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작품을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김영하의 소설들은 주인공이 하루 아침에 부조리한 상황에 맞닥뜨려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이 <빛의 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 김기영은 북한에서 스파이교육을 받고 22세 때 남파되었으나, 이 후 아무런 지령도 받지 못하고 일반인처럼 직업도 갖고 결혼도 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20년이 지난 어느 날, 연락도 없던 북한 당국에서 갑자기 김기영에게 모든 것을 정리하고 북으로 귀환하라는 지령이 떨어집니다.

이 책은 김기영이 이 지령을 받고 만 하룻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간첩’은 항상 어딘가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 남과 북 사이, 일상과 이념 사이, 믿음과 의심 사이…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김기영은 이미 경계를 벗어나 남한의 일상에 적응한 평범한 존재입니다. 이런 그가 갑자기 자기 존재의 부정을 명령받습니다.

아시다시피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은 일상 속의 다양한 관계에 의해 정의됩니다.

출근해서 동료들을 만나고, 일을 하고, 퇴근해서 친구를 만나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일상과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 나의 존재를 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갑작스레 부정하라는 것은 ‘나’라는 존재를 이 관계에서 지워버리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당연히 격렬한 거부감이 들게 되죠.

우리의 주인공도 끊임없이 고뇌합니다. 이러한 존재론적 고뇌는 최인훈의 유명한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의 고뇌와 맞닿아 있습니다. 둘 다 경계에 서게 된 자의 고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걸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책은 술술 잘 읽힙니다. 김영하가 원체 글을 어렵게 쓰는 작가가 아니기도 하고, 문체 또한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수월하게 읽으면서도 개인과 역사, 존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