도 후사코 등의 삶의 결과물이라면 결과물일 것이다.

우리에게 적군파는 잔혹하고 비합리적인 테러리스트로만 소개되어 있다. 여기 그들의 하나의 진실이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에서 살아남은 연합적군파 청년은 튼튼한 수의사가 되어 있다. 그리고 후사코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딸을 위한 일을 준비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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