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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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헤아려 보니 내가 서울에서 산 지 벌써 27년이 넘었다. 27년 전 처음 서울에 발을 디뎠을 때와 비교하면 서울의 지형이나 문화가 참 많이도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만 해도 서울 중심가의 한 축이었던 종로는 이제 노년이 지배하는 쇠락의 상징이 되었고, 인쇄공장이 잔뜩 들어서 있던 성수동은 유행을 선도하는 핫플레이스로 변모했다. 4호선 까지만 있었던 서울의 지하철도 이젠 9호선을 넘어 경전철이 개통되고 있으며, 촌놈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던 고가도로들도 속속 철거되고 있다. 고작 30년도 안 되는 시간으로도 이렇게 도시가 바뀌는데, 그보다 먼 과거의 서울은 어떠했을까?

<서울은 깊다>에서 전우용 교수는 거대 도시 서울의 역사를 구석구석 좇는다. 시간대로는 조선 건국부터 유신 정권까지가 되겠으나, 연재 컬럼을 엮은 책이라 매 장마다 다루는 주제는 각기 다르다. 저자는 권력에 의해 서울이 형성되는 과정, 그리고 권력의 변동에 따라 생멸하는 문화의 변천사를 꽤 설득력 있게 - 인문학의 특성 상 가끔 지나친 상상력이 동원되기는 하지만 - 제시한다. 이를테면, 영조 대에 한양의 개천을 준설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 그렇다. 17세기 말에 이르러 한양에는 물난리가 자주 났는데, 그 이유는 개천들의 하상(河床)이 높아져 배수로의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왜 개천의 하상이 높아졌을까? 조선 시대, 도시의 분뇨를 해결하는 방법은 개천에 내다 버리거나 텃밭에 퇴비로 뿌리는 것이었다. 조선 전기만 해도 한양의 인구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집마다 텃밭을 곁에 둘 수 있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로 상비군과 그 식솔들, 유랑민들, 벼슬길에 오른 양반들이 한양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텃밭은 몽땅 주택지로 전환되었다. 그러니 자연히 개천은 똥물이 될 수 밖에. 게다가 17세기 후반부터 온돌이 보급되면서 땔감의 소비량이 급속히 늘었고, 온돌에서 타고 남은 재가 개천으로 쓸려 들어가면서 퇴적되어 하상이 높아지게 되었다. 결국 수해가 빈발하게 된 것은 전란으로 인해 한양으로 부와 인구가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언어의 유래도 말해준다. 아이를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은, 조선 시대 거지들이 다리 밑에서 생활하며 패거리를 짓게 된 데서 온 말로 ‘거지 아이를 데려왔다‘는 뜻이란다. 그리고 광장시장은 원래 일제 때 광교와 장교 사이의 구간을 판자로 덮어 시장을 만들려는 계획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돗떼기 시장‘은 돗자리째 물건을 떼어가는 도매 시장을 뜻하는 말로, 상품을 조금이라도 좋은 가격에 매매하려는 사람들이 크게 북적이게 되어 ‘혼란하고 정신없음‘을 대변하는 단어가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역사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역사는 곧 맥락이고, 맥락 속에는 그 흐름을 만드는 권력과 대중의 역학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같은 이유로 서울의 도시사를 읽는 것은 유의미하다 할 수 있겠다. 나와 내 아이들이 발디디고 사는 땅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니까. 게다가 이 책은 서울의 곳곳에 담긴 맥락을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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