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의 역사 - 생명의 음료, 우유로 읽는 1만 년 인류문명사
마크 쿨란스키 지음, 김정희 옮김 / 와이즈맵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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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쿨란스키의 책을 지난 번 <연어의 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다.

이 책을 간단히 평하자면,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우유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과학을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우유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

인간이 어떻게 다른 동물의 젖을 먹게 되었는지, 어떻게 우유로 치즈나 버터 등의 유제품을 만들어 먹게 되었는지, 그리고 동서양 각국에서 우유의 쓰임새와 위상은 어떠했는지, 우유 유통은 어떻게 개선되고 발전되었는지, 우유를 둘러싼 논쟁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등...

그럼 이 책이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만큼 훌륭한 책인지 묻는다면?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답하기는 어렵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과학을 매개로 45억년 지구의 역사를 정교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한 폭의 거대한 만다라 같은 책이다. 여기엔 끊임없이 독자의 주의를 환기하고 과학의 경이로움으로 인도하는 빌 브라이슨의 글솜씨가 큰 역할을 한다. 반면, <우유의 역사>는 조금 산만하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으나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 아리송하다. 그래서인지, 우유의 역사라기보다는 우유에 대한 잡학사전에 가깝다.

게다가 환경문제에 천착한 <연어의 시간>과 달리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없다. 말미에 유기농, GMO, 동물 복지에 대한 내용이 다루어지지만 분량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책이 좀 밋밋한 느낌이 있다.

단점을 많이 나열했지만 그래도 꽤 준수한 책이라는 건 분명하다. 우유에 대해 평소에 갖고 있었을 법한 궁금증들을 해결해 주고, 그간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 을 깨우쳐 주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 나는 항상 가염버터가 왜 있는지 궁금했었다. 버터에 왜 짠맛이 돌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으니까. 사실 버터에 소금을 넣는 건 버터가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란다. 무염버터는 냉장고가 발명된 이후에야 비로소 먹을 수 있게 된 사치품이다. 또 하나. 선디(Sundae) 아이스크림은 미국의 한 아이스크림 상인이 일요일에만 아이스크림에 토핑을 올려 팔았던 데서 유래했단다. 그럼 왜 Sunday가 아니라 Sundae일까?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 아이스크림 같은 경박한 음식에 주일(Sunday)이라는 이름을 붙인 걸 불쾌해 해서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곳곳에서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유기농 우유 인증을 받으려면 항생제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말인즉슨, 젖소가 병에 걸려도 항생제를 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낙농가가 유기농 인증을 유지하려면 병에 걸린 소에게 항생제를 처방하고 곧바로 팔아버려야 한다. 동물복지와 극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우리가 윤리적 소비로 한데 묶어서 생각하는 유기농과 동물복지가 미국의 우유 산업에서는 공존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저자가 인용한 맥락에서는 조금 빗겨 가지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말한 ‘자연적 오류‘ -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게 최선이라는 그릇된 믿음 - 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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