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하라 - 아름다운 삶, 끝나지 않은 노래
조안 하라 지음, 차미례 옮김 / 삼천리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칠레의 현대사는 우리나라의 그것과 대단히 비슷하다. 좌우의 극심한 대립, 합법적인 정부를 군부 쿠데타로 말살한 뒤 이어진 장기간의 독재, 자국민에 대한 잔인무도한 고문과 학살, 독재를 무너뜨린 민주화 이후에도 청산하지 못한 오욕의 역사. 이 모든 게 민주주의가 외삽된 나라들의 공통된 흐름이겠지만, 칠레와 우리의 차이는 칠레가 모든 면에서 그 강도가 훨씬 세다는 점이다.

이 책은 칠레의 아옌데 민주 정부 수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위대한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의 미망인 조안 하라의 시점에서 기술된 평전이다. 발레리나로 칠레에 건너 왔으나 결혼에 실패하고 우울에 빠진 조안 하라와 부부의 연을 맺고 평생의 동지이자 동반자로 지낸 빅토르 하라의 삶은 격동의 칠레 현대사 그 자체였다. 가난한 인디오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빈한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는 젊은 시절의 방황을 떨쳐내고 연극과 노래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민중의 길을 찾는다. 그의 본격적인 커리어는 연극 극작가로 시작하여 큰 성공을 거두지만, 나중엔 칠레의 전통 민요를 기반으로 한 민중 가요를 만들고 부르기 시작한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민중의 힘과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그는 곧 기득권 우파의 표적이 된다.

아옌데 정부가 수립되고 민주주의의 새싹이 싹트나 싶었지만, 세계 어디서나 그렇듯 우파는 집요했다.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고의로 전국의 물류망을 마비시켜 생필품 부족과 인플레를 유발하고, 노동자와 농민을 상대로 대대적인 테러를 저지른다. 급기야는 선거로 선출된 아옌데 정부를 불법화 하려고 시도하고,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 궁을 폭격하고 권력을 탈취한다.

물론 칠레의 민중들은 손에 손을 잡고 다같이 거리에 나와 저항했지만, 군대의 무자비한 폭력을 이길 순 없었다. 총칼로 무장한 그들에게 맨손으로 싸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기득권에게 눈엣가시였던 빅토르 하라도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다시는 기타를 칠 수 없도록 양손을 뭉개버린다), 결국 무수히 많은 총탄을 맞고 희생된다.

피노체트는 박정희와 전두환을 합친 것 같은 인물이었다. 미국 닉슨 정권의 후원 하에 권력을 잡은 그는 상상하기 조차 힘든 폭력으로 민중을 억압하고 좌파를 말살한다. 그러면서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칠레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짓고 신자유주의를 도입, 어느 정도의 경제 발전을 이룬다. 박정희와 똑같이 17년 동안 독재를 했고, 전두환처럼 외견상으로는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했다. 그는 하야 이후에도 칠레군 총사령관직을 유지하면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쿠데타 세력 누구도 단죄되지 않았다),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 아직도 칠레는 피노체트 집권기의 경제 발전을 그리워하며 그를 숭배하는 국민이 많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처럼.

조안 하라는 남편의 죽음을 확인한 이후 두 딸과 함께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칠레의 정국이 다소 안정된 이후 다시 칠레로 돌아가 빅토르 하라 재단을 설립, 그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고 관련자들을 법정에 세우기 위해 노력한다. 2016년 유족들이 빅토르 하라를 살해한 파블로 바리엔토스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승리했고, 2018년엔 처형에 가담한 전직 군인 7명이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으나, 파블로 바리엔토스는 여전히 아무런 형사 처벌도 받지 않고 있다. 그릇된 역사가 남긴 상흔은 너무나 깊어 쉽게 치유되지 않음을 지금의 우리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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