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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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역학‘이라는 학문이 있다. 이름이 참 생소한데, 질병의 원인을 사회적, 구조적 요인에서 찾는 학문이다. 이를테면, 심장병의 원인을 흡연이나 비만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대상자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적 관계망에서 찾는 것이다. 차별받는 사람들의 몸이 병들기 쉽다는 건 얼핏 상식적인 것 같으나, 이 상식적인 관점이 ‘사회역학‘이란 학문으로 정립된 건 2천년대에 들어서였다. 그 속성 상 ‘사회역학‘은 그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에 천착할 수 밖에 없다. 김승섭 교수는 이 책에서 평이해 보이지만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호소력 넘치는 문장으로 우리 사회의 차별과 소외, 혐오와 슬픔을 샅샅이 훑는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놀랍게도 이라크전 전쟁포로들 보다도 더 높은 확률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었다. 이들에게 말 그대로 삶은 곧 전쟁이고, 해고는 살인이었다. 삼성반도체,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들의 연구에서 외주 아웃소싱 구조가 기업의 리스크를 개인에게 오롯이 전가하는 메커니즘을 읽는다. 세월호 유가족의 상처를 한국 사회의 폭력적, 구조적 모순이 아닌 개인적 아픔으로 진단하는 것을 경계하고, 동성애에 대한 근거없는 혐오에 반대하는 그의 단호하지만 따뜻한 글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문제를 사회 시스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공동체 의식과 타인에 대한 공감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2017년 최고의 책‘으로 뽑힐 자격이 충분하다. 읽으면서 곳곳에 밑줄을 참 많이 그었지만, 미력하나마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공감가는 글이 있어 옮겨 본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당부할게요. 상처받는 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 활동을 하다 보면, 내가 ‘상대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도 분명히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길 거예요. 그리고 ‘우리 편‘에게서 받는 상처가 훨씬 더 아플 수도 있어요. 많이 힘들겠지만, 그 상처로 인해서 도망가지 말고, 그것에 대해 꼭 주변 사람들과 용기를 내서 함께 터놓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경험으로 간직하세요.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아요.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자신이 왜 상처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잖아요. 아프니까. 그래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요. 진짜예요.˝

우리는 망망대해에서 배를 뜯어 고쳐야 하는 뱃사람과 같은 신세다. 우리에게는 부두로 가서 배를 분해하고 좋은 부품으로 다시 조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많은 연구는 인간의 몸에 상처를 남기는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초래한 사건 자체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사건의 의미가 해석되고 재생산되는 사회적 환경이 외상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라고 말합니다. 그 고통을 초래한 사회적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자신이 겪는 고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때 트라우마는 더욱 확대 재생산 되는 것이지요.

언론에서 세월호 유가족분들의 상처를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라고 부를 때, 저는 조심스럽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와 관련된 의학적 치료는 분명히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한국 사회의 온갖 모순들이 집약된 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한 트라우마를, 개인적인 수준에서 진단하게 되고 그것이 개인적 수준의 치료‘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우려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세월호를 ‘교통사고‘라고, 운이 없었다고, 개인의 책임이었다고 말하는 입장과 과연 얼마만큼 다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아무리 우아한 이론을 가져와도 혐오는 혐오이고, 어떤 낙인을 갖다 붙여도 사랑은 사랑이에요.

인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사회가 급격하게 바뀔 수 있는 꿈이 없다면, 남은 길은 자신의 삶에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진보적인 실천을 하도록 하고 그럴 수 있게 준비를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저는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제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경험들을 계속하고 그것들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간직할 수 있기를 또 길러나갈 수 있기를, 그것이 가능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욕심이 훨씬 커요.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점점 그런 인간을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처럼 만들고,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구성원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게 저는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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