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사 - 볼가강에서 몽골까지
피터 B. 골든 지음, 이주엽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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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알게 된 이후부터 내게 중앙아시아의 역사는 쭉 미지의 세계였다. 드넓은 초원에서 수없이 명멸한 유목민족들. 역사의 한귀퉁이에 반짝 나타났다가 샛별처럼 사라진 그들. 어디서 처음 왔는지, 나중엔 어디로 갔는지 행적도 묘연했던 사람들. 선비, 말갈, 유연, 거란, 돌궐, 흉노... 동아시아와 유럽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민족들이지만 그들의 역사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책을 지금껏 보지 못했다. 유럽 중심의 역사 기술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중앙아시아 유목민족들의 역사는 철저히 소외되어 왔으니까.

중앙아시아 역사의 석학으로 이름난 피터 B. 골든의 <중앙아시아사>는 이런 갈증을 조금은 해소해줄 수 있는 책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명멸한 수많은 유목민족들의 역사를 추적함은 물론, 그들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과 의미를 조명한다. 중앙아시아는 동아시아와 유럽, 아랍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였고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섞이는 공간이었다. 몽골제국의 건립은 최초의 세계화가 탄생하는 문명사적 전환의 순간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유목민족들의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의외로 세계가 좁다는 생각이 든다. 동북아시아에서 출발한 민족들이 삽시간에 인도와 페르시아까지 도달하고 지중해와 동유럽까지 세력권을 형성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우리가 배워온 유럽 중심의 세계사에는 아메리카 대륙 발견으로 인해 비로소 세계화가 시작되었고 그 이전의 문명권들은 각각 고립되어 있었던 것처럼 기술되어 있었는데, 이게 얼마나 편협한 역사관인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분명 좋은 책이지만 아주 뚜렷한 단점이 있다. 역사적 사실만을 건조하게 나열하다보니 읽는 재미가 매우 떨어진다. 몽골의 광활한 스텝에 서서 하루 종일 지평선만 바라보는 지루한 느낌이랄까. 유시민 작가가 <역사의 역사>에서 그랬다. 역사서의 가치는 결국 서사의 힘에서 나온다고 말이다. 역사는 수많은 사건들 중 역사가가 자기의 가치관에 맞추어 주관적으로 취사 선택한 것들을 기술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서사 없이 역사가의 가치관을 드러낼 수는 없다. 서사가 생략되고 팩트만 있는 이 책의 공허함은 바로 여기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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