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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복음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0년 1월
평점 :
이 책의 이름을 알게 된 건 작년에 읽은 김유태의 <나쁜 책>에서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과 더불어 예수의 생애를 다룬 “불경한” 책으로 소개되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은 그 유명한 <눈먼 자들의 도시> 조차 읽지 않았는데 대뜸 이 불경한 책부터 읽게 되었다.
누구나 성경의 내용, 그 중에서도 예수가 등장하는 신약의 내용은 어느 정도 알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는 점 외에 우리가 그의 성장 과정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없다. 예수가 나사렛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부모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성경은 말해주지 않는다. 주제 사라마구는 이 소설에서 그의 대담한 상상력으로 예수의 생애를 재구성한다.
<예수복음>이라는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마태복음, 누가복음 같은 복음서는 마태오나 루카 같은 사가들이 예수의 생애를 기술한 것이다. 그러니 예수복음이라고 하면 예수가 스스로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라는 뜻이 된다. 이 책은 일인칭이 아닌 삼인칭 시점에서 서술되는 소설이니, 예수의 자서전이 아니라 예수가 자기 삶을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는다. 예수를 신격화하지도 않는다. 예수는 이 소설 안에서 지극히 평범한, 고뇌하는 인간일 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만 빼면.
수태고지, 예수의 출생, 헤롯 왕의 유아 학살, 광야에서의 시험, 가나의 혼인잔치, 간음한 여인, 오병이어 등의 에피소드들을 설득력 있게 엮어 예수의 삶을 만들어 낸다. 그 중의 백미는 예수가 갈릴리 호수에서 홀로 배를 타고 하나님과 악마 루시퍼와 대면하여 토론하는 장면인데, 감히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그 유명한 대심문관 에피소드에 비견할만한 장면이다. 이 소설에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지도, 공평무사하지도 않은 신이다. 예수의 발칙한 질문에 당황하기도 하고 짜증내기도 하는, 어찌 보면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는 신이다. 그리고 가식적이면서 솔직한 신이다.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하는 운명이라는 걸 알게 된 예수가 그 이유를 묻자, 하나님은 예수의 희생을 통해 교회가 설립되고 기독교를 믿는 인간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이 히브리 땅을 넘어 전 세계에 미치게 되는 걸 원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예수가 그에 따른 희생을 캐묻자 하나님은 마지 못해 한숨을 쉬며 기독교를 믿음으로써 순교하게 되는 수많은 이들의 끔찍한 죽음의 양태를 열거한다.
이를 묵묵히 듣고 있던 악마는 하나님에게 그 모든 권세를 얻은 후 자신을 예전처럼 하나님의 하늘나라에 받아들여줄 것을 청한다. 하지만 신은 다음과 같이 악마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다.
“그래. 자네를 받아들이지도 용서하지도 않을 거야. 자네가 지금 그대로 있는 것이 훨씬 나아. 그리고 가능하다면, 자네가 지금보다 더 나빠졌으면 좋겠어. 왜 그렇습니까. 내가 대표하는 선은 자네가 대표하는 악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지. 자네 없이 선이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자네가 끝나면 나도 끝나는 거야. 내가 계속 선이려면 자네가 계속 악이 되는 게 긴요해. 악마가 악마가 아니면 하나님도 하나님일 수 없는 거야.”
이 불경함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무신론자인 내가 봐도 이 대목을 참고 넘어갈 기독교 신자는 없을 터이다. 신이 스스로 악의 존재가 불가피하다고 선언하다니! 불가피한 정도가 아니라 악이 없으면 자신도 존재할 수 없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 책의 첫 챕터에 등장하는 문구, “선과 악은 사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그 반대의 것이 없는 상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신의 뜻이라는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악을 없애지 못하는, 전지전능하지 못한 신이라면 대체 왜 우리가 신을 믿어야 하는 것인가. 신이 있든 없든 선과 악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었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없이 많은 희생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하나님과 악마를 만난 예수는 결심한다.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기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면, 신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아들로 죽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신의 아들로 죽는 것이 아니니 기독교가 세워질 일도 없고, 하나님이 예언한 수많은 희생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예수는 하나님을 속이고 그의 뜻을 이룰 수 있을까?
나 같은 무신론자라면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고, 기독교 신자라면 무척 고뇌하면서 읽을 법한 소설이다. 아니면 중간에 내던지던가. 리처드 도킨스가 과학으로 종교를 해부했다면, 주제 사라마구는 문학으로 종교를 해체했다. 도킨스처럼 사라마구 또한 신 없이도 인간은 충분히 선하게 살 수 있다고 웅변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