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웠다. 그리고 따뜻했다. 황현산의 섬세한 시선은 사회 문제를 말할 때나 문학을 비평할 때나 똑같이 그랬다. 이전에 읽었던 <밤이 선생이다>에서도 느꼈지만 그는 참으로 멋진 어른이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 전공인 불문학 뿐만 아니라 동서양 고전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 우리말에 대한 가없는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도 올바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뜨거운 마음을 가진 이였다.그렇기에 그가 이 책의 서문에서 밝힌 ‘문학적 시간은 대부분 개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사회적 주제와 연결될 때 그것은 역사적 시간이 된다. 그것은 또한 미학적 시간이고 은혜의 시간이고 깨우침의 시간이다‘라는 말이 황현산 개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언술이 아닐까 싶다.<밤이 선생이다>와 비슷하게 이 책도 각종 매체에 연재했던 산문과 비평들을 엮어낸 책이다. 5년이 지난 만큼 사유의 깊이도 두터워졌는지, <밤이 선생이다>에서 가끔 보였던 다소 섣부르고 안일하게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거의 사라졌다. 게다가 문장은 더욱 우아해져서 밑줄치며 곱씹어 읽을 대목이 많았다. 조금 아쉬운 것은 <밤이 선생이다>의 백미라고 여겼던 사진 비평이 사라진 것인데, 사진 비평만은 못해도 영화 비평이 이를 대신하고 있어 위안이 된다. 그 중 드니 빌뇌브의 영화 <컨택트> 속 함의를 아폴리네르의 상형시 「맛의 부채」와 연결시켜 끌어내는 대목은 감탄을 연발하며 읽게 된다.오랫동안 고뇌하고 사색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지혜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그의 새로운 글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불의에 맞서고 공동체를 사수하려는 그의 굳은 결기를 이어받고 싶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하니까. 사소한 것에서부터 꺾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황현산이 우리에게 하는 ‘사소한 부탁‘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