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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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SF 작가‘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이 책 한 권에 실린 7개의 중단편 하나하나가 전부 걸작이니 말이다(엽편인 <인류 과학의 진화>는 잘 모르겠지만). SF는 기발한 상상력과 소재에 대한 집착으로 주제가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한데, 테드 창의 작품들에선 그런 결점을 찾아볼 수 없다. SF로서는 너무나 완벽한 작품들이고 사고의 깊이와 메시지가 주는 울림이 대단하다. 초지능을 다루는 <이해>를 통해서는 요즘 대두되는 강인공지능의 문제를 곱씹어볼 수 있고, <일흔두 글자>에서는 로봇과 일자리, 계급과 인류 생존의 보편성을 얘기한다. <일흔두 글자>는 그 소재도 참으로 흥미로운데, 중세 신비주의에 등장하는 골렘과 호문쿨루스, 카발라가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온 평행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다. <지옥은 신의 부재>에선 신학과 과학의 결합을 시도하고, 그 속에서 인간에게 신이 갖는 의미를 고찰한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 다큐멘터리>는 루키즘에 대한 단편적 비난을 넘어, 미(美)의 가치와 평등, 그리고 개인의 자유의지에 대한 불꽃튀는 논쟁을 보여준다.
드니 빌뇌브의 영화 <컨택트>의 원작으로 유명한 <네 인생의 이야기>는 영화보다 훨씬 철학적이고 난해하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훨씬 우아하다고 느꼈지만, 언어 구조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아이디어와 묘사는 소설이 월등하다. 테드 창은 특히 언어에 대한 관심이 많은듯 한데, 명명학을 주요 소재로 다루는 <일흔두 글자>, 초지능이 기존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언어의 창조를 시도하는 <이해>에서 그러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기술과 아이디어가 주는 놀라움보다는, 인류에게 미치는 테크놀로지의 영향에 대한 심원한 철학적 사유로 인해 테드 창의 작품들은 강렬한 생명력을 갖는다. 하여 이 책을 읽지 않은 SF 팬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이런 걸작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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