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후의 유혹 - 하 ㅣ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26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평점 :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설교하던 예수는 세례자 요한과의 만남 이후에 생각이 바뀐다. 사랑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음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희생해야만 한다는 것을 그는 깨닫는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세상에 ‘불로 세례를 내릴 것’임을 천명하고 두려워 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선지자가 일어섰을 때 그를 사람들이 돌로 쳐 죽이지 않은 적이 있었나요?”. 이 말을 들은 유다는 크게 기뻐했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유다는 예수가 강력한 메시아가 되어 로마를 몰아내고 유대인을 해방시키기를 바랬고, 예수가 말한 싸움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가 제자와 추종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전을 습격한 건, 기실 유대교 장로들을 자극하여 총독 본디오 빌라도로 하여금 그를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는 유다에게 자신을 로마군에게 밀고할 것을 부탁하고, 유다는 이를 거부하지만 결국 예수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이 지독한 악역을 떠맡는다.
얼마 전까지 열심당원의 처형을 위해 십자가를 만들던 예수가 이제는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른다.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거부하고 외면하던 그가 마침내 메시아가 되는 길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십자가에 매달려 하느님을 부르다 기절한 예수가 깨어난 곳은 꽃이 만발한 거대한 나무 아래였다. 그곳에서 그는 하느님이 보낸 수호천사를 만나고 그가 여태 겪었던 고난이 모두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 천사는 예수에게 이젠 커다란 기쁨과 행복만이 있을 것이라며 막달라 마리아에게로 그를 인도한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 지극한 사랑을 나누었으나 막달라 마리아는 꼽추 사울이 이끄는 폭도들에게 살해된다. 이를 모르는 예수는 길을 떠나 그가 예전에 살려낸 라자로의 두 여동생, 마르타 그리고 마리아와 결혼한다. 예수는 자기 이름도 라자로로 바꾸고 목수가 되어 여러 자손을 낳고 오랜 세월 행복하게 살아간다. 어느 날 그의 앞에 막달라 마리아를 살해했던 사울이 예수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사도 바울로로 나타난다. 그는 예수에게 꿈에서 깨어날 것을 종용한다. 세상의 부패와 불의와 가난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부활한 예수는 정직한 인간, 핍박받던 사람들에게 소중한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바울로는 예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은, 당신도 새겨들어야 하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은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마음이 내키건 말건 내가 당신을 십자가에 매달아야 하고, 또한 당신은 부활해야 하며, 마음이 내키건 말건 내가 당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기실 하느님이 내려보냈다는 수호천사는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지 못하도록 거짓된 환상을 보여준 악마였다. 말 그대로 예수 앞에 닥친 “최후의 유혹”이었다. 그가 안온한 일상에 만족하여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저버리게끔 하는 강렬한 시험에 들게 한 것이다. 예수는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선택하는 대신,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순간 예수는 십자가형을 당하는 자리로 돌아와 승리감에 차서 소리친다. “이루어졌나이다!” 마침내 거대한 유혹을 이겨내고 약속을 지킨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예수복음>이 화선지 위에 정갈하게 쓴 붓글씨 같다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은 거칠고 강렬하게 벽에 휘갈긴 목탄 스케치 같다. 등장인물들의 격정적인 발화를 읽고 있으면 그 광포한 힘이 생생히 느껴진다. 예수가 겪는 고뇌와 선택이 사막의 모래 폭풍 같은 이 책의 문체와 어우러져 비극적이지만 위대한 결말을 이끌어냈다. 작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행복이 주는 무게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최후의 유혹을 이겨낸 예수의 마지막 선택에 독자들은 그 감동을 결코 잊을 수 없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