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국왕 이야기 2
임용한 지음 / 혜안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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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조선국왕 이야기>에 이어 성종, 연산군, 중종, 인종 네 임금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 책의 메인은 네 왕 중 단연 연산군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극 속에서 변주되고 반복된 연산군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척 익숙합니다. 성종과 폐비 윤씨의 이야기도 그러한데요. 성종은 자신이 어진 임금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 의식이 상당히 강한 왕이었습니다. 대신들과 대간들의 의견을 경청하여 정책에 적극 반영하였으며, 세조 때 만들어진 제도들을 차근차근 정리하였고, 나라 살림을 꽤나 풍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유명한 경국대전을 완성한 왕이기도 하구요. 여기까지는 어진 임금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지요.

하지만 성종의 치세 옥의 티 한 가지가 있으니, 앞에서 말한 폐비 윤씨 사건입니다. 성종이 대신들과 대간들의 의견을 너무 잘 들어주다보니, 세조 때까지 찍소리 못하고 억눌렸던 신하들이 사사건건 왕의 일에 참견을 하기 시작합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왕의 덕이 모자란 탓이니 하늘에 사죄를 하라고 강요하고, 사냥을 하려고 하면 왕이 그런 잡기에 정신을 팔면 안 된다고 벌떼같이 일어나고. 하루는 성종이 중국에서 매를 선물받아 매사냥을 하려 하자 신하들이 극력 반대하여, 그럼 `궁궐 대청마루에서 매를 한 번 날려보는 건 괜찮겠지` 싶어 그렇게 하니 그것마저 잘못했다며 신하들이 들고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당연 성종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죠. 성군(聖君)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그토록 억눌린 삶을 평생 살 수는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성종은 그 스트레스로 인해 좀 비뚤어진 여성관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폐비 윤씨 사건도 그 일환인 듯 하구요. 폐비 윤씨가 질투가 심하여 성종이 후궁과 동침하면 바가지를 심하게 긁었다거나, 심지어는 성종의 얼굴을 할퀴어 피를 냈기 때문에 폐해졌다는 야사가 널리 전해지지만, 실록에 따르면 폐비 윤씨의 잘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합니다. 신하들이 정파를 막론하고 윤씨가 폐해지는 것을 극력 반대했는데도, 성종은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고 폐한 다음, 사약까지 내려 죽여버립니다.

우리는 연산군이 미쳐 날뛰게 된 게 폐비 윤씨 사건을 알게 된 것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갑자사화를 일으킨 것이라구요. 하지만 저자는 연산군을 미치광이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연산군을 냉혹한 전략가, 하지만 10대의 치기를 가진 철부지라 평합니다. 성종이 신하들에게 끝없이 잔소리를 듣고 무시당하다시피 하는 것을 연산군은 어릴 때부터 봐왔습니다. 당연 그는 관료들에 대한 증오를 갖게 되었죠. 왕이 하는 일에 이래라저래라 간섭을 하는 게 말이 되냐는 게 연산군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강력한 전제 군주가 되길 원했고, 하나하나 조그만 꼬투리를 잡아 훈구파, 사림파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숙청해버립니다. 너무나 좌충우돌인 숙청이었습니다. 자기 편인 대신들까지도 참수해버린 경우가 많았거든요. 연산군이 철부지라는 게 여기서 드러납니다. 최소한 자기 편은 살려뒀어야 하는데 자신의 권력에 취해 철권정치를 휘두르다보니 더 이상 꺼낼 패가 없어진 거죠. 실제로 중종반정에 참여한 인물들의 면모를 보면 당시 권력의 단물을 맛보던 이들이 대다수입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의외로 느낀 인물이 바로 중종입니다. 중종 때의 유명한 사건은 단연 조광조가 얽힌 기묘사화입니다. 중종이 조광조를 위시한 사림파를 등용하자 위기감을 느낀 훈구세력이 조광조를 제거하기 위해 나뭇잎에 설탕물을 발라 주초위왕(走肖爲王) 이라는 글자를 조작하여 사화를 일으켰다는 게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연산군 직후에 즉위한 터라 당시 조선의 관료층은 국왕권 강화에 극히 민감했습니다. 당연히 중종 초기 그의 권력은 별 볼일 없었지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중종은 조광조를 이용해 기막힌 연극을 합니다. 유교 원리주의자인 고결하고 순진한 조광조에게 5년간 지독하리만큼 철저한 성리학교육을 받은 거죠. 아침부터 밤까지 식사도 제대로 안 하고 항상 곧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듣고 싶지도 않은 유교 경전 학습을 억지로 한 겁니다. 자그마치 5년 간이나!

신료들은 이 연극에 깜박 속아 넘어갔습니다. 왕이 이처럼 성리학을 중시하고 원칙을 중시하니 신료들도 할 말이 없는 겁니다. 사실 정치와 행정이라는게 원칙대로만 될 수는 없는 것인데, 중종과 조광조가 매사 원칙을 들이밀고 따져드니 할 말이 없어지는 거죠. 조광조와 사림파는 그들대로 속아넘어갔습니다. 드디어 성리학의 원리대로 움직이는 이상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게 된 거죠. 중종의 연극인지도 모른 채.

중종은 5년 간의 연극과 사림파의 등용을 통해 권력을 야금야금 끌어모읍니다. 그러다 사림파의 득세가 극에 달하여 자신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겠다 싶은 시점이 오자, 조광조 이하 사림파를 하룻밤새 숙청해버립니다. 사실 이 기묘사화 때는 훈구파들이 오히려 극력 반대했다고 합니다. 조광조는 젊은 관료들과 유생들에게 절대적인 흠모를 받던 인물이라 이런 식으로 숙청했다간 자신들의 이미지에 큰 타격이 온다는 걸 잘 알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중종은 이를 이용해서 훈구세력을 `더러운 손`으로 만들어버리고 자기는 싹 빠져나가 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중종은 거리낄것 없이 절대권력을 휘두르게 됩니다. 실제 연산군 때보다 중종 치세에 죽은 사람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중종을 다룬 챕터의 제목인 `곰의 인내와 늑대의 지혜`가 더없이 어울리지요.

마지막 인종은 불행한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두 살 때부터 유교 경전을 줄줄 읽고 시를 지은 보기드문 천재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중종은 인종의 세력기반을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오히려 인종의 배다른 동생 명종의 세력은 그대로 남겨놓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인종은 즉위했을 때부터 독살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제대로 된 밥도 거의 먹지 않아 나날이 말라갔고, 병이 걸려도 약에 독을 탔을 까봐 약을 먹지 않아 계속 쇠약해졌습니다. 그렇게 암살의 위협에 시달리던 그는 즉위 8개월 만에 명종에게 뼈에 가죽만 남은 몰골로 명종에게 왕위를 넘기고 승하해버립니다.

이 책의 미덕은 우리가 지금까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조선 시대 왕들의 인간적 면모를 상세히 보여준다는 점에 있습니다. 평전에 가까운 책이라 아주 쉽게 읽히고, 사건 간의 연결고리를 명쾌하게 설명하여 역사를 보는 눈을 새롭게 해줍니다. 저자가 역사에 대해 뛰어난 통찰을 가졌기에 가능한 글쓰기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14년 동안 후속권이 나오지 않는 게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조선 시대 사료가 워낙 많아 아직도 정리중이라는데요. 언제쯤 3권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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