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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회고록 -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
이해찬 지음 / 돌베개 / 2022년 9월
평점 :
사실 난 이해찬이라는 정치인을 잘은 몰랐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라곤 박정희 때부터 학생운동을 했고, 김대중 아래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국민의 정부 때 교육부 장관을 지냈고, 참여정부 때는 국무총리를 했다는 정도?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레거시 미디어들에 의해 덧씌워진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도 한 몫 했다. 민주당의 노회한 정치인, 교육부 장관 때 입안한 입시제도 때문에 ‘해찬들 세대’의 학력이 떨어지게 만든 원흉, 선거기획의 달인이라는 껍데기 말이다.
그가 타계하고 몇몇 방송에서 그의 후배들이 회상하는 그는 이런 이미지와 사뭇 달랐다. 유시민이, 최민희가, 김어준이 기억하는 이해찬은 그렇게 단순한 이미지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책을 사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책표지에 떡하니 있는 근엄한 사진과는 달리 그의 회고록은 무척 재미나다. 이 책 한 권만으로도 한국 현대 정치사를 개괄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다. 그리고 이 양반 보기와는 다르게 좀 ‘깬다’. 진보 진영 거물 정치인의 당연한 스펙일 것 같은 빈농의 아들이 아니라는 점부터가 그렇다. 머리가 좋아서 명문 중학교에 들어갔지만 공부 보다는 영화, 연극, 야구를 보러 다니는 ‘문화생활’을 즐겼다. 서울대 공대를 갔는데도 단지 수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반수를 해서 서울대 사회학과를 들어가는 것도 남들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목표한 바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할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인데, 오히려 슬렁슬렁 여유롭게 살았달까. 하지만 그의 인생은 사회학과 입학 후 유신을 맞으면서 큰 변곡점을 맞는다. 학생운동에 투신하게 된 것이다.
그의 비범한 선택에는 아버지의 말씀이 한몫 했다. 유신이 선포되고 학교가 문을 닫으니 이해찬은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내려갔다. 보통의 부모라면 절대 학생운동 같은 데 기웃거리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했겠지만, 이해찬의 아버지는 어느 날 저녁 밥상을 앞에 두고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4・19 일어난 지가 10년밖에 안 됐다. 이렇게 학생들이 다 사라지만 그 4・19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유신에 맞서 싸워야지 왜 집에 내려왔느냐는 일갈이었다.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이해찬은 그길로 서울로 올라가 학생운동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독재정권 타도를 위해 학생운동을 하며 경찰에 쫓기고, 잡혀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힘든 수감 생활을 하고… 참으로 암담하고 우울한 나날이었을테지만 그는 타고난 유머러스함 - 보기와는 다르게 - 을 곁들여 자신이 겪었던 사건들을 담담하게 구술한다. 이해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의 담대함과 끈질김에 놀라게 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해결책을 찾아내려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지식인들과 달랐다. 아마 그가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마음에 깊이 새겼다는,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는다’는 명제가 이해찬이라는 사람을 정의한 게 아닐까.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는다. 체 게바라의 명언이라고 전해지는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갖자’는 말 만큼이나 가슴을 울리고 뇌리를 강하게 때린다. 변하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이상 만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그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뜻. 이상만 추구하다 교조주의로 빠지기 십상인 진보 진영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관직을 시작한 그에게 다시금 배울 점은 바로 ‘퍼블릭 마인드’다. 이해찬은 공사를 정확하고 엄격하게 구분해서 절대 공적 영역에 개인의 감정이나 이익을 개입시키지 않기로 유명했다. 조그마한 지위라도 가져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렇게 칼같이 공사를 구분한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해찬은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철저한 퍼블릭 마인드로 무장한 삶을 살았다. 고문으로 인해 건강을 해친 그가 말년에 편히 쉴 수 있었음에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직을 수행하기 위해 호치민까지 갔다가 별세한 것은 우리 사회를 위해 철저한 공인으로 살겠다는 신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이뿐만이 아니다. 그에겐 현실에서 찾은 방법으로 가치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었다. 초선 의원 시절, 아직도 서슬퍼렇던 안기부의 어마어마한 특활비를 끈질기게 추적해 만천하에 드러낸 성과나, 서울시 부시장 시절 모자란 예산을 은행과의 협상을 통해 마련한 일화나, 당대표로서 민주당을 온라인 국민정당으로 탈바꿈시켜 지금의 1인 1표제의 초석을 마련한 업적은 그의 탁월한 능력에서 기인한다. 그는 단지 ‘행동하는 지식인’이 아니었다. 미래를 읽는 혜안과 계획을 구현해 내는 추진력을 갖춘 거목이었다.
이해찬이 살아 있을 적에 그의 발자취를 좀 더 세밀히 좇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그러면서도 타고난 지략과 뚝심을 갖고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를 이제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말미에 그가 한 말, DJ가 했던 바로 그 말,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말대로 그는 살았다. 이해찬은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는다.
“운동을 하면서 실패는 해도 좌절하지는 않잖아요. 정치를 하다 보면 목표대로 성취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못한 것은 또 하면 돼요. 실패가 아니에요.”
그렇다. 이루지 못했다고 주저앉을 게 아니라 또 다시 도전하면 된다. 그렇게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고,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