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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붕괴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05년 11월
평점 :
<총, 균, 쇠>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런 의문을 가졌다. 어째서 과거에 융성했던 사회들이 지금까지 지속되지 못하고 도중에 붕괴했을까? 그가 정의하는 ‘붕괴‘는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오랜 시간 동안 일어난 인구 규모, 정치, 사회, 경제 현상의 급격한 감소‘를 일컫는다. 이 정의에 따르면 한 국가가 이웃 민족에게 정복당하는 것은 붕괴가 아니라, 그 나라의 지배 민족이 바뀌는 정상적인 흥망성쇠일 뿐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이 책에서 붕괴의 예로 드는 것은 남태평양의 이스터섬, 북미의 아나사지 문명, 마야 제국, 노르웨이령 그린란드 등이다. 저자는 이 사회들이 붕괴하게 된 요인으로 다음의 다섯 가지를 지적한다. 환경 파괴, 기후 변화, 적대적인 이웃, 우호적인 무역국, 그리고 환경 문제에 대한 사회의 대응이다. 이 중 한 가지만으로 사회가 붕괴하지는 않는다. 최소 서너 개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붕괴가 발생한다. 하지만 마지막 요인, 그 사회에 닥친 문제에 대해 구성원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모든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제이다.
환경 파괴의 가장 극적인 예는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 섬이다. 이스터 섬의 11개 부족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거대한 모아이 석상을 경쟁하듯 만들었다. 섬 안쪽 채석장에서 만든 석상을 해안가로 옮기기 위한 목재와 밧줄을 만들기 위해선 수많은 나무들이 베어졌다. 900년 경 폴리네시아인들이 이스터 섬에 도착하기 전의 식생을 화분학(花粉學)으로 분석해 보면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진 숲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600년대 즈음엔 벌채로 인해 단 한 종의 나무도 살아남지 못했고 인구의 90퍼센트가 사라지기에 이른다.
미국 남서부에서 아나사지 문명을 발달시켰던 푸에블로족 인디언들의 붕괴를 이끈 결정타는 기후 변화였다. 3년 이상 지속된 가뭄으로 관개시설마저 물이 말라버렸고 영농을 계속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적절한 강수량이 보장되어 지하수가 풍부하던 시기에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진다. 그러면서 외부의 충격에 취약점을 드러내게 되고 가뭄에 대처할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적대적인 이웃이 결정적인 붕괴의 원인이 된 예로 마야 문명이 등장한다. 이스터 섬이나 아나사지 문명에 비하면 열악한 환경도 아니었고 광범위한 문자 기록을 남길 정도로 발달한 문명이었는데도, 마야는 스페인 콩키스타도르들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거의 붕괴된 상태였다. 문명이 흥성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마야 소왕국 간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생산성이 낮은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은 까닭에 전시에 식량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없어 하나의 통일된 제국이 탄생하지 못한 게 전쟁이 끝없이 지속된 동인이었다.
우호적인 무역국의 부재 또한 붕괴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폴리네시아의 핏케언 섬과 헨더슨 섬, 그리고 망가레바 섬은 서로에게 부족한 자원을 활발한 교역을 통해 극복하면서 수 세대를 지속했지만, 결국 가장 규모가 작은 헨더슨 섬의 자원이 고갈되면서 어느 정도 자급자족이 가능했던 망가레바 섬을 제외한 두 섬의 사회는 붕괴에 이르게 된다.
다섯 가지 붕괴의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노르웨이의 바이킹들은 척박한 아이슬란드에 정착하는데 성공했으나 그린란드를 정복하는 데는 실패한다. 그린란드의 환경이 훨씬 가혹한 탓도 있었지만, 그들은 결코 유럽인의, 그리고 기독교도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똑같은 환경에서도 이누이트족은 지금껏 살아남았지만 바이킹들은 이누이트의 생존 방식을 배우려 들지 않았다. 결국 그들이 고집한 삶의 양태는 그린란드의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고갈시켜 멸망에 이르게 된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현대 사회에서 붕괴의 위기에 다다른 곳들 또한 진단한다. 르완다에서의 대량학살, 같은 섬을 나누어 가진 도미니카공화국과 아이티의 차이, 중국과 호주의 위기를 말한다. 특히 르완다 대학살의 원인을 분석한 게 흥미롭다. 표면적으로는 후투족과 투치족의 인종 갈등이 원인이었으나, 그 배후엔 인구 과잉에 따른 토지 분쟁과 기아가 있었다. 끔찍한 학살의 표적은 대부분 토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학살은 토지를 재분배하고 인구 과잉을 해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맬서스의 이론이 현실화되는 순간이다.
결국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가용 자원을 넘어서는 인구 증가와 환경 파괴가 인류를 붕괴로 이끈다는 것이다. 결국 인류가 영속하기 위해서는 인구를 줄이고 자원이 고갈되지 않도록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몇 년 전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한국의 극심한 저출생을 ‘새로운 기회‘라고 극찬한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또다른 저서 <제3의 침팬지>에서 인류의 현 세대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고 역사의 무대 뒤로 퇴장하는 것이 지구를 구하는 길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한 바 있다. 어쩌면 한국은 AI의 도움을 얻어 적절한 인구로도 국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인류의 테스트 베드가 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