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기는 먹지 마라? - 육식 터부의 문화사
프레데릭 J. 시문스 지음, 김병화 옮김 / 돌베개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제목은 꼭 채식주의자가 쓴 육식 반대 운동 서적 같습니다만, 실상 이 책은 채식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세계 각 지역의 특정 육류에 대한 터부를 다루는 책이지요. 이를테면,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기피하고, 인도에서 소고기를 먹는 것은 천인공노할 범죄로 취급받는 것 같은 현상 말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저자가 인류학자가 아닌가 싶지만, 재밌게도 이 책의 저자 프레데릭 시문스는 지리학자입니다.

예전에 널리 읽혔던 <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을 아시는지요? 지금도 꽤 인기있는 문화인류학 서적으로 알고 있는데요. 저자 마빈 해리스가 이 책에서 이슬람 문화권에서 돼지를 싫어하는 이유, 힌두 문화권에서 암소를 숭배하는 이유를 분석한 바 있습니다. 대학생 때 읽고 그 명쾌한 논리에 감탄한 적이 있었더랬죠.

마빈 해리스에 따르면 이슬람 문화권에서 돼지를 싫어하는 것은 덥고 습한 아랍의 지리적 환경 하에서 상하기 쉬운 돼지고기 섭취를 자연적으로 멀리 하게 되었고, 이것이 종교적 관습으로 굳어졌다고 설명합니다. 힌두교의 암소 숭배는 인도에서 중요한 노동력인 소를 함부로 도살하고 잡아 먹지 못하게끔 강력한 금기를 걸어 둔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물론에 기반한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설명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 논리는 헛점이 많습니다. 덥고 습해서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지만, 아랍보다 훨씬 덥고 습한 하와이 등 폴리네시아 군도에선 돼지를 잘만 먹습니다. 소가 중요한 노동력이라 못 잡아 먹게 한다지만, 몽골 등 초원 지역의 유목민들은 자기 삶에 가장 중요한 재산인 말을 잘도 잡아 먹습니다. 마빈 해리스의 논리로는 이런 문화적 현상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프레데릭 J. 시문스는 이런 현상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합니다.

시문스는 이 책 <이 고기는 먹지 마라>에서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달걀, 말고기, 낙타고기, 개고기, 생선에 대해 한 챕터 씩 할애하여 각각의 터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문스가 제시하는 예시가 너무나 자세하고 방대하여 읽다 보면 굉장히 지칩니다. 옮긴이의 말대로 전 세계, 특히 아프리카에 이렇게나 부족이 많은 줄은 이 책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네요. 각 챕터마다 금기의 예시를 몇 십 페이지 씩 줄줄이 나열하고 그러한 금기가 만들어진 이유를 짧게 설명하는 방식이라, 나중엔 그 수많은 예시를 왜 다 읽어야 하는지 모를 지경이 됩니다. 물론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거를 확고히 하고 싶은 건 어느 학자나 마찬가지겠지만 이건 좀 과하다 싶습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이 책 - 하지만 각주 및 찾아보기가 200페이지가 넘으니 사실은 450페이지 정도 됩니다 - 을 통해 시문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특정 육류의 종교적 금기의 원인을 경제적 요인이나 환경적 요인으로만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인도의 소고기에 대한 금기는 힌두교가 타 종교보다 우위에 서기 위한 수단, 즉 제례적 순수성을 확보하여 다른 종교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힌두교 초기엔 암소 숭배 사상과 쇠고기 금지 조치가 없었다는 점을 통해 입증됩니다. 반면 아랍에서의 돼지고기 기피는 이슬람교가 발흥하기 전부터 있어왔기 때문에 종교적 요인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육식 금기의 원인은 종교적, 도덕적, 위생학적, 생태학적, 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게 시문스의 결론입니다. 마빈 해리스처럼 육식 금기를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책을 읽다 중간에 그만두기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거진 한 달 동안 읽었습니다만, 투자한 시간에 비해 얻은 게 많지 않아 아쉽습니다. 아내가 이 책을 사 놓고 안 읽은 이유가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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