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투퀴디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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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었던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 전쟁의 역사를 다루었다면, 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그 이후 아테나와 스파르타 사이에 벌어진 기원전 5세기 27년 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다룬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여러 모로 2차 대전 이후의 냉전 체제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거대한 적(페르시아 / 추축국)에 맞서 힘을 합쳐 싸웠으나, 적을 물리친 후엔 정치 체제가 상이한 양대 강국(아테네, 스파르타 / 미국, 소련)이 대립하는 구도가 그렇다. 당시의 아테네는 민주주의 해양국가였고, 스파르타는 과두제 내륙국가였다. 아테네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것과 달리 동맹국들을 자신과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는 제국 체제를 만들려 했고, 스파르타는 이에 불만을 품은 동맹국들을 규합하여 아테네에 대항하는 전쟁을 일으킨다. 아테네는 미국 또는 영국을, 스파르타는 소련 내지는 나치 독일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아테네는 민주주의를 전파한다는 미명 하에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펠로폰네소스 국가들을 정벌하고, 스파르타는 자국의 동맹국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아테네 쪽 동맹국들을 침략한다. 미소 냉전 시기에는 핵으로 인한 상호확증파괴 우려로 두 초강대국 간의 직접적인 충돌이 없었지만, 냉병기만 존재하던 기원전 5세기엔 수없이 많은 전투가 벌어졌으며 그 결과도 극도로 잔인하고 냉혹했다. 이 책엔 포로를 모조리 참살하고, 여자와 아이는 노예로 팔아 넘기는 사건들이 무수히 기록되어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시대를 막론하고 무모한 원정은 국가의 운명을 바꾼다는 게 아닐까 싶다.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아테네는 자신감이 넘쳐 시칠리아 정벌에 나선다. 시칠리아를 정복하면 막대한 세수(稅受)를 얻을 수 있고, 스파르타를 동서 양면에서 압박할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국력을 총동원한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은 처참하게 실패한다. 수 양제의 고구려 원정,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히틀러의 바르바로사 작전이 모두 해당 국가의 몰락을 불러 왔듯이, 이때부터 아테네는 황혼기에 접어든다.

사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와 <역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저자들의 역사를 기술하는 태도이다. <역사>를 저술한 헤로도토스는 어떤 사건에 관련된 일이라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최대한 담아내는 반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지은 투퀴디데스는 엄격한 팩트 체크를 거친 사실만 기록한다. 그래서 <역사>에는 야사에 가까운 이야기들과 저자의 주관이 담긴 의견이 많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는 객관적인 사실과 숫자 만이 존재한다. 헤로도토스는 넓지만, 투퀴디데스는 깊다. <역사>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라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충무공의 <난중일기> 같다. 역사서로서의 가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더 나을지는 모르겠으나 읽는 재미는 당연히 <역사>가 월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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