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헤로도토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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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역사가’라고 칭송받는 헤로도토스의 역작, <역사>이다. 제목의 무게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역사 일반에 대한 학문서일 것 같지만, 기실은 고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역사라 보아도 무방하다. 에게 해와 소아시아 일대의 국가들 사이에서 페르시아가 어떻게 발흥했고, 어떻게 정복사업을 벌여 대제국을 이루었는지를 상세히 서술한다. 메디아의 피지배 민족이었던 페르시아의 퀴로스가 페르시아인들을 이끌고 봉기하여 메디아를 전복시킨 후 페르시아를 건설하고, 이웃 강대국 뤼디아(이 책의 역자 천병희 교수는 그리스어 발음에 따라 ’y’를 ‘위’ 발음으로 번역한다. 이를테면, ‘디오니소스’를 ‘디오뉘소스’라고 하는 식이다)를 정복하며, 앗쉬리아와 아이귑토스(이집트를 말한다. 이 책엔 당대의 그리스식 표기가 많아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스파르타는 ‘라케다이몬’, 트로이는 ‘일리온’, 그리스는 ‘헬라스’라고 칭한다)를 복속시키고, 스퀴타이 원정에 실패하지만 - 역시 기마민족은 격이 다르다 - 이어서 이오니아 해 일대의 국가들을 평정하고, 마침내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전쟁을 하기에 이르는 장대한 이야기다. 퀴로스를 이어 캄뷔세스, 다레이오스(그 유명한 다리우스 대왕!), 크세르크세스(영화 <300>의 그 크세르크세스 맞다)로 이어지는 페르시아 왕들의 계보 속에서 수많은 민족들과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보통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페르시아 왕이 주위의 어떤 국가를 정벌하기로 마음먹는다. 목표가 되는 국가에는 여러 민족이 살고 있는데(고대 에게 해 근방에 이렇게 많은 민족이 있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이 민족들의 명칭과 풍습을 하나하나 매우 자세히 소개한다. 그후 페르시아가 그 부족들 하나하나를 어느 정도의 병력과 어떤 기략으로 싸워 이기는 지를 기술한다. 그러다 보니 어마어마하게 많은 민족과 인물이 나오는데 이름도 비슷비슷해서 자꾸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게 된다(인명록이 이렇게 도움이 되는 책도 드물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역사와 신화의 구분이 모호해서(어디어디의 왕이 헤라클레스의 몇 대 손이라던가, 미다스 왕의 후손이라던가…) 읽다 보면 이게 진짜 있었던 일 맞는지 알쏭달쏭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지루한데 흥미진진하다’는 묘한 역설적 감정에 사로잡힌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수없이 많은 인물과 지명, 숫자가 눈을 피로하게 하는데,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흡인력은 또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흐르던 역사의 이야기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서서히 변한다.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인이다. 그리스인이 페르시아의 역사를 이렇게 소상히 기술한 이유가 무엇일까? 페르시아라는 당대 최강의 제국을 맞아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용맹히 물리친 신화적인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서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의 위대함을 드높이기 위해 페르시아가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역사를 써내려간 것이다. 이쯤 되면 정말 대단한 밑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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