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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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하는 시인의 이야기.

김연수의 예전 작품 <꾿빠이, 이상>이 시인 이상을 소재로 했다면, 최신작 <일곱 해의 마지막>은 시인 백석의 삶을 소재로 한다. 그러나 <일곱 해의 마지막>은 잘 알려진 일제 시대 백석의 행적을 다루지 않는다. 백석은 북에서 시 창작이 아닌 번역가로 살았는데 (백석은 영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일본어를 능숙하게 썼으며, 그 중 가장 못하는 게 일본어였다고 한다. 참고로 백석은 일본에서 유학한 사람이다.) 스탈린 사후 흐루시초프가 집권하면서 불어 온 우상화 비판과 해빙의 바람을 타고 다시 시를 쓰게 된다. <일곱 해의 마지막>은 이렇게 백석이 다시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1957년부터, 그의 ‘시에는 문학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인해 북한 문단에서 숙청되어 멀고 먼 삼수로 떠나 생활하는 1963년까지의 7년 간을 다룬다.

엄혹하기 그지 없는 체제 하에서 시인으로서의 영혼을 숨기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조선작가동맹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한 소련 시인 벨라에게 자신이 그 동안 몰래 써온 시 묶음을 건넨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싶었던 걸까. 그 시들은 기막힌 우연으로 인해 백석이 나중에 삼수로 추방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백석은 북에서 제대로 숨이나 쉴 수 있었을까?

백석의 시를 읽어보면 거개가 평화로운 고향의 정경을 배경으로 토속적인 것들, 순하고 여린 것들에 대한 애정을 담뿍 느낄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삭막하고 냉랭한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언제 어떤 이유로 숙청당할지 모르는 숨막히는 삶을 살아낼 수 있었을까? 오히려 그는 서툴지만 삼수에서 양을 치고 농사짓는 게 더 행복했을지 모른다. 비록 거기서도 시인의 영혼은 어두운 골짜기에 버려야 했지만.

지금까지의 김연수 소설은 대체로 근대를 배경으로 할 때 찬란히 빛을 발했다는 느낌이다. 내가 김연수 소설 중 최고로 치는 <밤은 노래한다>가 그랬고,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 그랬다. 그런데 이 <일곱 해의 마지막>은 조금 결을 달리한다. 소설적 재미는 위 두 작품에 미치지 못하나, 시인으로서의 삶이 죽어버린 백석이 느꼈을 법한 절대적인 고독과 두려움, 그리고 먹먹한 체념의 감정을 눈에 보이듯 그려낸다.

다음의 대목이 이 작품의 백미가 아닐까 한다. 숙청당한 백석이 삼수로 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던 혜산역 대합실에서 우연히 만난 서희가 백석의 시를 읊을 때, 백석은 지금의 세상과 자신이 평화로이 공존할 수 없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이제 시는 자신의 것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불행과 시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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