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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 우리를 둘러싼 공기의 비밀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1년 8월
평점 :
요 몇 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과학 저술가 샘 킨의 또 다른 작품. 그가 이 책에서 소재로 삼은 것은 ‘공기‘이다. 그의 전작들인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나 <사라진 스푼>처럼 진화론과 화학 같은 특정한 분야를 주제로 하는 게 아니어서 그런지, 훨씬 자유롭게 광범위한 영역을 넘나든다. 화산 폭발이 지구 대기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하면서 지구 과학을 다루고, 마취 가스의 발명에 대해 서술하면서 의학을 등장시키고, 비활성기체가 주기율표에 들어가게 된 곡절을 통해 화학을 말한다. 수억 년에 걸쳐 산소가 급증하게 된 사건을 다루면서 생물학이 등장하고, 대기 중 요오드 농도를 핵물리학과 연관지어 설명하며, 일기예보의 역사를 말하는 도중 물리학의 카오스 이론이 등장한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들이 공기를 매개로 다루어지다 보니 과학에 대한 별다른 지식 없이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다.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져서 책을 덮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덤.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유는 이렇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가 로마원로원에서 반대파 의원들의 습격으로 살해당한 그 날,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는 그 날, 카이사르는 칼에 찔린 채 바닥에 쓰러져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그의 폐 속에 남아 있던 약 1.0L의 공기, 270해 개의 공기 분자들은 바람을 타고 1~2년 안에 지구 전체에 퍼진다. 대기권 내의 공기량에 비해 미미한 이 1.0L의 공기를 과연 우리가 만날 일이 있겠나 싶지만, 확률적으로 계산해 보면 놀랍게도 카이사르가 마지막 내쉬었던 숨에 포함되어 있던 분자 1개가 다음 번 내가 들이쉬는 숨에 포함될 것이라는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까마득하게 오래 전 벌어졌던 역사의 일부가 지금 내 몸 속을 드나들고 있다는 놀라운 상상! 비단 카이사르 뿐만 아니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때 내쉬었을 숨결, 80년 오월 광주의 그 밤에 전남도청에 있던 사람들의 마지막 숨결도 지금 이 순간 내 폐 한 구석에 역사의 일부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샘 킨은 말한다. ‘우리는 한 모금의 숨결에 온 세계를 담을 수 있다‘고. 또 ‘우리가 단 한 번 들이쉬는 숨 속에도 세계의 모든 역사가 들어 있을 수 있다‘고. 그리고 만약 우리 인류가 먼 훗날 외계의 어느 행성에 정착하여 그곳의 공기를 호흡하는 순간, 우리 폐 속에 있던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결은 그 행성의 대기에 섞일 것이다. 그렇게 역사는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