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 우리의 두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외 지음, 신상규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1. 톰 소렌슨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석 달 전, 축구 연습을 마치고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던 중 자동차 사고를 당해 왼쪽 팔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팔꿈치 아래를 전부 잃은 후에도 잘려나간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 각각의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었고, 바로 앞에 있는 물건을 향해 팔을 `뻗어` 손으로 `쥘` 수도 있었다. 게다가 가끔 손이나 손가락에서 엄청난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2. 다이앤 플레처는 욕실의 온수 가열기 배기구가 잘못 설치된 것을 모르고 샤워를 하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그녀는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색깔과 질감은 인식할 수 있었지만 사물이나 얼굴의 형태는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밀너 박사는 그녀에게 통상적인 시각 검사를 행했다. 다이앤은 검안표 상의 가장 큰 글자도 읽을 수 없었고, 박사가 펴 보인 손가락의 갯수도 말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밀너 박사가 연필을 들고 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다이앤은 당연히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게 무엇인지 보겠다며 마치 앞이 보이는 사람처럼 능숙하게 박사의 손에서 연필을 뺏어간 것이다!

3. 콜로라도에 사는 간호사 낸시는 뇌 뒷편 동정맥기형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시각피질에 손상을 입고, 그 결과 왼쪽 시야에 조그만 맹점(blindspot)이 생겼다. 문제는 그녀가 그 맹점 안에서 이미지를 본다는 것이다. 경악스럽게도 미키 마우스나 벅스 버니 같은 만화 주인공들이 뛰어다니는 것이다!

4. 도즈 여사는 뇌졸중 이후에 두뇌의 우반구가 손상을 입어 좌반신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좌반신이 마비되었다는 것을 부정한다. 의사가 손뼉을 쳐보라고 하면 마치 중간에서 가상의 손과 마주치기라도 하듯 오른손으로 손뼉 치는 동작을 해보인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 그녀는 정말로 자신의 신체가 멀쩡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5. 아서는 산타 바바라에 있는 학교를 다닐 때 교통사고를 당해 3주 동안 의식 불명 상태에 있었다. 회생을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는 마침내 깨어났고 재활치료를 통해 정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부모가 가짜라는 망상에 사로잡혔다는 것만 빼고는. 그는 과거에 알았던 모든 사람들을 전부 알아보지만, 자신의 부모만은 가짜가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들은 미친 것일까요? 아니면 초능력을 갖게 된 것일까요? 둘 다 아닙니다. 이들은 두뇌의 특정한 부분에 손상을 입어 사고의 메커니즘이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 라마찬드란 박사는 이 책에서 우리 두뇌의 각 부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 두뇌와 신경계가 어떻게 작동하여 행동을 유발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두뇌가 단일한 의식을 갖고 사고한다고 흔히 믿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두뇌의 특정 부분에 조금만 자극을 주어도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지금은 인권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이지만, 1950년대에 한 과학자가 환자들의 두개골을 절개하고 뇌 곳곳에 전극을 꽂아 전기적 자극을 주는 실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자극을 주는 부위에 따라 환자는 유체 이탈을 경험하기도 하고, 종교적 깨달음을 얻기도 하였으며, 심지어는 신과 대면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대오각성을 단순히 뇌에 전기적 자극을 주는 것만으로 얻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인간의 의식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두뇌와 신경체계의 물리적 변화가 인간의 의식과 자아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사실 `단일한 의식과 자아`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적 존재론의 전제입니다. 근대 서구사회를 유지해온 합리적 이성의 기반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이에 반기를 든 게 프로이트였죠. 프로이트는 마치 빙산처럼 나의 에고 아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이드가 숨어있다고 주장하여 인간의 이성을 굳게 믿던 계몽주의의 시대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에 대한 실험적 증거를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요즘은 사실상 사장되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급속히 발달한 뇌과학은 프로이트의 이론이 전부는 아니라도 일부 타당하다는 실험적 증거를 내놓고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천재성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죠.


프로이트는 코페르니쿠스, 다윈과 함께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나르시시즘에 크나큰 상처를 입힌 사람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무참히 깨뜨렸고, 다윈의 진화론은 신에 의해 만물의 영장으로 뽑혔다고 스스로 믿던 인간을 몇몇 특성의 우연한 진화에 의해 성공한 동물의 한 종으로 격하시켰습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자아는 그 자신의 집에서 주인이 아니다.˝라는 말로 이성의 지도를 받는 자유의지에 대한 계몽주의적 환상을 박살냈습니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이러한 인류의 위치에 대한 모욕이 의미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분명히 알고 있으며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우주를 연구해 초시간적인 통찰을 갖게 되면서, 우리가 더 큰 무엇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변화하는 우주, 영원히 끝나지 않는 드라마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 자신의 개인적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은 덜게 된다. 아마도 여기가 과학자들이 가장 종교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지점일 것이다.˝ ˝스스로가 이 세계의 특별한 존재이고 특권적 위치에서 우주를 쳐다보는 고상한 존재라면, 우리의 소멸은 매우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런데 우리가 단지 구경꾼이 아니라 시바가 추는 거대한 우주적 춤의 일부라면, 우리의 불가피한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자연과의 행복한 재결합이 된다.˝ 굉장히 불교적이죠?


이야기가 조금 다른 쪽으로 샜는데, 이 책은 최근의 뇌과학 트렌드를 소개하는 훌륭한 대중과학서이자, 우리의 자아와 의식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존재론적 사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아주 쉬운 책은 아닙니다. 후반부에는 진화론에 대한 배경 지식이 조금 필요하고, 마지막 장은 거의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용어와 논리가 난무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입니다. 우리의 뇌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지식뿐만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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