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 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어느 물고기의 이야기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최재천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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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쿨란스키의 대표작이자 오랫동안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던 전설의 책이 재판되었다. 그간 <연어의 시간>, <우유의 역사> 같은 마크 쿨란스키의 책에 매료되어 중고로라도 <대구>를 구하려고 애썼지만 실패했기에 재판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구매했더란다, 하지만 김유태의 <나쁜 책>에 수록된 책들을 읽는 게 올해의 독서 목표여서 <대구>는 순서가 한참 뒤로 밀려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이 책 <대구>가 처음 세상에 나온 건 1997년이었다. 생선의 한 종류에 불과한 대구가 어떻게 인류의 역사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고, 마르지 않을 화수분 같았던 대구가 어떻게 남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지를 이 책은 말한다. 바이킹이 북해의 어장에서 잡은 대구를 말려서 보존할 수 있게 되면서 이를 식량으로 삼아 멀리까지 항해할 수 있게 되었고, 바스크인들은 대구를 소금에 절이는 방법을 개발하여 유럽 전역에 절인 대구를 유통시켜 큰 부를 축적한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소금절임대구를 먹어왔기에 유럽에서는 아직도 신선한 생 대구보다 소금에 절인 대구를 더 고급으로 쳐준다고 한다.

소금에 절인 대구는 삼각무역의 중심축이기도 했다. 북아메리카 대서양 연안의 그랜드 뱅크스의 거대한 대구 어장에서 잡은 대구를 소금에 절여 배에 싣고 남아메리카 플랜테이션 농장에 갖다 판다. 농장 노예들의 식량으로 쓰일 대구를 파는 것이다. 그리고 남아메리카에서 담배와 설탕을 사서 유럽에 갖다 팔고, 유럽에서 생필품이나 사치품을 싣고 북아메리카로 가서 보스턴 등의 식민지 이주민들에게 파는 방식의 삼각무역이었다. 당시 보스턴이 대구 가공의 중심지였기에 보스턴에 막대한 부가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스턴 차 사건도 대구 무역으로 부자가 된 식민지인들(이 책에서는 ‘대구 귀족’이라 칭한다)이 본토 영국에 반기를 든 사건이었다.

이처럼 대구는 유럽인들의 식단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식량자원이었으므로 대구 어장을 둘러싼 각국의 경쟁이 치열했다.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영국이 뉴펀들랜드 인근 어장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싸웠고, 아이슬랜드와 영국, 독일은 북해 어장을 둘러싸고 전쟁을 방불케 하는 분쟁을 벌였다. ‘영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에는 다른 나라 바다에 가서 마음껏 대구를 잡을 수 있었지만, 1950년대부터 아이슬랜드가 영해선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12마일, 50마일, 200마일까지 확장하면서 여러 차례 ‘대구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분쟁의 배경에는 남획으로 인한 어획량 감소가 있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대구는 바다에 나가 낚시줄만 드리우면 끊임없이 잡을 수 있는 생선이었다. 산업혁명으로 트롤 증기선이 발명되면서 저인망 어선들이 대서양 바다 밑바닥을 훑기 시작했다. 깊은 바다 밑바닥에 사는 습성을 가진 대구는 냉동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어마어마하게 잡혀 소비되기 시작했고, 무한할 것만 같던 대구 어획량은 20세기 중반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각국 정부들은 어획량을 제한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씨가 말라버린 대구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 책이 처음 나온 1997년에도 뉴펀들랜드에서의 대구 조업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근 3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대구는 예전 규모를 회복하지 못한 듯 하다.

이 모든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엮어낸 마크 쿨란스키의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이미 <연어의 시간>에서 비슷하지만 훨씬 더 방대한 연구자료와 흥미로운 문제의식을 맛본 터라 ,<대구>라는 책이 가진 명성에 조금 못 미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각 챕터 끝에 대구라는 생선의 조리법을 소개하는 것도 <연어의 시간>에서 선보인 바 있어 신선함이 떨어졌다. 하지만 <대구>가 <연어의 시간>보다 먼저 출간되었기에 이런 지적은 사실 부당하다. <연어의 시간>이 아니라 <대구>를 먼저 읽었더라면 느낌이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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