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451 환상문학전집 12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박상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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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인공 몬태그의 직업은 방화수(Fireman)다. Fireman을 소방수가 아니라 방화수라고 하는 이유는 이들이 불을 끄는 게 아니라 불을 지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는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누군가 집에 책을 갖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이 방화수들은 탱크에 물 대신 등유가 가득 든 트럭을 타고 방화서에서 출동한다.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거리를 질주하여 현장에 도착하면, 도끼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 샅샅이 집을 뒤져 책을 찾아내고 등유의 불줄기로 남김없이 재로 만들어 버린다. 이 나라에서 책은 마약보다도 훨씬 위험한 물건 취급을 당한다.

몬태그의 아내 밀드레드는 하루 종일 벽면 TV에 붙어 산다. 그녀는 이미 거실 벽 3면을 TV로 만들어 놓고도 나머지 한 면 마저 TV로 채우자고 몬태그를 조른다. 밀드레드는 하루 종일 벽면 TV에서 나오는 자극적인 영상을 시청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녀는 밤에 잘 때 마저 귀마개 라디오를 끼고 잔다. 그 부작용으로 하마터면 죽을 뻔 했는데도 그걸 자각하지 못한 채, 요즘 말로 하면 도파민에 중독되어 살고 있다. 그녀에게는 삶의 가치나 남편의 애정보다 벽면 TV가 백만배는 중요하다.

몬태그가 즐겁게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어느 날, 클라리세라는 소녀를 우연히 만난다. 소녀의 나이는 ‘미친’ 열일곱. 남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하고 그걸 말로 옮기는 소녀를 보며 몬태그는 두려움과 동시에 호기심이 생긴다. 적국과의 전쟁이 임박한 이 나라에서, 더구나 책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회에서 제거될 수 있는 이 나라에서는 클라리세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없으니까. 이 나라에 남은 건 밀드레드처럼 체제에 순응하여 머리를 텅 비우고 사는 사람들 뿐이다. 클라리세를 만난 몬태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이제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책에 불을 지르는 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때처럼 현장에 출동한 몬태그는 그 집에서 책을 잔뜩 찾아내고 자기도 모르게 책 한 권을 방화복 안에 숨긴다. 집주인 노파는 책에 불을 지르려는 방화수들을 막아서고, 성냥을 꺼내어 스스로 불을 붙여 책과 함께 산화한다. “너희들은 내 책을 뺏어 갈 수 없어”라고 외치며. 큰 충격을 받은 몬태그의 마음 속 의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자신의 집에 책들을 숨기게 된다. 그의 상관인 서장 비티는 이를 눈치채고 몬태그의 집으로 찾아가 그에게 넌지시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 한다. 하지만 책을 불태우는 방화서의 서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박식하고 교묘한 비티의 말재주 조차 확신이 되어 버린 몬태그의 의심을 잠재울 순 없다. 그는 파버라는 노교수를 찾아가 세상 모든 방화서를 없앨 계획을 논의한다. 하지만 방화서로 돌아간 그에게 급박한 출동 명령이 떨어지고, 숨가쁘게 달려 도착한 현장은 바로 몬태그의 집이었다. 집에 책을 숨긴 게 발각된 몬태그는 과연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이 SF소설이 출간된 연도는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던 해였다. 이 음울하고 칙칙하지만 현대 사회에 대한 어마어마한 통찰을 보여주는 책이 70년도 더 전에 쓰였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 밀드레드는 숏폼에 중독되어 하루 종일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사는 현대인 그 자체이다. 자극적이고 일화적인 정보와 영상에 열광하는 소설 속의 대중들은 인스타와 틱톡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쾌락에 빠진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소설 속의 국가가 전체주의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국가가 독서를 금지했으리라 짐작하게 되지만, 사실 먼저 책을 거부한 건 대중들이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영화와 라디오, 텔레비전, 잡지, 그리고 책들이 점점 단순하고 말초적으로 일회용 비슷하게 전락하기 시작”했다. 모든 정보가 압축되고 각색되어 한 줄 짜리 헤드라인으로 끝나는 세상에서 책은 ‘왜?’라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위험한 물건이었다. 해석이 필요없는 정보를 잔뜩 주입받은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행복과 고양감을 느끼는데, “철학이니 사회학이니 하는 따위의 불안한 물건들”은 우울한 생각만 낳게 되니까.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은 그래서 대중에게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 되어 마침내 법적으로 금지된 것이다.

전제적인 정부일수록 국민들이 책을 가까이하는 걸 두려워한다. 윤석열 정권은 독서 관련 예산을 10분의 1 토막냈고, 국민의힘 당적을 가진 마포구청장은 마포구의 작은도서관들을 폐쇄하여 스터디카페로 만들려 했으며 예산 삭감에 항의한 마포중앙도서관장을 파면해 버렸다. 국민들이 책을 통해 비판 의식을 갖는 것만큼 그들에게 위험한 건 없기 때문이리라. 최근 극우들이 인스타를 선동의 장으로 골라 자극적인 가짜 뉴스를 마구 퍼뜨리는 것도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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