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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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에드워드 윌슨이 지금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저서 <사회생물학>을 출간했을 때 그가 학계에서 받은 비난은 상상을 초월했다. 동물을 비롯한 인간의 제반 행동이 환경보다 유전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는 그의 이론이 68세대의 영향이 아직 가시기 전인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회생물학이 감수해야 했던 무수한 공격들이 학문적 엄밀성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이념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 의거하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동료 학자들에게서! 고생물학계의 슈퍼스타인 스티븐 제이 굴드(리처드 도킨스의 맞수로도 유명하다)와 리처드 르원틴은 윌슨의 이론이 우생학과 파시즘의 이론적 토대가 된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하버드에서는 연일 윌슨의 퇴진 운동이 벌어졌고, 윌슨은 강연 도중 물세례를 받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이 사태의 문제는 과학 이론을 학문적 허점을 가지고 공격한 것이 아니라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마녀사냥을 했다는 데 있다. 과학은 그 자체로 가치 중립적이다. 자연과학에 이념과 윤리의 문제를 갖다 붙이는 것은 종교적 신념으로 지동설을 부정하는 중세 시대와 다를 바 없는 짓이다. 핵폭탄이 문제가 된다고 원자물리학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대체 뭐가 다른가? 물론 연구 방법의 윤리적 문제는 - 731 부대의 생체 실험 같은 - 당연히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과학 그 자체는 이념과 윤리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충분히 좋은 책이다. 김승섭이 전작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보여줬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구조적 불합리에 대한 저항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선 조금 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과학적 연구를 이념의 색안경을 통해 검증하려 든다는 느낌이랄까? 물론 우리 사회와 우리 몸에 스며든 사회적 차별과 소외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비판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에 너무 경도되어 모든 것을 하나의 단일한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은 또다른 위험을 낳는다.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심장병 증상을 호소할 때, 의사가 여성보다 남성을 관상동맥질환이라고 판단할 확률이 높다는 논문을 가지고 의사가 성별에 따른 편견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선 할말을 잃었다.

에드워드 윌슨이 비난받던 시대에는 인종과 성별로 인한 차별을 타파하자는 진보적 색채가 미국 사회를 뒤덮고 있었다. 때문에 인간은 유전적 요인 보다 후천적 환경과 교육에 의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강했다. 그렇지 않다면 인종과 성별로 인한 계급적 차이는 영원히 극복할 수 없을 테니까. 이런 풍조가 심해지다 보니, 연쇄살인범도 환경의 영향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으며 적절한 교육을 통해 교화할 수 있다고 심리학자들이 확신할 지경이었다.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이 문제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연쇄살인범이 옥중에서 자서전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형이 경감되어 풀려나자마자 다시 살인을 저지르는 황당한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모든 문제를 하나의 이념과 시선으로만 재단하려 하면 종국엔 극단적 교조주의에 이르게 됨을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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